예약으로 맞춰둔 텔레비전이 전하는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스스 눈을 떴다. 여느 날 같은 평범한 아침, 밝은 햇살에 다시 뻑뻑한 눈을 내리감고 만다.
“잘 잤어?”
짧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쓱 올려주는 손길에 사와무라는 감은 눈으로 엷게 웃었다. 응, 하고 조그맣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잠에 얽혀 꺼슬했다.
“일어나야지.”
“그래야지.”
끄덕, 고갯짓 하지만 물먹은 듯 무거운 몸은 영 움직일 줄 모른다. 목덜미에 얼룩덜룩 남은 흔적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쿠로오가 낮게 웃는다.
“피곤해?”
“어제 그렇게 했는데 안 피곤하겠어?”
뺨을 묻은 이불의 촉감이 푹신하고 따뜻했다. 우물거리는 사와무라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져 준 쿠로오가 웃는다. 이마저도 언제나의 아침 풍경이었다. 물먹은 솜마냥 몸이 늘어져도 아침 수업 때문에 겨우 몸을 일으킨 사와무라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왜 그래 진짜.”
“오늘 진짜 너어무 피곤해.”
“얼마나?”
“학교 가기 싫을 정도.”
심각하네. 웃어버린 쿠로오가 손가락을 굽혀 사와무라의 뺨을 문질거린다. 하지 마 진짜. 웃음 섞인 목소리로 그러다가 아득하니 잠들어 버릴 듯 조용해진다. 다이치,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뚝 떨어지던 고개를 들어올린다.
“얼른 가자, 일어나.”
어린아이 달래듯 사와무라의 손을 잡아당긴 쿠로오가 사와무라를 이끌고 욕실까지 데려간다. 드물게 싫은 기색을 내는 사와무라는 실낱같은 이성으로 쿠로오를 따라 비척비척 걸어 욕실로 향했다. 한참 바쁜 시기라 땡땡이 칠 수도 없어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까지 비척이며 걸어가 세면대를 짚고 섰다. 하아,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여전히 눈은 감은 채.
“다이치.”
이름을 재차 부르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그래, 알았어 일어났어 해, 한다니까? 하고 대답했지만 아마도 그건 제 상상에서나 벌어지는 듯 제 이름을 부르는 쿠로오의 목소리만 귀에 맴돌았다. 반쯤 졸아버렸나.
“쨘.”
제 팔을 툭툭 치는 느낌에 겨우 반쯤 눈을 떴더니 쿠로오가 제 눈앞에 면도기를 쥐고 가볍게 흔든다.
“해줄게.”
그 사이에 쉐이빙 폼이며 이것저것 꺼내온 쿠로오는 의욕 만만한 얼굴이었다. 사와무라는 눈을 반쯤 뜨고 피식 웃었다.
“너 보기랑 다르게 남 챙겨주는 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평소에 똑 부러지는 사와무라가 내 손안에서 길들여지는 그런 쾌감이랄까.”
“그렇게 말하면 진짜 변태 같으니까 그만둬줄래?”
너무하잖아. 볼멘소리를 하며 쿠로오는 수건을 꺼내 사와무라의 목덜미에 꼼꼼히 둘렀다. 쿠로오가 이끄는 대로 변기 위에 걸터앉은 사와무라는 잘 부탁합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잠이 덕지덕지 묻은 행동에 쿠로오는 웃는다. 찰캉찰캉 쉐이빙 폼을 흔들곤 손바닥 위에 짜올린다. 아침이 되어 꺼슬한 턱에 쿠로오의 손길을 따라 거품이 묻어난다. 사와무라의 턱을 손가락으로 받치고 신중한 얼굴이 된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턱선을 따라 면도기를 움직인다. 스으윽 깔끔하게 쉐이빙 폼과 수염이 밀려나가 깨끗한 자리를 보며 쿠로오가 한 쪽 눈을 가늘게 뜨고 신중하게 각도를 잰다.
“졸지 마.”
대답하면 턱이 움직이니까 콧소리를 흐흥 하고 내주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쿠로오는 사와무라의 턱을 면도하기 시작한다. 샤르르 면도기가 지나가는 소리에 기분이 간지러워진다. 편안하고 느슨한 공기와 면도기가 스칠 때 마다 쉐이빙 폼이 뭉개지는 소리가 사각사각 설탕을 흩뿌리는 마냥 달았다. 꽤 큼지막한 손이 섬세하게 턱을 매만지는 기분은 미묘하게 간지러웠다. 노곤해진 몸이 풀렸지만 제 앞에서 집중하는 쿠로오를 생각해서라도 꼿꼿하게 몸을 세워준다. 능숙하면서도 조금 긴장한 손놀림에 마냥 웃었다.
“수염 별로 없네.”
“아쉬워?”
“엄청.”
면도가 빨리 끝나 아쉬운 목소리를 머금은 입술이 사와무라의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슬쩍, 한쪽 눈만 떠올리자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손을 잡고 끌어 당겨 일으켜 세운다.
“빨리 씻어.”
“하여간 틈을 보이면 안 된다니까.”
“내가 뭘.”
쿠로오가 이끄는 대로 일어선 사와무라가 힐끔 쿠로오를 흘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로오는 세면대로 가 물을 틀고 물 온도를 맞추며 손을 적시는 채였다. 쿠로오가 받아주는 따뜻한 물을 끼얹자 긴장했던 피부가 말랑하게 풀린다.
“찬물도.”
허리 숙여 얼굴에 물을 끼얹고 있는 사와무라의 옆에 선 쿠로오가 수도꼭지를 돌려 찬물로 돌려준다. 푸핫, 차가워! 물소리에 섞인 사와무라의 비명 같은 외침에 쿠로오는 히죽댄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을 어푸어푸 씻어낸 사와무라가 고개를 들고 쿠로오가 수도꼭지를 돌려 잠근다.
“으으.”
“잠깼어?”
목덜미에 두른 수건을 빼어들곤 고개를 끄덕였다. 찬물이 끼얹어져 발그스름해지는 사와무라의 뺨을 검지를 들어 문질거린다. 낯간지러운 행동은 몇 번이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손등으로 쿠로오의 손길을 훅 밀어내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사와무라의 등을 떠밀며 욕실에서 사와무라를 밀어냈다.
“아침은 된장국이면 돼?”
“응. 아무거나 다 괜찮아.”
냉장고를 열며 묻는 쿠로오의 물음에 대답하며 사와무라는 스킨을 집어 들어 손바닥 위에 쏟아냈다. 얼굴에 찰싹 두드리면 면도한 턱이 따끔거렸다. 아야야,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거울을 들여다보자 화끈거리며 달아오른 피부만이 보였다. 대충 툭툭 문질러 바르며 거울을 보곤 옷장을 열어젖힌다. 날씨가 많이 좋아졌으니 기분 전환 겸 가벼운 옷도 괜찮겠지. 아까 봤던 일기예보를 떠올리며 이것저것 꺼내는 사이에 식욕을 당기는 아침밥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오늘 일찍 올 거지?”
“과제 때문에 모임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늦어질 수도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먼저 먹어.”
앞코를 툭툭 차며 스니커즈를 챙겨 신은 사와무라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사이에 쿠로오는 이것저것 말을 걸어온다. 핸드폰은? 챙겼어? 지갑은? 뭐 빠진 거 없어? 어, 응, 그래, 어딘가 성의 없는 말투로 대답을 하던 사와무라가 앞머리에 묻은 먼지를 떼어내는 동안 쿠로오가 손을 뻗어 사와무라의 피케셔츠 깃을 매만진다.
“여기 접혔잖아.”
모양을 단정하게 잡아 주는 쿠로오의 손길에 익숙하게 몸을 맡긴 사와무라가 고분고분하게 자세를 잡아주자 쿠로오의 입술이 느긋하게 휜다. 옷깃을 다듬은 양손이 올라와 매끈한 턱을 쥔다. 매끈한 뺨에 한 번, 앗 하고 벌어지는 입술에 한 번, 쪽 소리를 내며 쿠로오의 입술이 꾹 닿는다.
“하여간 틈을 보이면 안 된다니까.”
“가드가 많이 약해지셨군요 다이치씨.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도록.”
떼어 낸 손이 허리를 끌어안으며 몸을 바짝 당겨 안는다. 야, 나 늦어 진짜. 키들키들 웃는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쿠로오의 입술 새로 금세 먹혀 들어간다.
달그락, 테두리가 세련되게 세공 된 컵받침에 짝을 이루어 세공한 잔이 놓이며 무기질의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에 퍼뜩 놀라 손에 쥔 컵 속에 처박혀 있던 시선을 들어올렸다.
“뭐?”
“헤어지자구.”
“……왜?”
“나 결혼해.”
“…….”
“진부한 이유지?”
그러게. 너무나도 진부한 이유라 마치 제가 영화나 드라마 속에 앉아 있는 등장인물 같이 느껴졌다. 현실이 먹먹하게 멀어진다. 손톱을 단정하게 잘 다듬은 손가락이 잔의 손잡이를 쥐었다. 일렁이는 커피의 표면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김이 피어올랐다. 쿠로오는 그것마저도 현실 같지 않았다.
“원해서 하는 결혼은 아니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결혼이니까.”
“다이치.”
“…너도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 했을 테지만.”
그래. 예상 했지. 그런데 그게 이렇게 빨리 닥치리라고는…, 아니, 가만 생각해보면 결코 빠른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제가 모르는 사이에 사와무라 또한 최선을 다해 오늘을 미뤄왔으리라. 다만 제가 사와무라와 함께 하는 시간에 취해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거다. 정계에서 내로라하는 사와무라 가문의 장남인 사와무라 다이치의 혼약처가 어디로 정해질지에 대해서 다루는 추측이 난무한 가십지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잡지 가판대에 깔리곤 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서점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것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다이치.”
목구멍이 먹먹하게 막혀 뭐라도 내뱉어야 할 것 같아 부른 이름은 끝이 조금 갈라진 소리였다. 맞은편에서 사와무라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쿠로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올곧은 시선에 어딘가 어지러운 시선이 사납게 얽힌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대학교 교양수업이었다. 과가 달랐지만 나이가 같아 금세 친해지고 함께 과제도 하며 서로의 자취방을 들락거리게 되고, 그리고 봄바람 탓인지 청춘의 혈기 탓인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 사와무라라는 성을 어디서 들어본 거 같다 싶었지만 희귀한 성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넘긴 탓이었을까. 아니면 사와무라가 제 몫이 아닌 평범한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어 했던 소박한 욕심 탓이었을까. 어찌하여 우리는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를 일이었다.
사와무라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올곧은 자세로 쿠로오를 바라본다. 그 어떤 영화에서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가 익숙한 노래가 카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고, 카페에 사람들이 들어올 때 마다 습기와 비 냄새를 머금은 바깥 공기가 밀려들었다. 두 사람이 만남의 장소로 종종 찾았던 이 카페를 자신은 이제 두 번 다시 찾을 일이 없을 것이다. 제 눈앞의 혼란스러운 쿠로오의 얼굴 또한 제가 두 번 다시 먼저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와무라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제 앞의 쿠로오를 올곧게 바라보았다.
눅진한 공기에 미적지근해진 커피에서는 더 이상 김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느슨해진 커피 향을 마시며 천천히 두 사람의 추억을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연애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 하고 회사에 취직해 평범하게 돈을 버는 샐러리맨이 되고 싶었다. 제 앞에 있는 쿠로오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쿠로오와 함께라면 즐거울 것 같았다. 어차피 그렇게 살 수 없음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일어날게.”
“그래…….”
“미안해. 진심으로.”
사와무라의 사과에 쿠로오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진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그 표정에 목이 메었지만 어금니를 꾹 물고 부러 침을 크게 삼켰다. 의자 팔걸이에 걸어두었던 우산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코로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으며 심호흡을 했다. 습한 공기에 방향제 냄새가 섞여 콧속을 찔렀다.
“약속은 못 지키게 되었네.”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약속 따윈 하지 말 걸…….”
담담하게 말하던 사와무라의 말끝이 천천히 흐려졌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겨우 내뱉은 말은 이제 와서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후회일 뿐이었다. 미련 가득한 사와무라의 등은 꼿꼿하게 서서 천천히 걸어 쿠로오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딸랑, 카페 문이 열리는 작은 종소리와 점원의 배웅인사가 날카롭게 쿠로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여기는 침실이고. 여기는 거실, 여기에 티비를 놓을 거야.’
‘아니지 여기엔 책장을 놓아야지. 거실 창문이 이렇게 나 있으면 이렇게 멋진 채광을 낭비하면 안 되지.’
‘거실 소파에서 뒹굴 거리면서 티비 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너 진짜 센스 없다.’
‘너랑 만나는 거 보면 센스가 아주 넘치는 거 같은데.’
‘말이나 못하면.’
실랑이를 하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금세 입술이 닿는 소리에 묻혔다. 킬킬 웃으며 금세 바닥을 구르는 두 사람의 곁에는 교양 과제로 그리던 건축 도면이 놓여 있었다. 서로 다른 필기구로 그려진 그림과 휘갈긴 필체가 엉망으로 뒤엉켜 미래의 두 사람을 그리고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내용을 쓴걸까요
약속이라고 하면 어린 쿨다가 짧고 통통한 새끼손가락 걸며 나중에 결혼하자 이런 귀여운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 싶었는데 말이에요
사와무라는 제 눈을 벅벅 문질러 닦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느끼고 싶다며 사와무라를 졸라 미야기행 신칸센에 함께 몸을 실은 쿠로오와 함께 추억의 장소에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긴 하루였다. 그 옛날 아직 서로의 마음을 떠보던, 그 흔히 하는 말로 썸을 타던 시기에 갔던 장소들에서 이제는 연인이 된 두 사람이 옛날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그 때는 상상도 못했던 스킨십을 하며 다시 사진을 찍기도 했고 학생 때라 아쉬운 지갑사정으로 사먹던 추억의 음식들을 마음껏 시키기도 하면서. 그래, 거기까지만 해도 좋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도 반가웠고 부모님께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하며 ‘도쿄의 룸메이트’로서 좋은 인상을 남긴 쿠로오의 모습에 제가 괜히 뿌듯하기도 했고. 그래, 거기까지만 해도 좋았었잖아. 먼저 씻고 온 쿠로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 씻을 때 까지만 해도, 설마하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던 거였다.
“……뭐해?”
“어때?”
아니, 뭐하냐고 물은 말에 그런 대답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사와무라는 반쯤 미간을 좁히며 제 앞의 쿠로오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씻으러 가기 전에 슬쩍 떠 보는 말에 고등학교 때 입던 옷은 다 여기 있지, 하고 제 옷장 한 쪽을 대충 가리킨 게 제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고등학교 때 입던 제 교복을 용케도 찾아 꺼낸 쿠로오가 반쯤 잠그다 만 셔츠 단추를 쥐고 힛, 장난스럽게 웃는다. 자주 입지 않아 빳빳한 흰색 셔츠가 쿠로오의 몸에 빠듯하게 붙어 매끈하게 몸의 선이 드러났다.
“그거 왜 있잖아, 남친셔츠라고. 다들 좋아한다길래 한 번 입어보려고 했지.”
“니가 좋아서 입은 거 아니고?”
“들켰네?”
키들키들 웃으며 쿠로오가 셔츠 단추를 마저 잡아당긴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샀던 교복 셔츠는 갑자기 키가 자란 덕에 어느 새 맞지 않게 되어 옷장에 넣어둔 지 오래였다. 그 뒤로는 거의 부활동복이나 기본 티셔츠를 입고 다닌 탓에 넣어둔 것도 반쯤 까먹고 있었는데 어째 용케 저걸 찾아내선. 어깨선이 하나도 맞지 않아 짧게 올라 간 소매 끝을 달랑거리며 쿠로오가 빠듯하게 셔츠 단추를 잠궈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안 맞지?”
“그렇네. 입고 한 번 놀래켜 줘야 했는데.”
“그거 나도 안 맞아. 일학년 때 산거거든.”
“일학년 때 이렇게 작았다고?”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얼굴이 어쩐지 조금 귀여워서 사와무라는 푸스스 웃었다. 조금 더 놀려줄까, 괜히 장난끼가 솟아 오른 사와무라가 쿠로오 앞으로 다가가 셔츠 끝을 쥔다. 허리쯤의 단추 하나를 용케 잠궈 쿠로오의 허리쯤이 팽팽하게 당겨 있었다. 은근 말랐다니까. 왠지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해 검지로 빠듯하게 잠긴 단추를 툭 끌러내었다. 셔츠 안은 아무것도 입지 않아 맨 살이었고 거기서 사와무라와 같은 바디 워시 냄새가 나긋하게 풍겨온다. 우스울 정도로 짧은 옷을 걸치고 있는 쿠로오의 앞에 셔츠 자락을 쥐고 장난스러운 손길로 쭉쭉 몇 번 당겨본다.
분명 장난을 치려고 했는데 괜히 기분이 묘해진 것은 왜일까. 쿠로오가 지껄이던 남친 셔츠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속옷 하나에 짧은 셔츠 하나만 걸친 꼴이 너무 우스꽝스러운데 기분이 야릇하게 달아올랐다. 미쳤지 내가 진짜…….
“다이치, 흥분했어?”
사와무라의 머리통 위에서 쿠로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장난스러운 목소리 끝은 까슬하게 잠겨 있었다.
“……응.”
“참아. 부모님 계시니까 집에 가서…….”
“싫어.”
셔츠 끝을 쥔 손에 힘을 주고는 쿠로오의 몸을 잡아 당겼다. 바짝 가까워진 쿠로오의 가슴팍에 입을 쪽 맞추었다. 당황한 쿠로오의 손끝이 사와무라의 어깨를 쥐었지만 아랑곳 않고 가까워진 몸에 입맞춤이 쏟아진다.
“다이치…….”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부모님한테 들리면 어쩌려고.”
“니가 잘 하면 되지.”
소리 참아? 생긋 웃은 사와무라가 장난스럽게 쿠로오의 몸을 끌어 침대 위에 눕혔다. 삽시간에 올라탄 사와무라가 웃으며 제가 입은 티셔츠를 벗어던진다. 사색이 된 쿠로오의 뺨을 쥐고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짧은 소매 끝이 팽팽하게 당겨 어설픈 자세로 팔을 뻗은 쿠로오의 손을 무시하며 사와무라는 쪼오옥,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남친셔츠 이거, 진짜 효과 좋긴 하네. 젖은 입술을 날름 핥으며 사와무라가 짓궂게 쿠로오의 몸 위로 제 몸을 겹쳤다. 바스락, 셔츠가 구겨지는 소리와 쿠로오가 놀라 힉힉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장난스럽게 뒤엉켰다.
+) 쿠로다이 맞.....습니다
++) 시간 맞추려다보니까 이상한데서 뎅겅 잘랐습니다........웅앵웅.......(땅파고 들어감)
아마도 다음 정류장, 이었지? 버스의 정차 안내방송을 집중해서 들으며 몇 번이나 봐서 외울 것 같은 버스 노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또 한참이나 걸어야 나오는 카라스노 고등학교라는 최종 목적지를 몇 번이나 머릿속에 되새기며 긴장해 바싹 마른 입술을 적셨다. 버스가 방지턱을 넘느라 덜컹일 때 마다 품에 안은 꽃다발이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를 냈다.
한참을 걸어 겨우 도착한 학교 주변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강당에서 졸업식을 진행하느라 텅 빈 교정을 둘러보던 쿠로오는 졸업식 종료까지 대략 1시간 정도 남은 걸 확인하고는 긴장해 잔뜩 접고 있던 어깨를 느슨하게 풀어냈다. 봄기운이 밀려들어 차가운 공기 속에 뒤섞인 꽃 냄새가 옅었다. 도쿄는 슬슬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지만 조금 더 추운 미야기는 꽃봉오리들이 한 움큼 정도 덜 여문 느낌이었다. 한 아름 안은 꽃다발에 묶인 카드 겉에 쓰인 사와무라 다이치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괜히 제가 더 설레었다.
사와무라와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의 이야기로, 여름 방학 때 미야기에 있는 친척 어른 집에 놀러 갔다가 권유 받은 입시 과외가 계기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쿠로오에 대한 자랑을 평소부터 들어왔던 사와무라의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이기도 했다. 우리 다이치가, 수학이 좀 약해서요. 어머님의 짓궂은 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면서 귀 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던 것이 사와무라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졸업식이 끝날 때 까지 시간이 꽤 남아 그 동안 교정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사와무라에게 가끔 건네 들은 이야기로 그려본 학교의 모습과는 다른 듯도, 비슷한 듯도 했다. 체육관이라는 팻말을 보며 아, 여기서 배구를 했겠거니. 운동장을 보며 아, 여기를 통해 등교를 했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다. 자신은 졸업한지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고등학교 교정을 밟고 있으니 기분이 괜히 이상했다. 들어오면 안 될 곳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바스락, 발 아래로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천천히 걸어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간혹 카라스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을 뿐, 그 외에는 꽤나 조용한 교정이었다. 한 바퀴를 느긋하게 걸어 다시 정문 근처로 왔을 땐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기라도 한지 아까보다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핸드폰을 들어 천천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체육관 옆에 있는 큰 나무 밑에 있어.]
온다는 말도 확실하게 하지 않았는데 이런 메시지를 다짜고짜 받으면 엄청나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쿠로오는 쏟아지는 학생들의 무리에서 도저히 사와무라를 찾을 자신이 없었다. 시끄러운 운동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쿠로오는 어색하게 발을 바닥에 비비며 봉오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무를 바라보기만 했다. 괜히 어색해서 심장이 간질거린다.
“선생님!”
잔잔하게 들리던 소리의 틈바구니로 제법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아보니 기웃거리던 사와무라가 활짝 웃으며 쿠로오에게 뛰어온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오셨네요?”
짙은 초록색의 목도리를 두르고 졸업장을 품에 안은 사와무라가 활짝 웃는다. 그러고 보니 교복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 거지 참.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봤던 흔하디흔한 검은 가쿠란일 뿐인데 사와무라는 특별하게 보였다. 쿠로오는 흠, 흠, 목을 가다듬고 아까부터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졸업 축하한다.”
“간지럽게 꽃다발이 뭐에요!”
놀리는 듯 말하면서도 기쁜지 사와무라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질 않는다. 하긴 남자에게 남자가 꽃다발을 주는 게 머쓱하고 낯간지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졸업식인데 꽃다발 하나는 있어야지.”
“아 진짜, 민망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사와무라는 킁킁, 꽃다발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잘 몰라서 그냥 제일 예쁘고 흔하디흔한 장미꽃다발을 골랐는데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친구들은?”
“아, 잠깐 만날 사람 있다고 하고 빠져 나왔어요. 애들은 지금 사진 찍고 난리 났어요.”
“너도 사진 찍어야지.”
“에이, 괜찮아요.”
헤헤, 웃는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듬뿍 묻어나왔다. 이 웃음을 보려고 이 먼 곳까지 고생하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여름 방학 내내 과외를 하고, 겨울 방학에 짧은 기간 과외를 하며 잠깐 수험 준비를 도와준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기분이 뭉글뭉글 풀어진다. 밤톨 같은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 귓바퀴를 살짝 덮었다. 너도 이제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걸까.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는데, 사진 찍어야지. 부모님은?”
“아, 조금 늦으실 거 같대요. 그 때 사진 찍죠 뭐.”
“친구들이랑도 찍어야지, 내가 사진사 해줄게. 나 사진 잘 찍어.”
“에이, 거짓말.”
눈을 샐쭉하게 뜨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와무라의 이마에 아프지 않게 딱밤을 콕, 놓아주자 금세 눈을 둥글게 휘며 웃는다. 학교를 졸업하는 아쉬움 보다 후련함이 가득한 얼굴은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에 반쯤 눈을 내려 감는다. 콩닥, 콩닥. 설렘이 와글와글 피어오르는 분위기에 동화된 건지 쿠로오의 심장이 주책맞게 뛰어댄다.
“얼른 가자.”
“선생님.”
반쯤 몸을 돌리는 쿠로오를 불러 세운 사와무라가 엷게 뜨고 있던 눈을 또렷하게 떠 쿠로오를 바라본다. 그 조약돌 같이 단단한 시선과 마주하자 고개를 차마 돌릴 수 없었다. 큰 눈동자를 동그랗게 머금고 있는 유순해 보이는 눈매와 잘 빚은 이마를 차근히 바라보았다. 응, 하고 겨우 꺼내는 쿠로오의 대답에 사와무라는 긴장한 듯 흠, 하고 목을 한 번 가다듬는다.
“졸업선물이요.”
“응?”
“졸업선물이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잠시 머쓱하게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러게, 선물. 선물 뭘 해야 할지 고르지 못해서 아직 아무것도 사지 못했어. 고작 졸업선물일 뿐인데 아무것도 못 고르겠더라고. 입 밖으로 내뱉으면 변명이 될 뿐일 말이었다. 쿠로오는 머쓱하게 허허 웃었다.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준비 안 하셨죠?”
“그래 이 녀석아.”
장난스럽게 받아쳤지만 역시 서운했던 건가 싶어 괜히 미안해졌다. 이따 맛있는 거 사줄게, 하고 변명처럼 말을 꺼내는데 사와무라가 쿠로오의 앞으로 척척 걸어온다. 허공에 덜렁거리고 있는 손을 끌어당긴 사와무라가 꽃다발을 불편하게 팔로 안아들곤 주먹 쥔 손에 쥐고 있던 걸 쿠로오의 손에 쥐여준다. 아까부터 쥐고 있던 건지 미지근하게 체온이 옮은 작고 단단한 것이 손에 잡혔다. 의아한 얼굴로 사와무라를 바라보지만 사와무라는 제 입으로 대답해 줄 의지가 없다는 듯 단단하게 입을 다물고 제 앞에 선 쿠로오를 마주할 뿐이었다. 의아한 얼굴의 쿠로오에게 대답해 줄 의지는 없는지 쿠로오의 손에 다만 조그마한 것을 쥐여주고는 펴보지도 못하게 양 손으로 꽉 붙들고 있다.
“이거 받으세요.”
“…응?”
“졸업선물, 로. 이거 받아주세요.”
졸업선물을 받을 대상자가 본인에게 졸업선물을 받아달라는 말이 의아해 잠시 머릿속이 물음표로 뒤범벅이 된다. 이거 주세요, 도 아닌 이거 받으세요, 는 조금 이상했으니까. 쿠로오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을 애써 무시하며 사와무라는 단단하게 쿠로오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제야 쿠로오의 시야에 사와무라의 텅 빈 가슴팍이 들어왔다. 사와무라의 시선에 단단히 매여 미처 내려다보지 못한 가슴팍 한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단추 하나가 비어있었다.
“사와무라.”
“대답은 안 해주셔도 되니까, 받아주세요.”
눈 밑이 살짝 붉어진다. 지금 사와무라는 어떤 마음일지 쿠로오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맹랑하게 웃던 사와무라는 단단한 얼굴로 쿠로오에게 제 마음을 건넨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알 수 있을법한 의미를.
“저는 이제 학생이 아니니까, 선생님이랑 같은 어른이고, 대학생이 될 거니까. 이 정도는 괜찮죠?”
“너…….”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서 어리다고 거절당할 거 같아서 해가 바뀔 때 까지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입시에나 신경 쓰라고 거절당할 거 같아서 학교 합격 발표가 날 때 까지 기다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제가 고등학생인 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
“그래서 오늘이 될 때 까지 기다렸어요. 이제 저 고등학생도 아니니까요.”
“…….”
“그러니까 말하는 거 정도는 이해해주세요.”
이젠 귀까지 시뻘개진 사와무라는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있던 쿠로오의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쿠로오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쳐 졸업선물로 안겨진 조그만 마음을 내려다보았다. 온기를 아직 머금고 있는 조그만 금속재질의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걸 믿고 있다니 진짜 고등학생답다 싶어 갑자기 슬그머니 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블레이져였는데.”
“…그랬어요?”
“응, 그래서 나는 대답으로 뭘 줘야 할지 모르겠네.”
쿠로오는 제 앞에 단단하게 선 사와무라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쿵쾅거리며 뛰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사와무라는 어느새 눈 밑에 엷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 제자였던 녀석의 마음이 맹랑하기도 하고 귀엽게도 해, 쿠로오는 빈 팔에 사와무라를 담았다. 으악, 귀엽지 못한 소리를 낸 사와무라가 합, 하고 입술을 다문다. 끌어안은 팔을 살짝 풀어 낸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입술에 천천히 입을 맞춘다. 따뜻하게 닿은 입술에 사와무라가 힉, 하고 놀라 움찔 몸을 떤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닿기만 했던 입술이 차분하게 떨어진다. 이제 쿡, 찌르면 펑 터져버릴 것 같은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며 쿠로오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입술 도장 정도면 대답이 되겠어?”
“선생님….”
“나 이제 니 선생님 아닌데. 이제 우리 관계도 변할 텐데 다른 호칭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으아악, 선생님!!”
쿠로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안색이 바뀌던 사와무라가 와락 쿠로오의 품에 뛰어든다. 파사삭, 꽃다발이 뭉개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사와무라는 영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던 쿠로오가 피식 웃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요 맹랑한 학생이 날린 선빵에 정신이 어질했던 터였다. 학생이 먼저 선수치게 만들다니 선생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몇번이고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낯익은 이름을 눌렀다가 지웠다가, 별 소득 없는 일을 한참동안 반복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면 이렇게 망설일 것도 없었으나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잘 해도 본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였으나 그래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결국 후우우, 깊은 숨을 내쉬었다가 단단하게 정신을 차려 눈 앞에 있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오세, 어라? 사와무라?”
“안녕.”
대외용 얼굴로 생글거리며 웃던 쿠로오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으, 제발 좀 참아주라. 콩닥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쥐고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손님이 없는 타이밍을 노려 들어온 덕분에 편의점 안에는 나와 쿠로오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뭐사러 왔어? 아, 나 보러 온거야?”
“무슨 소리야. 맥, 맥주 사러 왔어.”
악, 나 말 더듬었어! 들켰나? 후다닥 주류 냉장고 쪽으로 달려가서 괜히 맥주를 고르는 척을 했다. 시즌 한정으로 눈꽃과 산타모자가 잔뜩 그려진 맥주캔을 아무거나 집어들고는 카운터로 갔다. 능숙하게 바코드를 찍은 쿠로오가 편의점 봉지를 펼치며 맥주를 주워담는다.
“지난번엔 이거 말고 딴거 마시더니 그새 취향 바뀌었나보네?”
“하하, 그렇지 뭐.”
아냐, 그 때도 지금도 그냥 손 가는대로 집은 거야! 근데 내가 사간 걸 왜 기억하고 있는거지? 헉, 이거 그린라이트? 심장이 널을 뛰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얼버무리는 내 말에 쿠로오는 그냥 가볍게 웃으며 포스화면에 나타난 성인확인 버튼을 툭, 터치한다.
“손님, 470엔 되겠습니다.”
“여기요.”
“500엔 받았습니다.”
능숙하게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까지 내어준 쿠로오가 봉지 손잡이를 가지런히 모아 내민다. 아, 괜히 어색하게 발끝으로 바닥만 비비적거렸다. 아, 진짜 밑져야 본전이기만 해도 좋으련만. 후우, 긴장해 호흡을 어색하게 고른다.
“오늘 알바 몇시에 끝나?”
“응? 곧 끝나긴 하는데...”
“끝나고 일 있어?”
“응?”
“끝나고 잠깐 볼래? 할, 할말이 있어서.”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갈비뼈가 아픈 것 같다던지 호흡이 모자라서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다던지 그런 감각들은 이미 아득하게 도망간지 오래였다. 오직 모든 감각 기관들이 쿠로오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바짝 날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따 알바가 끝난 쿠로오를 붙들고 나는 말해버릴 셈이었다. 나는 너는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노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나는 너만 바라보는 짝사랑을 3년 동안 하고 있었노라고 그렇게 벼르고 별러왔던 고백을 와다다 쏟아내버릴 참이었다. 그러니까, 잘해봐야 본전인 짝사랑을 오늘로 끝내버릴 계획이었다. 왜 하필 그게 오늘이냐고 물어보면 나도 잘 대답할 순 없었지만, 거리에 넘실거리는 연말의 분위기라든지 몇 시간 뒤면 올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분위기가 나를 부추겼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카운터에 선 쿠로오의 뒤로 보이는 벽시계가 10시 30분을 1분 남겨두고 있었다.
“나 오늘 11시에 끝나긴 하는데..”
“그래?”
“응 근데..”
아, 곤란한 얼굴이다. 본능적으로 온 몸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라봐온 얼굴이니 조금만 표정이 변해도 어떤 감정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떨어뜨려 카운터에 놓인 봉지를 집어들었다.
“선약 있구나?”
“아, 그게 그러니까.... 할말이 뭔데? 급한거야?”
“응?”
“지금 손님도 없고 하니까.. 지금 하면 안돼?”
응 안돼. 아무리 그렇다고 어떻게 고백을 이렇게 얼렁뚱땅하냐. 수면 위에 뜬 나뭇잎 배를 탄 듯 넘실넘실 거리던 감정이 삽시간에 꼬르륵,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단숨에 씁쓸해지는 표정을 얼른 털어내버리고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응, 안할래.”
“아, 저. 사와무라.”
“일 있으면 나중에 따로 보자. 연말 잘 보내고, 이틀 빠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고.”
“아, 저. 이따가 전화할게 내가.”
“알았어.”
손을 흔들려 돌아서는 내 모습에 쿠로오가 다급하게 말을 꺼낸다. 그와 동시에 편의점 문에서 찰랑거리며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모습과 손님이 들어오는 문을 번갈아 바라보는 쿠로오가 허둥거리고 있어 나는 빠르게 편의점을 벗어났다. 편의점 문이 닫히기 전에 어서오세요, 하고 손님에게 인사하는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먼저 다른 사람과의 선약이 있을 수도 있지 내가 너무 섣불리 굴었던거다. 그것도 바쁜 연말에 약속이 당연히 있을거였는데. 그래도 어쩐지 미리 약속을 잡아두면 고백의 말을 내뱉는 순간까지 도저히 떨림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무턱대고 질러버린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거절당해도 할말은 없는거지.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손목에 걸어둔 편의점 봉지가 덜렁거리며 차가운 맥주캔이 허벅지에 툭, 툭, 닿는다. 연말의 분위기가 묻어있는 거리를 잠시 걸었다. 그닥 번화가가 아닌 동네 골목에도 연말 연시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연말 세일이니, 복주머니 이벤트니 하는 전단지가 상점가에 걸려있었다. 불꺼진 어두운 상점가에 한달 전 부터 걸려있던 반짝이는 복주머니 모양의 꼬마전구들이 군데군데 선이 끊겨 얼룩덜룩한 모양새였다. 간혹 차가운 공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라든지 어딜 다녀오는지 하하호호 행복한 모습의 연인이 지나간다. 상점가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내가 살고 있는 맨션이 나왔다.
두어층 올라가서 열쇠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턱 밑까지 둘둘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아무데나 두었다. 겨울의 냄새가 잔뜩 묻은 코트차림으로 바닥에 앉아 침대에 반쯤 몸을 기댔다. 손목에 여전히 걸려있는 편의점 봉지를 대충 풀어내어 그 안에 담긴 맥주를 꺼낸다. 달칵, 시원하고 청량한 소리가 마치 광고에서나 나오는 것 같았다. 맨정신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할거 같아서 산 거였는데 이렇게 우울함을 달래려 홀짝거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 기운빠져. 따듯한 소재로 바꾼 침대 시트에 뺨을 기대자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니까 왜 고백도 제대로 못할 상대를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활동으로 시작한 배구로 쿠로오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은 여름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골든위크의 연습경기였다.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어서 손쉽게 좋아하게 되어버렸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건 역시 쉽지 않아서 이렇게 답답하게 굴고 있는 거다. 이대로 참고 있다간 나도 모르게 좋아해, 하고 입에서 튀어 나가 버릴 것 같아서 고백하자고 마음 먹은거다.
사온 맥주를 하나하나 마시며 캔을 비웠다. 힐끔, 핸드폰 시계를 바라보자 11시 3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게 하필 오늘이었냐 하면 21분 뒤 있을 내 생일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생일인데 설마 거절하겠어? 미안해서라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탓이기도 했다. 정작 상대는 내 생일인지 기억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괜히 코끝이 찡하게 울리며 눈밑이 뜨끈해진다. 그러니까, 잘해봤자 본전인 고백이라니까. 우울해져서 얼굴을 침대에 묻고 눈을 감았다. 아 이런 기분으로 술까지 마셔버렸더니 최악이다. 얼굴을 시트에 비비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받을 기분이 아니라 가만히 내버려두었더니 끊겼다가 다시 울린다. 거 참 끈질기네, 하고 핸드폰 화면을 보면 두둥실 떠오른 이름은 쿠로오의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바닥을 구르고 있던 기분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바보같이 즐거워져 버리는 걸까. 고작 네 이름일 뿐인데. 아까 전화한다더니 진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지금 기분으로 전화를 받으면 분명히 기분이 뒤숭숭해질 걸 알면서도 손은 저절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 여보세요? 사와무라? 어디야?
“아. 뭐.. 알바는 끝났어?”
- 응. 지금 어디야?
“어딘진 왜 물어봐. 너 약속 있다며.”
- 약속 없었어.
쿠로오의 목소리가 답답함을 담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피실피실 웃어버렸다. 핸드폰 너머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들뜨고 겉잡을 수 없어진다. 아, 나 역시 네가 좋아.
“내가 할말이 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니,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아씨, 너 지금 어디야?
“나 지금 집인데.”
- 딱 기다리고 있어.
그러더니 뚝, 전화가 끊긴다. 뭔가 이상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진짜 전화가 끊겨 있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화면이 꺼진 핸드폰만 내려다보았다. 기분이 넘실넘실, 간질간질 이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조용한 방안에 잠시 앉아 있으면 쿵쾅쿵쾅,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계단을 뛰어올라오더니 곧 우리집 앞에 멈춰서 초인종을 누른다. 넘실거리는 기분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엇, 야. 왜 그냥 문 열어.”
“쿠로오..?”
“야, 누군지 확인은 하고 문 열어야지. 왜 그냥 문 열어, 너 술 마셨어? 아니다, 일단 들어가.”
저 혼자 다급하게 그러더니 현관에 선 나를 방안으로 떠밀어 넣는다. 얼떨떨하게 뒷걸음질을 치며 방안으로 들어가자 쿠로오가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방안으로 쑥 들어온다. 겨울의 냄새가 잔뜩 묻은 쿠로오가 빨갛게 된 얼굴로 내 방안으로 들어온다. 믿기지 않아 눈을 차분하게 꿈뻑인다.
“야, 너 술도 못하는게 그 맥주를 다 마셨어?”
“마시다 보니..”
“안 취했냐? 뭔 일 있어? 왜 이렇게 술을 마셨어.”
“그냥...”
얼떨떨하게 말하는 나를 보던 쿠로오가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확인한다. 12시를 5분여 남겨둔 시간, 쿠로오는 제 손에 들려있던 작은 상자를 불쑥 내민다.
“촛불 키자.”
“응?”
“아직 안 늦었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얼른 앉아.”
건네받은 상자를 들고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내 어깨를 꾹 눌러 자리에 앉힌 쿠로오가 작은 테이블을 꺼내 펼치고는 상자를 다시 가져간다. 새하얀 상자를 열면 케잌이 스르륵 나왔다. 딸기와 초코로 화려하게 장식 된 위에, 생일 축하해, 다이치 하고 써 있는.
시뻘건 츄리닝 아래의 쓰레빠로 삐죽 나온 발가락이 아린 것이 곧 겨울이 오려나 싶었다.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로고가 박힌 봉지를 손목에 걸고 츄리닝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는 가요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노래 따위를 흥얼거리면서 어두워 진 골목길을 쫄래쫄래 걸었다. 가끔 가다 길고양이 기척이나 조금 들리는 조용한 골목길을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그닥 세련되지 못한 건물의 낡은 자취방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이래도 제법 실하게 설계 된 집이라 싼 집세를 포기하지 못하고 지낸지가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절겅거리던 열쇠 꾸러미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간 쿠로오가 차갑게 식은 발끝을 꼬물 거리며 종종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 쓰레빠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다. 아 이 집이 겉 보기엔 낡아보여도 안은 제법 괜찮...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제 뺨을 매섭게 갈기는 차가운 바람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가기 전에 분명 불을 다 끄고 나갔는데 방안은 한가득 쏟아지는 만월의 달빛이 가득해 충분히 환했다. 그 중심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형체에 쿠로오는 눈을 느리게 꿈뻑였다. 주변으로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그득했고 거의 박살이 나버린 유리창은 너덜너덜해져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쏟아지는 달빛이 유리조각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빛무리의 중심에 선 형체는 느릿하게 쿠로오의 인기척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묘하게 피어나는 이질적인 감각이 좁은 쿠로오의 방안을 삽시간에 그득 채웠다.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쿠로오는 꿀꺽, 마른 입안을 억지로 적신다. 서슬퍼런 달빛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형체가 발을 딛을 때 마다 유리조각들이 밟혀 잘강거렸다.
“잠깐 스톱!!!!!!”
냅다 꽥 소리를 지른 쿠로오의 행동에 움찔 놀라 걸음을 멈춘다. 쿠로오는 제 손목에서 달랑거리는 편의점 봉지를 벗기려다 여의치 않은 듯 잡아 당겨 북- 뜯어 아무곳이나 던져버린다.
“사와무라 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유리창을!!!”
“변상할게.”
“아니 변상이 문제가 아니고 너 다치면 어쩌려고!!!”
“알잖아.”
잘강잘강 딛는 걸음은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지만 고작 약간의 흙먼지가 묻어 있을 뿐이었다. 걸음을 옮기며 제 머리카락이며 어깨 따위에 묻은 유리 조각을 맨손으로 툭툭 털어낸 사와무라가 성큼성큼 쿠로오에게 다가온다. 좁은 공간이라 몇 걸음만에 가까이 다가온 사와무라는 저보다 한뼘쯤 더 큰 쿠로오의 어깨를 꽉 쥐고는 밀어 바닥에 앉힌다. 남자 둘이 앉기엔 조금 작은 소파에 등을 기대게 밀어 붙이고는 단숨에 올라타며 덥석 쿠로오의 목덜미를 끌어 안는다.
“안 다쳐.”
체중을 실으며 안기는 사와무라의 허리를 반사적으로 끌어 안으며 몸이 미끄러지지 않게 붙들었다. 사와무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꼴이 되었지만 찬공기가 묻은 코끝은 서늘했다. 쿠로오의 머리를 끌어안은 사와무라가 귓가에서 속살거릴 때 마다 입안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할퀴는 한기가 쏟아졌다. 귓바퀴를 엷은 입술로 살며시 물었다가 놓으며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입술에 느껴지는 체온에 사와무라의 눈썹이 움찔 떨린다.
“어이, 사와무라.”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사와무라의 상체를 밀어낸 쿠로오가 손바닥으로 세지 않게 사와무라의 입과 턱을 감싸며 밀어낸다. 불만스러운 쿠로오의 행동을 내려다보는 꼴이 된 사와무라는 반항 없이 조용하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쿠로오.”
입이 막혀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사와무라는 제 입을 막은 쿠로오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든다. 감탄스럽게 잘 뻗은 손가락에서 입술을 떼어내며 버릇처럼 이름을 읊조린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손가락 사이를 혀를 내어 핥아올린다. 명백한 의도가 보이는 행동에 쿠로오의 미간이 조금 구겨진다.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쿠로오를 내려다보는 사와무라의 꺼끌한 혓바닥이 손가락 사이를 꼼꼼하게 핥아 올린다. 하아,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려는 듯 가볍게 쏟아내는 한숨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쏟아져 시렸다.
“미안.”
“....”
“이번엔 정말 급해서.”
느릿하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아래서부터 천천히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핏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색이 느릿하게 차오른다. 쿠로오는 그런 눈을 보고서야 별 다른 말 없이 제 위에 올라 탄 사와무라의 골반을 고쳐 쥐곤 고개를 옆으로 젖힌다. 훤하게 드러난 쿠로오의 목덜미에 옅게 지워져가는 멍자국에 사와무라의 눈에 차분하게 생기가 깃든다. 상체를 숙여 단단하게 쿠로오의 어깨를 붙들곤 어깨죽지에 입술을 묻는다. 본능이 이끄는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장소에 단단하게 일어난 송곳니를 망설임 없이 찔러 넣는다.
고통에 비틀리는 어깨를 꽉 쥐고는 단숨에 빨아 당긴다. 꿀럭거리며 제 목구멍을 적시는 뜨거운 혈액의 느낌에 사와무라의 호흡이 흥분으로 흐트러진다. 비닐 냄새 나는 수혈팩의 냄새가 아닌 날것의 혈액은 본능이 가장 반기는 것이었다. 귓전에서 들리는 쿠로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고막을 닫은 것 마냥 아득하게 멀었다. 인간이었다면 호르몬이라고 명명할 본능이 널뛰며 사와무라의 식은 몸을 달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긁던 쿠로오의 손이 사와무라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 손이 기폭제가 된 것 마냥 사와무라는 본능이 이끄는 힘껏 쿠로오의 목덜미를 빨아 당겼다. 날것의 혈액 몸 구석구석을 적실 때 마다 사와무라의 허리가 비틀렸다. 흥분해 들썩이는 허리가 쿠로오의 손바닥을 비벼댔다.
쩡-하고 머리가 얼어붙은 듯 사고가 정지했다가 삽시간에 녹아내리는 것 마냥 느릿하게 따라온 현실의 감각이 온 몸을 덮쳐왔다. 뜨끈한 목덜미에 닿은 싸늘한 감각에 쿠로오는 파르르 몸을 떤다. 귓가에서 맴도는 사와무라의 흐트러진 호흡과 코끝을 적시는 비린 쇠냄새 같은 것들이 달빛이 그득 쏟아지는 좁은 자취방 안을 가득 메웠다. 사와무라의 송곳니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쿠로오의 시뻘건 츄리닝 위로 떨어져 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까슬한 혀를 내어 싹싹 핥은 사와무라가 몽글거리며 피가 올라오는 상처자국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힘 없이 몸을 소파에 기댄 쿠로오가 테엽풀린 인형마냥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동안 사와무라는 익숙하게 작은 약상자를 끌어와 반창고를 꺼내 쿠로오의 상처부위에 붙인다. 점점 무뎌지는 송곳니 때문에 목덜미는 잇자국으로 너절하게 자국이 난 상태였다. 아마 시퍼렇게 멍이 들겠지. 어쩐지 안쓰러워 천천히 호흡을 정리하는 쿠로오를 조심스럽게 꼬옥 끌어 안자 윽,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무거워.”
기력없는 말투에 사와무라가 머쓱하게 상체를 일으킨다. 조금 찌푸려진 눈가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자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쿠로오가 피실피실 웃는다.
“너 밥굶고 다닐동안 스가와라는 뭐했냐.”
“해외 봉사 갔어. 아마 이번 달 안에는 못 올걸.”
“환장하겠네.”
장기간의 부재에 걱정이 된 스가와라가 냉장고에 채워두고 간 수혈팩은 다 먹기도 전에 썩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의대생이라고 해도 몰래 빼돌리는 수혈팩에는 한계가 있으니 몇개 안되는 것 중에서도 이미 혈액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는 상태였다. 순혈 따위가 아니라 수혈팩 하나로도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사와무라였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는데는 어쨌든 한계가 있었다. 마시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180이 넘는 장정인 쿠로오도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이니 사와무라도 웬만하면 제가 배곪다 가수면 상태가 되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선연하게 떠오른 만월의 밤은 잠든 사와무라를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향하게 했다. 질 좋고, 보장된 '먹이'가 있는 곳으로.
“괜찮아?”
“괜찮겠냐?”
잘만 말하는데 괜찮은거 아니냐? 하고 덧붙이려다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본능이 널뛰는 상태에서 무작정 밀어붙인거나 다름 없으니 쿠로오에게 무어라 큰 소리를 칠 수 없었다. 파리한 쿠로오의 입술을 보니 그제야 걱정 되어 사와무라는 조심스럽게 엄지로 쿠로오의 입술을 쓸었다. 반쯤 뜬 눈커풀을 들어올려 제 위의 사와무라를 본 쿠로오가 선명하게 빛나는 시뻘건 눈동자에 힘 없이 미소지었다.
“넌 괜찮아 보이네.”
“응?”
“다행이네.”
“뭐래.”
쿠로오가 힘 없이 손을 들어 제 눈을 톡톡 가리킨다. 너 눈 좀 어떻게 해봐. 쿠로오의 말에 사와무라는 느슨하게 눈을 깜빡인다. 툭 치면 피가 뚝뚝 묻어나올 것 같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가 눈을 감았다 뜨면 인간의 것마냥 검고 동그랗게 변한다. 몇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에 쿠로오는 잠시 멍하니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사와무라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의 일이었다. 우연히 같이 듣게 된 교양수업에서 알게 된 사와무라는 같은 학년에 제법 죽이 잘 맞아 순식간에 친해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데는 워낙 쿠로오가 낯가림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쿠로오였지만 사와무라는 수더분하면서도 어딘지 이해 못할 구석이 많았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같이 밥 한번 먹은 적 없다던지, 건장한 체격인것 같은 녀석이 해가 강한 여름에는 잔병치레가 잦다든지 하는 것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물 한모금 제대로 마시는 걸 본적이 없는 걸 보고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할 수 있는건가? 더위에 약하다고 하면서 열대야에도 불꽃축제 땐 그렇게 신나 있고?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겼던 것들은 그 어느 날 쿠로오의 자취방에서 밤샘 시험공부를 하던 중 실체를 드러냈다. 사와무라의 은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건 아마 며칠간의 밤샘공부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때 패기롭게 ‘물리면 나도 그렇게 되는거냐?’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이던 쿠로오는 시험 일정이 바빠 며칠 굶어 파리한 안색의 사와무라에게 제 목덜미를 내밀었다. 아마 순종의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럴 일은 없다는 사와무라의 말이 제 호기심을 더 부추긴 건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사와무라에게 반 강제적으로 제 목덜미를 들이댄 쿠로오는 이성 잃은 서늘한 송곳니가 제 목덜미에 박히던 첫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 배고파.”
“뭐 사다줄까?”
“아니, 저기 편의점 봉지에 먹을 거 있으니까. 좀 갖다 줘.”
막무가내로 굴던 사와무라는 순한 양이 되어 쿠로오가 아무데나 던져놓은 편의점 봉지로 달려간다. 손잡이가 찢어발겨져 엉망이 된 안에는 컵라면이며 편의점 봉지빵이 들어 있었다. 대충 칼로리 높아보이는 소세지빵을 집어든 사와무라가 봉지를 뜯으며 종종걸음으로 쿠로오에게 다가온다.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채 바닥에 늘어진 쿠로오를 한팔로 가볍게 불쑥 안아든 사와무라가 쿠로오를 소파에 반듯하게 눕혀준다. 사와무라가 쥐여 준 봉지빵을 먹는 동안 사와무라는 소파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걱정스럽게 쿠로오를 바라본다. 아니 그러게 자기 배고프다고 목덜미에 이빨부터 갖다꽂는 주제에 왜 뻔뻔하질 못해서 이러고 있느냔 말이야. 입안에 가득 물고있던 소세지빵을 꿀꺽 삼킨 쿠로오가 저를 내려다보는 사와무라를 빤히 바라본다.
“해줘 사와무라.”
“응?”
“해줘.”
목적어 없는 해줘의 의미를 단숨에 깨달은 사와무라의 얼굴이 이상하게 구겨진다. 네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뺨을 붉히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잠시 가만히 쿠로오를 바라보던 사와무라는 허리를 숙여 소파 위에 반듯하게 누운 쿠로오에게 입을 맞춘다. 서툴게 입술을 빨아당기는 입맞춤을 기다리다가 입을 벌려 혀를 얽는다. 입안에서 쏟아지는 한기와 좀 전까지 뜨거웠을 피의 비릿한 냄새에 쿠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와무라와의 흡혈 후에는 통과의례 같이 입을 맞추고 있는지 제 자신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손을 들어 사와무라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천천히, 하지만 깊게 입을 맞췄다. 쿠로오의 입맞춤을 따라오지 못해 허둥거리는 사와무라의 목덜미를 끌어 당기며 집요하게 입을 맞추었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제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사와무라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이니 조금은 비이성적으로 굴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락천사 쿨오오 주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이 하늘색 티가 저렇게 안 어울릴쑤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천사님이 다이치 찾아와서 친절한 척 구는데 손 잡았더니 막 날개 새까맣게 물들고 눈 번뜩이면서 나른하게 미소 짓는데 존 야하고 말이야.. 다이치가 늦었다고 생각할 땐 진짜 늦어버린 그런거,,,,
82.
헣 나 갑자기 말도 안되는 재벌가 변두리에서 서로를 반쯤 혐오하고 사는 쿠로다이가 보고싶어(죤
재벌가 여회장님이 남성편력쩔어서 끼고노는 기쁨조가 몇명있는데 그 중에 한명이 쿠로였음 좋겠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다가 회장님한테 픽업되서 신분세탁하고 관리직에 있지만 현실은 부르면 와서 회장님 기쁘게 해드리는 그런.. 권력 관심 없고 돈 밝히는 쿠로.
회장님의 후계자 중 권력싸움 순위권이 아닌 셋째 사장님 비서가 다이치였음 좋겠다 그냥 계열사 하나 담당하는 그런 사장님의 비서. 그래봤자 넘사벽이겠지만 첫째 둘째 권력다툼이 흙탕물이라 다이치는 재벌들을 극혐하지만 셋째 사장님께 은혜입은게 있어 일하는 중.
다이치는 사장님과 사업보고를 위해 주기적으로 본사에 들리게 되는데 거기서 회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쿠로오랑 몇번 마주치게 됨. 처음에 그냥 수많은 관리직 사람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뒷소문의 근원지 화장실에서 남직원들이 쑥덕거리는걸 듣게 됨. 다음 사업보고 때 보고 마무리하는데 회장님 비서가 노크하고 쿠로오 실장님 오셨습니다ㅡ이러는데 다이치 눈썹이 움틀. 회장님 앞에선 표정관리 잘하고 인사하고 물러나 방으로 들어오는 쿠로오를 보는데 표정관리 안되서 경멸하는 얼굴로 보게 됨. 쿠로오는 의아하겠지.
그리고 어느 날 사장퇴근 시켜드리고 일정리 좀 할까 싶어 회사로 돌아온 다이치를 기다리고 있는 쿠로오. 다이치 쪽 사업에 일체 관련 없는 쿠로오가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본사쪽 사람이니 들어오시라 하는데.. 쿠로오가 회장님한테 얘기해서 다이치쪽 회사 관리에 좀 손대게 된거.. 다이치네 사장님급의 파워 가지게 되고 다이치는 티는 안내려하지만 첩질하면서 얻은 권력으로 사장님이 일궈온 회사에 간섭하는 쿠로오를 점점 더 경멸하게 되는.. 그리고 쿠로오는 그런 다이치의 시선이 싫어서 그 경멸하는 재벌가의 권력으로 다이치 찍어누르려고 하는 뭐 그런.. 자기가 몸굴려 얻은 걸로 수근대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회장실에서 받은 그 다이치의 시선이 쿠로오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쿠로오도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이치를 찍어 누르려드는.. 재벌가의 권력을 혐오하면서 그 안에 몸담고 있고 그러면서 넌 다른 것처럼 굴지마 어차피 너도 똑같잖아<이런 시선으로 서로를 혐오하는 쿠로다이 보910다........
83.
남녀노소 인간적으로 호감캐인 회사원 >>게이<< 다이치가 낫연애주의라 파트너들만 만나고 다니는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후배 테루시가 들이대는거 보고십다. 평소에는 뻔뻔하게 굴면서 둘이 있을 때 문득 얼굴 붉히면서 선배 저 언제 받아주실거에요? 이럼.
그럼 다이치는 그 좋은 사람 얼굴로 웃으면서 한 번 자고 싶은거면 언제든지 얘기해^^ 이랬으면. 그거 말고 저는 선배랑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구요 이러면 다이치가 진짜 악의없이 친절하게 웃으며 그건 안되겠는데^^ 이래서 테루시 무한상처 입고.. 테루시가 분한 얼굴로 선배 진짜 나쁜 사람인거 알아요? 이러면 다이치가 진짜.... 정말 죠낸 예쁘게 웃으면서 나한테 그런 말 하는건 유우지 뿐인걸? 이래쓰면!!!!!(쾅
호감캐 만렙인 다이치가 왼쪽이 한정 썅놈 되는거 너무 조타고!!!!!!!!!!
84.
아 우시다이 뽕찬다(벌컥벌컥
체육계 남자애 다이치 운동 꾸준히 해서 체력 좋은데 그런 다이치 녹초 만드는 스테미너 킹 우시지마 원한다.... 아 진짜 지쳐서 흐물흐물 거리는 다이치 이해 못하는 우시지마라든가.. 진짜 다이치 기도 안 차서 너 진짜....허.......(말도 안나옴.
그런 다이치에게 ??뭐가 문제지??하는 우시지마라든가..다이치 이 자식 원래 이런 놈인거 알았지만 너무 어마무시해서 할말을 잃어버린다든지.. 근데 안돼라곤 안할거 같다고 다이치잉으앙아아ㅏ>///< 내 썰에서 다이치 기본 다정하니까 말이에욧(쿠로오:??
다이치 그 다음 날 녹초되어서 이불속에서 기절하듯 잠들어있는거 보고 우시지마가 몸이 안 좋은가?? 싶어서 약국가서 아무약이나 막 다 사오는거 보고 싶다. 이 소브드한 눈새같으니라고><하....어떡하지 살려조 ㅇ<-< 나중에 다이치가 약보따리 보고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야 이러는데 ??왜? 라고 묻는 우시지마한테 다이치가 그...어제 늦게 자서 그렇잖아...// 라고 우물쭈물 그러는데 우시지마가 웃으면서 어제 너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미안< 이딴 핵직구 날렸으면 조케따고!!!!!!!! 조낸 다이치 야 너 뭐야///;;; 이러는데 우시지마가 왜 너도 어제 좋아했잖아< 핵직구 연발 헀음 좋겠다고!!!!!!! 아 우시다이 건강한 성관계 라이프!!!!!!!!!!!!!!!!!
아 소브드한 연애하는 우시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치겠다 건전하고 건강한 성생활 동반된 연애의 교과서 같은 그런 연애하는 우시다이... 진짜....... 풍파없는 연애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그런 연애하는 우시다이....고민이래봤자 남친이 빤쓰를 아무데나 벗어놔요 이 정도인 그런 연애......(자연스레 동거하고 있음) 밥먹다가 눈 맞아서 푸슬푸슬 웃으면서 뽀뽀도 하고 손도 잡고 뭐 그런거. 안그럴 거 같은 남자애 둘이서 그러고 있는거 상상하면 너무 귀엽고 휴일에 놀러가는 장소로 의견 갈려서 아웅다웅 하다가 시간 지나서 그냥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배달이나 시켜먹고 티비보다가 눈맞고 배맞고 해도 안 졌는데 쿵떡쿵떡하고 헣 시......너무 좋다.....너무..........(오열
원작에서 열심히 사는 애들이라서 그런지 연성에서 그냥 헐랭하고 말랑한 생활을 사는 두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 싸우다가도 뽀쪽하고 이래도 화낼거야? 라고 말하면 내가 언제 화냈어? 하고 막 뒹굴어버리는 그런 애들...헛시........어덕하냐 우시다이 이렇게 좋아서.....(시름
85.
선유님이랑 같이 푼 쿠로다이 요롯빠 신혼여행 썰 '0')/
한달 동안 신혼여행을 떠난 쿠로다이가 여행지 시장가는거 보고 십다. 저기 마켓 열렸다고 둘이서 막 커플템 하고 커플힙쌕 같은거 차고 커퀴 티내면서 다녔으면.. 거기 지랄꾸러기 상인이 둘이 커플이냐고 보기 좋다고 꿀발린 말 해주니까 딸기 덥석 사주고ㅋㅋ 그 와중에 쿠로가 커플노노 부부데스 이러는데 머래 미친놈앜ㅋㅋㅋㅋ하고 쿠로 퍽 치는 다이치가 발그레 하고 웃고 있어서 주변 상인들이 커플이네 ㅅㅂ<하고 보는거 보고 십다. 호스텔 침대위에 장봐온 자두 같은거 떡치다 뭉개져서 시트 변상해주고 말이여 ㅋㅋㅋ와중에 또 변상할 생각보다 헉 너 달다면서 물빨핥하면서 커퀴질함ㅋ 그러다 지쳐서 대낮에 맨몸으로 늘어져 있어라.. 이 지랄꾸러기들. 호스텔 주인이 안그래도 헤이 재패니즈 호모너네 존나 시끄럽다고하면서 맨날 불평하는데 시트까지 조져놨으니 ㅉㅉ
우리 망했어..
어떡하지?
변상해야지 뭐
하면서 낄낄거리면 좋겠네 둘이 돈 나가는데 좋다고 쳐웃곸ㅋㅋㅋㅋ
둘이 막 민소매 티+반바지 입고 버켄같은거 신고 커플힙쌕 캐쥬얼한 썽구리 커플스냅백 같은거 쓰고 손잡고 돌아다니는 호모게이들.. 한달 동안 여행하면서 꼬실꼬실 끄슬려가지고 에쁘게 익었으면 좋겠다/ㅅ/ 길거리에서 막 음식 같은거 사먹고 ㅋㅋㅋㅋ 와중에 쿠로맘 말 안 듣고 선크림 안 발랐다가 익어가는 다이치도 보고십다. 콧잔등 빨개지고 껍질 일어나서 쿠로가 야잇 내가 뭐랫어! 하고 잔소리 하는거 보고싶다. 남자 둘이서 막 손잡고 드럭스토어 가서 시트팩 사다가 냉장고 막 넣어두고 그랬으면... 다이치가 막 차갑다고 난리치면 쓰읍!!하면서 눕히는 쿠로오...!!!!!(벽부숨)
조낸 드럭스토어에 다이치 끌고가서 직원한테 다이치 콧잔등 가리키면서 디스디스 이거 어떡하냐고 영본어 막 쓰면서 와중에 한손은 꼭 잡고 한손으로 다이치 콧잔등 가리키곸ㅋㅋ 디스디스 어떻게 좀 해줘요 앗뜨앗뜨 홋또홋또...ㅅㅂ...귀여운게이들....
둘이 그러고 쫄래쫄래 다니다가 프리마켓 이런데서 오 팔찌 이쁘당:3 하면서 똑같은거 사서 커플템하고 다니곸ㅋㅋ 이 와중에 시계도 커플이었으면..캐쥬얼한데 끈 교체되는 시계라서 막 둘이 끈 무지개색으로 차고 다니고 말이야!!!(천장부숨) 하루하루가 축제인 것 처럼 다녔으면 ㅠㅠㅠㅠㅠㅠ 장소는 이탈리아나 로마 가튼 곳...
귀국 전날 침대에 늘어져서 나라 잃은 얼굴로 조낸 가기 싫다ㅠㅠㅠㅠ시바ㅠㅠㅠㅠㅠㅠㅠㅠ끄어어어ㅠㅠㅠㅠㅠㅠㅠ하고 둘다 머리 싸매고 데굴데굴 굴렀으면..
다이치가 성격에 안 맞게 인별도 하는데 신행가기 전에 엄청 큰 트렁크에 짐 챙기는데 쿠로가 선글쓰고 그 트렁크에 들어가 앉아있는거 웃기다고 찍어서 막 인별에 올려주고 그랬으면..
머리맞대고 계획짠다고 난리치는것도 보고십다. 어디 가지?! 어디 가고싶어?! 하면서 넘 많이 써버려서
하나씩..삭제하자..
그래..
멜라또? 젤라또? 그거 먹어야 된다던데
??그게뭔데?
몰라
둘이 검색해보고
아 뭐야 고긴 줄 알았네
야 지워지워
이러는 남자애들.. 그랬다가 이탈리아 가서
저거 머냐 아이스크림이냐(처묵)
미친 존나 맛있어(승천
피렌체 검색하다가 1kg짜리 티본스테이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야!!!!! 여기!!!!! 스테이크가 1kg이래!!!!!!!!!!!
뭐!!!!!!!! 니가 몇kg이지!!!!!!(대흥분
하고
피사의 사탑 가서 사진 ㅄ같이 찍는건 말할것도 없고...(?
걷다가 발 뒤꿈치 까져서 신발 새로 사 신고.. 막 그러는 것도 보고싶구...쿠로오 말 듣고 선크림 챙겨바르는데 그때마다 끈적거린다고 징징거리는 다이치도 보고싶고요(포인트:쿠로오한테만 징징거림) 그런 다이치한테 쿠로가 너를 보는 내 시선이 끈적거리는게 아닐까☆ 이딴소리해서 엉덩이 걷어차이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티칸에 천지창조 보러 성당 안에 들어갔다가 떠들면 경찰한테 경고받아서 입다물고 목빠져라 천장 보다가
너 내 말 들리냐
아니
여기선 떠들면 안돼
알아
들리냐고
아니
근데 어케 대답해
ㅋㅋㅋㅋㅋ
뒤질래ㅋㅋㅋ
하다가 관리인한테 한소리 듣는것도 보고십닼ㅋㅋ
86.
언젠가 써보고 싶은 슥다. 다이치가 진짜 지독하게 짝사랑하고 스가는 진짜 너무할 정도로 안 받아주면서 애 안 놔줘서 다이치 진짜 멘탈 걸레짝 되었는데 죤 벤츠남이 다이치에게 찾아옴. 스가 급불안해지고..그러면서도 스가는 다이치에게 똥허세부리고 막...어차피 넌 나 좋아하잖아? 근데 속으론 말 불안해가지고 떠나면 어쩌지 진짜 부들부들 하고 있는데.. 다이치 진짜 참았던 눈물 터져서 그래 이 ㄱ ㅐ 새 기야!!!! 빽 소리지르고 도망 갔음 좋겠다....와중에 다이치 쓸데없이 성실해서 그 벤츠남이랑 장난으로라도 안 만날거라고....벤츠남은 다 알아서 괜찮아요 나 이용하면 되지^^ 그렇게라도 사와무라상이랑 애인기분 내고 싶은걸요^^ 이러는데 다이치는 더 미안해서 못할거야...근데 진짜 자긴 스가 넘 좋아하거덩... 개차반스가 사랑....존좋.....
87.
쿨다 동거하는데 다이치 퇴근하고 왔더니 구로오가 누드에이프런 입고
어서와 다이치 저녁 먼저? 아니면 목욕? 아니면.........나?♡
라고 해서 다이치가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나갔으면 좋겠다. 쿠로오가 다이치 잡으려고 뛰쳐나왔는데 누드에이프런이라서 다이치가 식겁해서 알겠다고 들어가 들어간다고 하고 다시 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다이치는 동거의 로망을 모른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찡찡거리는 쿠로오 달래느라 다이치 일주일동안 고생함.
알았어, 나도 해주면 되잖아 까짓거 해주면 되지? 라고 해서 쿠로오가 야근하는 날 미리 알려줌. 쿠로오 진짜 엄청 멍청한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폭풍잔업하고 집 들어오면서 열쇠로 안 열고 두근두근 초인종 삥뽕 누르는데 다이치가 누드 에이프런 입고 열어줌. 쿠로오 감동해서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다이치가 대사 뱉음.
밥부터 먹을래, 목욕부터 할래, 아니면 그냥 나.
...다이치 잠깐만 왜 의문형이 아닌..
나
...
나라고(벗음
그리고 현관에서 엄청나게 색수했다
현관부터 거실 침실까지 민족대이동 하면서 신나게 사랑했는데 나중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쿠로오가 막 아니 그 멘트는 그러면 안되지 막 부끄부끄 수줍수줍하면서 물어봐야 모에력이 폭발한다고! 이러는데 다이치가 그래서 싫었어? 하면 아니요 하고 다뭄ㅋㅋㅋㅋ
88.
쿠로오가 자길 좋아하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는데 어느날 문득 얘기하다가 쿠로를 봤는데 정말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있어서 좋아하는 걸 알고봐도 자길 너무 좋아하는게 눈에 잘 보여서 새삼스럽게 민망해지는 다이치 보고싶다. 쿠로는 능글맞고 수완좋고 자기 주장도 있으면서 그걸 유연하게 관철시키는 능력이 있는 앤데 유독 자기 관련 된 문제에는 좀 예민해지고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면서 쑥스러운 다이치라든지... 물론 쿠로는 다이치에게 티 안내서 다이치는 잘 모르지만 장거리 연애하니까 만나는 순간 만큼은 진짜 있는 힘껏 애정표현하고 좋아하고 함께 있는 시간 소중히 여기면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것 처럼 행동하면서 도쿄 돌아가는 신칸센 타는 순간부터는 으으 아까 사와무라 피곤해 보였는데 내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나 왜케 살 빠진거 같지? 안색이 안 좋아보였는데 요즘 수험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가 하고 폭풍 걱정하는 쿠로오 보고싶고.. 다음에 만날 땐 지금 신경쓰이는거 보완해서 충실히 데이트 하고.. 다이치는 자기가 모르는 미야기 스폿이 이렇게 많았나 어리둥절 할 정도로 열심히 데이트 준비해오는데 그게 널 좋아하니까 당연하지! 라는게 눈에 너무 보이는 태도라 다이치 또 쑥스럽고 민망해진다... 이새끼는 부끄러운 것도 모르나..싶은데 좋으니까 그냥 가만 있기로 한다<
당연히 서로 좋아하니까 당연히 연애하고 당연히 이렇게 지내지, 라고 감정 자체에 그 어떤 의심도 부정도 없는데 그 당연한 것의 크기가 확 실감나는 순간 민망해하는 다이치 보고 싶고.....
89.
아침부터 발기찬 썰이 생각났는데 이게 공계용인지 뒷계용인지 수위가 애매하넼ㅋㅋㅋㅋㅋ
별건 아니고 쿠로다이 예쁘게 연애하던 중에 다이치가 갑자기 나도 넣어 보고 싶어 라고 말해서 쿠로오 먹던 오렌지 주스 줄줄 뱉는거 보고 싶고요6ㅁ6 쿠로오 기함하는데 다이치가 딱 한번만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실랑이 하는거 보고싶다 물론 쿠로가 져주겠지. 으아니 그 다이치가! 무려 그 다이치가 조르는 목소리로 막 슈렉고양이 눈으로 슬금 올려보는데 쿠로가 안 들어주고 배겨? 6ㅁ6 사귀고 몇년 동안 한번도 안 부린 애굔데! 초레어템인데!!!! 그래 슈발 까짓거 다이치도 맨날 대주는데 나라고 그거 한번 못해주겠냐 싶어 얼떨결에 오케 해버리는 쿠로.. 온갖 다이치의 에프터서비스를 약속받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역사적인 그 날이 되는데.....(불행을 암시하는 도입부)
다이치가 서툴지만 겁나 열심히 해주는 립서비스 받으면서 쿠로 간다간다뿅간다 하면서 흐물흐물 늘어지고.. 키스도 엄청 서툴던게 몇년 동안 했다고 나름대로 쿠로가 하는거 흉내 내면서 따라하려고 그러는게 넘나 좋은거지.. 아 얘한텐 나 밖에 없었구나 하고 그러다가 뒤에 뭐가 쑥 들어오는데 헉 시발 욕이 절로나오는 불쾌함과 고통ㅋㅋㅋ 다이치가 젖은 손가락 넣으면서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데 쿠로 겁나 쾌남처럼 웃으면서 괜찮아 이 정돈 하하 다이치 다 넣었어? 하는데 뭔 소리야 이제 손가락 하나 들어갔는데.
그리고 진짜 쿠로오 이세상욕이란 욕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썰물처럼 밀려오곸ㅋㅋㅋ 다이치 익숙해졌다는거 다 취소한다 다이치 더럽게 못해줌ㅋㅋㅋ 이건가? 아닌가? 하고 불쑥불쑥 쑤시는데 쿠로오 진짜 지금 이게 다이치고 나발이고 다 때려 죽이고 싶고 이세상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곸ㅋㅋㅋ 쿠로 고통에 눈물 찔끔 흘리면서 하 ^^ㅣ발 다이치 너 진짜 나 존나 사랑하는구나 어떻게 이걸 견디지ㅅㅄㅂ하면서 고통과 불쾌함에 몸서리를 치는뎈ㅋㅋㅋㅋ 다이치 겁나 열심히 낑낑대면서 쿠로한테 넣고 쿠로도 이 미친 고통속에서 최대한 느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다이치 다 넣고 좀 사부작거리더니 갑자기 훙냐냥되더니 혼자 가버림ㅋㅋㅋ 쿠로 어이상실ㅋㅋㅋㅋ ㅅㅂ나는!?! 지금 내 상태는?!! 다이치가 쿠로 위에 축 늘어지면서 할딱거리고 있고 겁나 야한데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왜 ㄸ을 빚지 모태!!! 쿠로한테 상처만 남기고 결국 다이치 혼자만 신나게 즐긴 강렬하고 불쾌한 첫 뒷경험이었다....(타임라인:수근수근)
물론 그 뒤로 한번 간 다이치 엎어놓고 쿠로가 열심히 했을겁니다6ㅁ6
90.
쿠로다이 동거하는 방 한쪽엔 티비가 있는데 티비 앞에는 두 사람이 장거리 연애시절 서로를 닮았다고 사준 고양이와 까마귀 모양 열쇠고리 피규어가 놓여있다. 그리고 오늘 밤 하고 싶어, 의 의미로 상대방의 피규어 쪽으로 돌려놓는 것이 모종의 싸인이다. 쿠로오가 회식 때 와이셔츠에 립스틱자국을 만들어 온 날 다이치는 꾹 참고 빨래통에 와이셔츠를 쑤셔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이치의 지옥의 해장국(시뻘건 고춧가루가 둥둥)을 맛본 쿠로오는 역시 다이치 밖에 없다며 출근길에 피규어를 살짝 돌려놓았다. 그리고 칼퇴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서 빨간 장미꽃을 사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온 쿠로오는 왔냐며 다정한 얼굴로 맞아주는 다이치를 보고 이게 행복이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따 내가 죽여줄게 다이치♥라고 생각하며 겉옷을 벗던 쿠로오는 문득 티비 앞 고양이 모양 피규어의 모가지가 뚝 분질러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걸 보고 사색이 된다. 다이치......살...살려만 줘.....
91.
몇년 연애한 애인이랑 결혼 실패한 뒤 혼자 사는 30대 초반 다이치랑 옆집에 이사 온 갓 사회 진출한 20대 중반 쿠로오랑 얼레리 꼴레리 했음 좋겠네(* ͡° ლ ͡° *)
다이치 안 좋은 일 있어서 개꽐라 되어서 들어오는 날 쿠로집에 열쇠 꽂아서 덜컹덜컹해서 뭐지??하고 나가봤더니 술취한 다이치 있음.
? 무슨 일이세요??
어? 너 웨 우리지베 이쒀?
???사와무라씨 술취했어요?
ㅎ..ㅎ..
??!!! 사와무라씨???
푸흐흐 웃으면서 털퍽 주저 앉는 다이치 보고 당황해서 부랴부랴 붙들고 일으켜 세우는 쿠로.
아 이 아저씨가 진짜 저기요. 여보세요. 여기 아저씨 집 아니거든요?ㅋㅋ
그러거나 말거나 떡실신된 다이치 한숨 팍 쉬면서 자기 방에 데려가는데 맨날 단정하고 반듯한 다이치만 보다가 이런 모습 보니까 좀 귀엽고 재밌고 그럼. 다이치 약간 어느정도 사회에 찌들어 있는 남자고 언제나 밝게 얘기하는 건 쿠로였는데. 심지어 집 잘못찾아오는 실수까지하니까 귀여워줍니다. 삽십대 아저씨가 웨 귀여운지는 쿠로만 모르겠지ㅎ
첫인상은 옆집남자/옆집남자 < 였는데 다이치 야근하고 오는 날 팔에 자켓 걸치고 넥타이 반쯤 당겨서 느슨하게 하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미간 구겨져 있고 열쇠로 문 여는 데 편의점 봉다리에 맥주 담아서 신나게 들어오면서 걸그룹 노래 부르는 쿠로오와 마주침. 복도형 멘션이라서 마주치게 되는데 다이치랑 마주치고 멈칫하는 쿠로오.. 머쓱해서 노래 부르던거 멈추고 허허 웃으며 지나가는 쿠로오랑 가볍게 눈인사 까딱하고 열쇠로 문 여는 다이치. 자기 스쳐지나간 남자가 자기 옆집문 여는거 보고 어라 싶은 다이치와 머쓱한 얼굴로, 옆집입니다. 잘부탁드려요 하고 처음으로 인사하는 쿠로오. 다이치도 아 네, 하고 받아주고. 그렇게 첫대화 섞고 좀 지나서 스치다가 오며가며 인사하는 사이가 됨. 이런 둘이 사와무라씨, 쿠로오군 하고 서로를 부르게 되겠지..술먹고 온 담날로 돌아가서, 다음 날 쿠로오 침대에서 뭔가 지글지글하는 소리에 눈 뜬 다이치.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부스스 일어나니 어정쩡하게 안 맞는 파자마도 입혀져 있고 쿠로오가 깼냐며 지금 아침 준비중이라고 하는 상황이라 얼떨떨..
나 왜 여기있어? 니가 나 데려왔니?
사와무라씨 어제 술취해서 집 잘못 찾아오셨잖아요.
내가?
네
...
속아플텐데 가볍게 아침 먹고 가요.
아냐 민폐끼쳐서 미안했다. 그만 가볼게.
네? 아 저, 밥은 먹고..
아냐 바로 옆인데 뭐. 옷은 빨아다 줄게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숙취로 인상 콱 찡그리면서도 자기 짐 챙겨서 일어나는 다이치. 머쓱하게 서 있는데 생각할 수록 뭔가 좀 이상하거든 쿠로는. 현관에서 신발 대충 신는 다이치 붙잡아서 세움. 사와무라씨, 무슨 일 있죠? 쿠로 말에 다이치는 아니, 하고 대답하는데 고개를 피함. 뭔가 이상하다는거 눈치 챈 쿠로가 다이치 계속 다그치는데 다이치가 그런 쿠로 손 뿌리침.
정말.
....
정말 아무 일도 없어.
놀라서 서 있는 쿠로를 두고 다이치는 후다닥 나가버리고. 다이치 우당탕하며 나가서 자기 집 문열고 들어가는 소리 들으면서 쿠로 잠시 현관에 멍하니 서 있고. 그러다가 가스렌지에서 국 넘치는 소리에 이크크 하고 놀라서 후다닥 들어가서 가스불 끄고 서 있는데, 다이치 얼굴이 막 안잊혀져. 아무일도 없다고 하면서 얼굴은 곧 울거 같은 얼굴이었어서. 운다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미묘하고 사정을 설명할 수 없는 그 표정에 쿠로오는 얼떨떨... 그리고 그 날 그 순간부터 다이치를 엄청나게 의식하는 쿠로오. 그렇게 시작되는 쿠로오의 짝사랑..(* ͡° ლ ͡° *)
92.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계속 환생하는 다이치와 영생을 사는 쿠로오 이야기 ~_~
다이치가 죽고 나면 그 다음 환생을 위해서 쿠로오는 계속 기다린다. 예전에는 영생을 사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는데 다이치를 만나고 나서 쿠로오는 생각하겠지. 너와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태어났구나 생각해. 다이치가 언제 환생할지도 어디에 환생할지도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쿠로오는 다이치를 떠나보내고 나면 다이치를 찾기 위해 기약 없이 헤맨다. 제일 오래 걸렸을 때는 다이치가 두번 더 환생하고나서야 만날 수 있었음. 다이치와 헤어지고 떠난 여행.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느 마을을 지나던 도중 양수가 터진 만삭의 임산부를 만나 아이를 제 손으로 직접 받았고 임산부는 가엽게도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음. 쿠로오는 생각했다. 다이치의 이번 생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라고.
그 어떤 생에는 다이치가 부잣집 규수로 태어나 쿠로오는 다이치를 만나기 위해 담을 넘고 달밤에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한다. 다이치는 부끄러워 탐스러운 머리칼을 한줌 쥐어 얼굴을 가리면서도 한쪽 무릎을 꿇은 쿠로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항상 젊은 모습의 쿠로오와는 달리 청년의 시기를 지나 점점 변해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다이치는 어쩐지 못마땅할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몇번이고 너와 재회할 거라면 나도 너처럼 영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말은 쿠로 앞에서 절대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면 되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이치는 다음 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쿠로오도 갑자기 나타난 다이치라는 존재가 충분히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생에서는 원수의 집안에 다이치가 환생해서 고통스럽게 사랑하고 서로의 집안을 원망한다. 야반도주를 하던 중 발각되어 다이치 집안의 추격을 당하게 되는데 높은 분이 저런 놈은 집안의 수치니 가차없이 둘 다 쏴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계속되는 추격끝에 그런 다이치를 지키려 쿠로오는 등으로 쏟아지는 수십대의 화살을 맞는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 나를 위해 살아줘. 쿠로오의 말과 함께 끼치는 기분 나쁜 피냄새. 저를 감싼 쿠로오의 몸이 쓰러지고 충격먹은 다이치를 집안 사람들이 데려간다. 다이치가 들은 것은 물고기 밥이 되게 저놈의 시체를 강으로 던지라는 말이었다. 다이치는 그렇게 끌려가 갇힌 방에서 사흘밤낮을 소리도 내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다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 다이치는 십수번의 환생에서 단 한번도 쿠로의 죽음을 본적 없었다.
다이치와 슬픔과 무관하게 생은 반복된다. 그 다음의 생에서 다이치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 다이치는 한달에 한번 정도는 그 날의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다. 괴로웠고 외로웠기에 차라리 말을 못하는 자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여느 때와 같은 하교길, 말 없이 혼자 걷고 있던 다이치는 문득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를 발견한다. 그 순간만큼은 말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남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 처럼 다이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원망스러웠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다이치는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자신을 끌어안은 남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칠 뿐이었다. 진정한 다이치를 제 집으로 데려간 쿠로오는 벗은 등에 빼곡하게 난 지저분한 흉터들을 보여줬다. 다이치는 또 말없이 눈물만 한참 흘렸다.
시간과 기억의 제약을 거슬러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한다. 또다시 다이치를 보내고 다이치를 찾아 헤매던 쿠로오는 문득 다이치가 죽은게 몇 년째인지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다가 놀란다. 무려 50년이 넘게 지나있었다. 그냥 이번이 조금 길어질 뿐이라 생각한다. 겨우 다이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한번도 가본적 없는 동남아시아의 뜨겁고 습한 동네였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여름인지 가늠할 수 없는 뜨거운 공기가 일상인 동네에서 다이치는 살고 있었다. 여행자 신분으로 도착한 쿠로오는 야시장에서 다이치를 만나게된다. 언제나처럼 재회하고 눈을 마주친다. 재회한 다이치는 한꺼번에 흘러들어오는 전생의 기억들에 멍한 얼굴이 되곤 했고 쿠로오는 그런 다이치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다이치는 멍한 얼굴이 아닌 의아한 얼굴이었다. 아주 조금 늦게 의아한 얼굴에 무언가 떠오르는 순간 야시장의 가스통이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순간적으로 놀란 쿠로오는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고 정신을 차리니 주변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거나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다이치 또한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고작해야 팔뚝에 화상을 조금 입은 쿠로오는 다음 날 뉴스와 신문을 도배하는 야시장 가스폭발사건에 대한 뉴스를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번 생에 넌 어떤 가족을 만나고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다이치와 이별해야했다.
아마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라고 쿠로오는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다이치와 다시 만나게 되어도 다이치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쿠로오는 그런 다이치에게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한참을 듣던 다이치는 번뜩 뭔가 생각나는 듯한 얼굴로 쿠로오를 불러왔고 쿠로오는 늘 그러했던 것 처럼 다이치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다이치가 전생을 떠올리고 나면 꼭 사고가 났다. 교통사고, 빌딩 붕괴, 사고의 끝은 항상 다이치의 죽음이었다. 대여섯번인가 반복하다가 쿠로오는 그만 지쳐버렸다. 두 사람의 재회의 룰이 어느 순간 변화했다. 다이치는 환생하면 쿠로오를 기억하지 못한다. 쿠로오를 기억해내는 순간 사고가 나 죽게 된다. 눈 앞에서 폭파사고가 나고 등에 수십대의 화살을 맞고 강물에 내던져져도 죽기는 커녕 조금만 지나면 멀쩡해지는 쿠로오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망령처럼 떠돌며 환생한 다이치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하는거, 될대로 되어란 마음으로 다이치를 찾지 않고 산속에 쳐박혀 살다가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떠돌아 다닌다.
그러다 다이치를 다시 만났지만 쿠로오는 말을 걸지 못했다. 행복하게 웃는 다이치의 옆에 있는 배나온 여자는 아마 부인일 것이다. 그렇게 다이치를 지켜보기만하다가 수명을 다하는 것 까지 보고 쿠로오는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이번 생의 다음에도 너는 여전히 나를 기억할 것인지. 다음 생애 다시 만나 쿠로오는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쿠로오 테츠로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다이치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시 처음부터 사랑하면 된다. 전생같은 건 상관없어그렇게 쿠로오 테츠로는 이번 생도 다음 생도 몇번이고 사와무라 다이치를 만나며 처음부터 다시 사랑한다. 영생을 살며 너와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93.
다이치는 감기기운 느껴지면 바로 약먹고 푹 쉬어버리는 타입이라 감기 심한 경우 잘 없었는데 배구 그만 두고나면 건강 관리 금방 소홀해질거 같다. 가끔 옛날 생각하면서 새벽에 뛰긴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규칙적 생활만 지키고 다른건 흐트러질듯. 일탈은 아닌데 그냥 소홀해진다<수준의 생활을 할거 같음 게다가 쿠로랑 동거하니까(걍 이젠 공식설정이다) 더 생활 개판될거 같고.. 바른생활은 어렵지만 타락하는 건 순식간이잖아요?(쑻
이러다 말겠지싶은 감기가 심해져서 당황스럽고 서러운 다이치 보고 싶다쿠로 어디선가 감기 걸렸을 때하면 평소보다 높은 체온이 더 흥분되고 민감해져서 잘느끼고< 이런거 줏어듣고 와서 오오하고 시도했다가 애 울리기나 해버림. 담날 쿠로오가문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감기처방식 풀코스로 다이치 극진히 대접함<근데 입맛에 안 맞음(쑻
시이밸 다이치 감기 때문에 고생하는데 땀 빼면 낫는다고 꼬셔서 쿠로오 쿵기덕쿵더러러하고 다이치 진짜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울었음 좋겠어. 숨쉬기 넘 힘들고 머리 아프고 오한들고 뼈마디 아프고 아픈게 억울하고 서러워서 엉엉 쿠로오 꽂은 상태에서 존트당황함. 우니까 코가 더 막히네? 다이치 숨 못쉬어서 컬럭컬럭 기침하고 숨 못쉬어서 할딱거리고 안압 높아져서 눈물 그렁그렁하고 온몸이 아프고 무거워서 서럽고 구로오가 하든말든 걍 갑자기 서러워져서 훌쩍거리는거 보고싶다...구로오 대역죄인됨. 내가 아픈데 동의 없이 구로오가 해서 서러움<ㄴㄴ
걍 아픈게 억울하고 서러움<ㅇㅇ
쿠로오가 받아들인거는 물론 전자여따. 다이치는 아픈 와중에 뒤에 뭐가 들어오든 말든 똥싸다 만 느낌 밖에 없음(존트너무함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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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다이
미야기 공식미남 오이가 설마 자기랑 사겨줄거라곤 상상도 못한 다이치. 다이치는 다이>오이라고 생각함. 다이치도 자기마음 안드러내고 담백하게 연애하는중. 비오는날 우산없다고 징징거리는 오이 마중 나갔다가 육교계단에서 미끄러진 다이치가 빠르게 난간잡았는데 아픔보다 쪽팔림이 더 큰 순간 오이가 놀란얼굴로 괜찮냐고 잡는데 우산은 이미 내팽개쳐져 있고 온몸이 쫄딱 젖거나 말거나 오이 눈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자기얼굴 보는 순간 다이치 너무 민망해서 얼굴 터짐. 인식한 순간부터 오이카와가 자길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지나치게 느껴져서 새삼 설레는 다이치. 다이치 당연하게 자기 마음이 더 클거라고 생각하는데 오이가 자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부터 얘랑 어떻게 연애했더라? 하고 모든 시간을 다 까먹을 정도로 당황하는게 너무 좋다.
다이치는 담백하게 연애할거 같아서 오이도 별로 다이치한테 표현 많이 안했음 좋겠다. 은근히 다이치가 놀랄까봐 맞춰주는거였음 좋겠구. 물론 먼저 고백했는데 태도 넘 담백한거 아닌가? 사겨보니 내가 질렸나??하고 걱정은 했음 좋겠고. 오이카와 연애하면 진짜 최선을 다해서 마음 줄거 같은데 다이치는 그래봤자 내가 쟤 더 좋아할거야<이런 마음에 오이카와 진심 다 못알아줬음 좋겠고.
분위기 되어서 키스를 하게 됐는데 다이치 너무 허둥지둥 이제껏 내가 어떻게 했더라 하나도 모르겠다 어엉ㅇ어 상태 되어서 숨도 못쉬고 굳어있는데 오이가 살짝 떨어져서, 눈 감아야지. 하고 손으로 눈 가려주면서 키스 했음 좋다. 시부엉 지가 무슨 인소주인공이냐?! 하면서 왕설레는 다이치..ㅋㅋㅋㅋ 딴애들이 오이카와 잘생기긴 했지< 이러면 오이카와 얼굴만 잘생긴게 아니고 성격이 좋은거라고 얘기하긴 하지만 오이카와 얼굴 제일 좋아하는건 다이치고ㅋㅋㅋ 자다가 깨면 문득 잠든 오이카와 얼굴바라보는 다이치있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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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다이
다이치가 끙끙 식은땀 흘리는거 보고 쿠로오가 다이치..? 하고 흔들어 깨웠는데 번뜩 눈 뜬 다이치가 울것 같은 얼굴로 쿠로 끌어안음.
??다이치 왜 그래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하하 왜 그래 별일이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장난치는데 다이치는 걍 얼굴 묻고 고개만 절레절레하고 쿠로 걍 다독다독.
사실은 다이치 각종 권모술수 난무하는 궁중치정극의 주인공이 되어서 쿠로랑 애틋하게 사랑하다가 결국 가슴아픈 죽음을 맞는 이야기< 이게 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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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다이
있잖아 스가, 첫사랑은 실패한대
바보야 그런거 다 미신이야
푸하하 웃으면서 다이치 놀리는 스가. 부활동 끝난 후 후배들과 헤어지고 즐기는 잠깐의 데이트.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는 친구이자 좋은 파트너와 연인인 두 사람은 졸업 후 멀어진 거리와 천천히 쌓이는 오해들에 결국 2년 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게 됨. 좋은 이별은 아니었지만 나쁜 이별도 아니었으므로 다시 만난다면 인사는 하겠지만 굳이 다시 만날 의지는 없는 두 사람. 배구부 모임에도 종종 나가지만 테이블 끝과 끝에 앉고 인사치레만 적당히 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을 잘 모름. 자주봐야 1년에 한번 정도 얼굴만 스치는 두 사람이 20대 후반에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어 삐걱거리는 재결합을 시작하게 되는데.. 10대와 20대를 관통하는 연애하는 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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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다이
사와무라 주말에 시간있어?
아 이번주요? 집안일이 있어서..다음주는 안되나요?
아냐 그럼 괜찮아.
네, 죄송합니다..
아냐
살짝 웃으면서 가는 쿠로카와. 다이치는 아쉬워서 발 동동 구르는데 선배가 말걸어줘서 그것만으로도 넘나 좋은것.. 주말이 지나 월요일. 학교에 갔다가 쿠로카와가 전학을 간 것을 알게 되는 다이치. 충격에 앓아 눕고 첫사랑 실패로 열병을 앓게 됨. 그리고 성인이 되어 취직한 회사,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다시 만나는 히로다이. 얘네 쌍방짝사랑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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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노다이
결혼과 가정 교양수업 과제 하다가 노트에 [엔노시타 다이치] 하고 무의식적으로 끄적거렸다가 확 얼굴 붉히는 엔노시타. 진짜 미쳤지 무슨 생각이야 정신차려 자기 뺨 철썩철썩 치는 엔노시타. 동경의 다이치와 같은 대학에 들어가서 같이 자취라는 쾌거까지 이뤄냈지만 같은 침대는 고사하고 같은 방에서 자는 것도 절대 못하는 엔노시타. 놀다보면 거실에서 같이 잘 수도 있는데 그런거 일절 없다. 반면 다이치는 무방비의 끝을 달려서 그런 다이치 보면서 매일매일 도 닦는 엔노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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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다이
약혼녀를 사고로 잃은 후 결혼할 마음 접고 그녀의 가족들과 연락하면서 지내는 다이치. 향올리고 온 식사자리에서 그녀의 남동생 잇세이가 집근처에 직장 내정받은 것을 알게 되고 신혼집이었을 집에서 같이 살게 됨. 다이치의 잇세이라는 호칭에 자기가 애도 아니고 간지러우니 마츠카와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다이치. 그런 다이치를 종용하는 마츠카와. 그녀를 억지로 묻어두는 다이치와 억지로 다이치 속 후벼파며 누나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맛층의 위험천만 동거..
99.
쿠로가 낮져밤이라서 침대 위에서 흥분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거친 쿠로를 마치 딴 사람 같다고 느끼면서 바람피는 느낌에 대흥분 하는 다이치 보고싶다. 그 배덕감에 가버렷..! 넘나 부끄러워서 쿠로한텐 말 못하지만 그거 때문에 앓듯 느끼는 다이치보고싶다
100.
mㅏ이홈 하다가 갑자기 다이치가 숲속 공방 운영하는거 생각나벌엿... 아버지의 공방 운영이 힘들어져 조금씩 끌어다 쓴 사채로 아버지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붙잡힌 다이치가 공방을 꾸려나가며 사채를 갚는 내용의...(주의:원작게임과 다른 내용일 수 있음)
모든 사실을 알기 전에 다이치는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던 학생. 다른 애들처럼 입시냐 취업이냐를 고민하는 평범한 학생. 아버지의 프라이드로 꾸려나가고 있는 공방은 자신이 낄 틈이 없어보였고 아버지는 아직 정정했으니 공방의 존폐여부는 먼일이라고 생각. 어느날부터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지고 대량 납품 관련된 일이었던지라 다이치는 쉬는 날 공방의 잡일을 돕고.. 하지만 납품이 돌연취소되면서 아버지는 자재값을 갚기 위해 사채를 끌어쓰게되고... 아버지는 돌연 잠적. 다이치는 방과후 집에 갔을 때 야쿠자들을 만남. 다이치에게 야쿠자들은 니가 대신 갚으라며 협박을 하게 되고 다이치는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공방으로 가게 되는데.. 작고 소박했지만 아버지의 평생이 담겨 있던 공방은 먼지가 앉고 낡은 채 야쿠자들의 협박쪽지가 즐비한 폐허가 되어있었다. 공방일을 도우면서 알음알음 봤던 실력으로 서툴게 공방일을 시작하지만 앉아서 공부만 하던 애가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냐고.. 심지어 미적감각은 제로인 다이치였던것이었다(눈물)
우선 공방을 청소하는 일 부터 시작하는데..마을 촌장이라는 사람이 방문한다! 쿠로오라는 젊은 촌장은 다이치에게 그간의 사정은 아버지에게 들었다며 힘들었겠다며 달래준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다이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기둥같은 존재였을터. 그 동안 쌓였던 설움이 폭발해 촌장의 품에 안겨 모처럼 아이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큰 손으로 다독거리며 달래주던 촌장은 울다 지친 다이치를 부축해 침대에 눕혀주고 달래주고 안아주며 그렇게 아직 먼지 쌓인 공방의 아버지의 것이었을 침대에서 촌장과 첫훙냐냥을 하게 되는데........(타임라인:뭐야이거
그렇게 서러움과 아픔과 이유모를 안도감에 펑펑 울면서 첫경험을 한 다이치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일어나 맞이한 집은 촌장이 보내준 인부들이 깔끔하게 치워준 상태. 촌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너도 잘 할 수 있을거라며 격려해줌. 그렇게 폐허가 된 공방이 안정화가 될 때 까지 낮에는 촌장님의 지원으로 공방을 수리하고 밤에는 촌장님께 안기는 시간이 계속 되고.. 촌장님이 고마워서+도움이 끊길게 겁나서+산속마을엔 아는 사람이 촌장님 뿐이라 다이치는 촌장님께 엄청나게 의지하게 됨. 그리고 공방이 안정화가 되면 촌장님의 발길이 뜸해지겠지....
처음으로 촌장님 없는 밤을 지내게 된 다이치는 어쩐지 외롭고 무섭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이치는 슬리퍼도 채 신지 못한채 부랴부랴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목수 우시지마씨가 서 있었다. 급한 건이 있어서 이 시간에 왔다는 우시지마씨는 목재를 주문했고 다이치는 허탈감을 애써 감추며 차를 대접하기 위해 물을 끓이며 부랴부랴 창고로 향해 목재를 가져오는데.. 생각 없이 맨손으로 목재를 만지다가 손끝에 가시가 박혀버림. 찌푸린 다이치의 손가락을 가져간 우시지마씨는 입속에 넣어버리고.. 살짝 깨물고 혀로 핥아 가시를 빼준 우시지마씨가 고개를 들었을 땐 다이치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우시지마씨에게 안겨서 입맞춤을 받고 정신 차리니 침대 위였고...
이쯤하면 알겠지만 숲속 공방을 꾸려나가는 다이치가 등장인물들과 함께 몸정을 같이 꾸려나가는 이야기랍니다 >:D
그렇게 자고 일어난 다이치는 비어있는 침대를 보며 씁쓸하게 생각하지만 곧 공방 거실에 있는 장부에 우시지마씨에게 지불해야하는 공임비 항목이 지워져있음을 깨닫게 되고.. 암묵적으로 우시지마씨에게 공임비를 지불해야할 때마다 침실로 향하게 되었다. 아직 할 줄 아는게 많이 없어서 어려운 건은 목수 우시지마씨에게 부탁드리는 편이었고 틈틈히 기술들을 배워갔다. 공방의 침대는 좀 더 좋은 것으로 바뀌였고 이 역시 우시지마씨에게 부탁해서 만든 침대였다.
우시지마씨의 도움으로 공방다워지고있던 어느 날..잘생긴 남자가 공방으로 찾아왔다. 꽤 유명한 듯 공방을 지나가던 동네 여자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이 근처에 샵을 차리게 되었다며 명함을 내민 남자의 이름은 오이카와였다. 니 공방과 우리 샵이 함께 노력한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을꺼야^^ 같이힘내자. 잘생긴 얼굴만큼 오이카와는 내뱉는말마다 달콤했다. 남자애인 다이치는 그런 멘트들이 낯간지러우면서도 어쩐지 가슴이 들떴다. 자주 공방을 비우고 오이카와의 샵에 놀러갔다. 의뢰는 쌓여만 갔고 정신 차렸을 때는 걷잡을 수 없었다. 충격에 빠진 다이치에게 오이카와는 다정하게 말했다. 도와줄게 다이치. 아는 공방이 많으니까 내가 알아봐줄수있어. 부탁해서 가져오는거라서 수수료는 좀 들겠지만, 우리 같이 힘내보자 다이치. 그렇게 장부에는 오이카와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혔고 이것또한 밤을 지낼수록 지워져갔다.
그렇게 평화로운듯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조금 거친 손길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나가보니 멋스러운 차림새로 빼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손님인가?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남자는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데코협회, 마츠카와 잇세이.
데코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사와무라씨는 어디가셨죠?
아, 아버지는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당분간 제가 공방을 맡게 되었어요. 무슨 일이신가요?
데코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왔다는 남자는 정중한 듯한 말투를 사용하며 무례하게 집안으로 들어오고.. 다이치가 뭐라 하기도 전에 공방 안을 샅샅이 뒤진다. 다이치는 남자에게 대접할 간식을 준비해주곤 주방에서 의뢰받은 물건을 마저 만드는데.. 주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냄새를 맡자마자 말했다. 함바그군요.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만들고 있어요. 함바그 좋아하시나요?
치즈를 올리면 완벽하죠.
슬쩍 웃는 남자의 얼굴은 경계심을 풀리게 하고 다이치는 남자에게 치즈 함바그를 대접하게 되는데.. 맛있게 먹고 나서 기름기로 반들해진 입술을 보고 다이치가 티슈를 가져다 주자 받아들어 입을 닦으며 남자는 말한다. 2층의 침대가 좋은 것으로 바뀌었더군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기 된 얼굴로 우시지마씨가 만들어준 침대를 자랑하던 다이치는 불현듯 그 침대위에서 했던 행위들이 생각나 머쓱하게 얼굴을 붉히곤 그릇을 치우고 데코협회의 남자는 그런 다이치를 보고 웃으며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2층으로 향하게 되고...
빼곡하게 기록했던 남자의 데코평가 일지의 비어있던 마지막 칸은 내려와서 채우게 되었다. 합격점을 받은 사와무라 공방은 오늘도 평화롭게 잘 굴러가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사채빚이라는 건 무서운 건. 공방을 꾸리는 것만해도 벅찬데 빚은 언제 갚을 것이며.. 어느 순간 빚쟁이들이 집에 들이닥치게 되는데.. 그렇게 열심히 꾸려나가던 공방 2층의 침대에서 야쿠자 행동대장에게 붙들려 시달리게 되는 날들이 지속되고.. 몸도 재정도 엉망진창이지만 다이치는 오늘도 이 공방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힘내라 다이치(쓴쑻
- 월서
회장님의 2번째 첩의 아들 쯤 되는 그야말로 서열이라는 것 축에도 못들지만 일단 호칭은 도련님인 니시노야와 가정교사로 새로 온 츠키시마. 어마어마한 대저택의 뒷담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열면 나오는 니시노야의 방은 좋게 말해 담쟁이덩굴이 덮혀 운치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관리가 잘 안되는 것 뿐. 엄마의 성인 니시노야를 따른 것만 봐도 얼마나 관심 밖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고 고용인의 그런 복잡한 사정이야 제가 신경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츠키시마. 그 곳에서만난 니시노야는 작은 체구지만 세상의 당당함을 가득 품은, 석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뜨거운 눈동자로 츠키를 마주하고..
- 마츠이와
마츠카와
응?
너 원래..이런 놈이었냐?
술 먹고 침대 위에 눕혀진 이와가 조금 열 올라서 투덜거리는 투로 말하자 맛층이 피식 웃으면서 이와 턱에 입을 쭙 맞추면서
그러는 너는 원래 이런 애였냐?
하며 이 세워 깨물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이와 위에 올라타는데 이와 미간 꾸깃꾸깃해져서 얼굴 붉히고 있는게 넘나 야하고.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바쁜 일 때문에 배구부는 마츠이와 둘만 참석했고 이런저런 얘기하다보니 둘만 따로 술자리 갖고 그러다 보니 러브호텔까지 와버림. 엄청 자연스럽게 올라탄 맛층과 엄청 자연스럽게 누운 이와 둘이서 묻따않 하기 직전 모드까지 갔는데 이와 머릿속에 친구랑 이런거 하는게 맞는가에 대한 뒤늦은 고민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함. 하지만 그런 생각 다 날아가게 맛층 넘나리 데드섹시.. 키스스킬 죽여주고. 너 좀 잘한다...? 하고 겨우 말했더니 맛층이 웃으면서 니가 해본 남자 중엔 제일 잘 할걸? 하고 온몸으로 집어삼킬 듯 올라타는데...
저 뒤 내용은 대략.. 맛층이 이런 앤거 이와쨩은 모르고 이와쨩이 이런 앤거 맛층은 알았는데 그걸 뒤늦게 알게 된 이와쨩이 어떻게... 하는데 맛층이 씩 웃으면서 왜긴 왜야 계속 너 지켜봤으니까 알지. 라고 했음 좋겠고. 이와쨩 당황해서 어버버 하는데 맛층이 그런 이와쨩 입술 근처 핥아올리면서 계속 너 지켜봤으니까 니가 오이카와 때문에 나 지켜볼 여유 없던 것도 잘 알고. 라고 했음 좋겠다...오이이와 사귀는 건 아닌데 둘이 미적지근하게 썸만타다가 어설픈 사이가 되어버렸구. 친구냐 하면 그거보단 더 찐한 사이인데 그렇다고 사귀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그런 관계. 물론 맛층은 그거 훤히 다보이니까 잘알고 있고 이와쨩 모르게 오이카와랑 부딪힌 적도 있었음 좋겠다.
묵직한 소리가 쿵하고 울렸다. 길고 길었던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가 땅 속에서 끓어오른 듯 무겁고 웅장했다. 굳게 닫혔던 궁궐 문이 열리고 식량이며 옷감을 나누기 위해 곳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궁궐의 앞뜰에는 백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저마다 품에 한아름씩 하사품을 안고서는 그들의 황제가 계신 곳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 전쟁에 지쳤을 군인들에게 충분한 포상과 휴가 또한 주어졌다. 왕실 소유의 마굿간에는 전쟁의 묵은 때를 벗고 반들하게 윤기가 흐르도록 손질 된 말들이 한가득 풀을 먹으며 한가로이 휴식하고 있었다. 시동들은 들뜬 걸음으로 저마다 연회에 필요한 물건들을 옮기느라 분주했고 곳곳에서 향긋하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다.
여름이 끝나는 무렵부터 시작해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지나며 치른 지긋지긋할 정도로 길었던 전쟁이었다. 남의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전쟁이었기에 쉽게 결판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혹독하고 길었던 전쟁이었지만 피해는 적었다. 그들의 지혜로운 황제는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에 강한 군대였다. 새순이 솟을 무렵 거짓말처럼 적국은 백기를 들었다. 따사로운 봄과 함께 날아들어온 달콤한 승전보였다.
“폐하, 연회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시끌벅적한 바깥의 분위기와 달리 서재의 공기는 따뜻하고 고요했다. 전장에 나가있는 동안 산처럼 쌓인 공문을 읽고 있던 사와무라는 힐끔, 목소리가 들리는 장지문을 바라보았다. 기척은 하나. 오늘 하루 정도는 궁의 모든 이들의 휴식을 명했지만 재상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라.”
방금 다 읽은 공문을 돌돌 말아 옆에 둔 사와무라는 새 것을 집어 들며 명했다. 소리 없이 열렸다 닫힌 문으로 기척 없이 다가온 스가와라가 고개를 조아리며 조용히 허리를 굽힌다.
“오늘 하루 쯤은 쉬어도 된다 하였거늘.”
“폐하께서 쉬지 않으시는데 제가 어찌 쉬겠사옵니까.”
“지금 네 놈이 내 명을 거역하느냐?”
속에 담긴 단어와 다르게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사와무라의 말에 스가와라는 느긋하게 미소지으며 조금 더 머리를 조아린다.
“명을 거역한 죄 하찮은 목숨으로 치르겠사옵니다.”
“아서라, 여전히 네 농은 재미도 없구나.”
말과 다르게 낮게 너털웃음을 터트린 사와무라는 새로 펼친 공문으로 금세 시선을 옮겼다. 오랜 시간 동안 손질 된 종이의 묵은 냄새가 섞인 따스한 봄공기와 멀리서 들리는 흥겨운 가락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공문의 내용들을 빠르게 훑는 사와무라의 행동에 스가와라는 머리를 조아린 자세 그대로 사와무라의 옆을 지키고 서 있는다.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에 그들의 황제가 빠진다니 저잣거리 코흘리개 꼬맹이도 비웃을 일이거늘 정작 황제 본인는 개의치 않는 듯 서류나 뒤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래가지고야 어디 황제의 위신이 서겠냐 싶어 전전긍긍한 스가와라의 속내 따윈 개의치 않는 듯 구는 행동이었다.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축하할 일이 있으면 기꺼이 궁의 창고를 열어 젖히는 황제의 행동을 달가워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아니꼽게 여기는 자들 또한 있었다. 황제 된 자가 그런자들의 눈치마저 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모난 행동을 해서 정을 맞을 필요는 없잖은가.
“연회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폐하.”
“연회는 쉬겠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참석해 마땅한 자리라고 미리 아뢰었지 않았사옵니까.”
“궁 전체에 휴식을 명했으니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있지 않느냐.”
“황제를 연회자리에 뫼시지 못했으니 황태후 폐하께서 저에게 책임을 물으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 가뜩이나 무능한 재상이라 마뜩찮아 하시는데 더 이상 눈 밖에 나면 정말로 제 하찮은 목숨이 간당거릴 것이옵니다.”
“스가와라.”
“뭐, 그리 된다 한들 궁에 들어온 순간 부터 하찮은 목숨을 폐하를 위해 바치기로 마음 먹었사오니 억울할 것도 없사옵니다만.”
드물게 이름까지 불렀거늘 스가와라의 말은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궁안을 활개치고 다니던 조막만하던 시절부터 모셨던 제 황제였다. 약한 부분 정도는 제 손바닥을 보듯 훤했다. 예상대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못마땅한 얼굴이 기어이 손에 쥔 공문으로 쿡 쳐박혔다.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연회복은 준비하지 말거라. 거추장스럽다.”
“승전을 축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특상품을 고르고 또 골라 바친 백성들의 정성이 담긴 연회복이옵니다. 나랏님을 위한 백성들의 마음을 어찌 그리 몰라주십니까.”
“스가와라..”
어디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구석이 없는 재상은 황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애초에 네 뜻대로 하려고 한게 아니더냐. 알아서 하거라.”
“어찌 감히 제가 폐하께 멋대로 굴겠사옵니까.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다니 당장 목이 날아가도 할말이 없사옵니다.”
“몇 번을 들어도 재미 없는 농이로구나.”
졌다는 듯 사와무라는 보던 공문을 책상 위에 내려두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큼성큼 걸어 서재를 나서는 사와무라의 뒤를 사뿐하게 스가와라가 뒤따랐다. 멀리서 황제의 걸음을 반기듯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
시야를 어지럽히는 색색의 옷을 입은 무희들이 화려하게 연회장을 수놓고 있었다. 흥을 돋우는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무겁지 않은 주제의 대화들이 가득했다. 연회장에 사와무라가 들어서자 음악과 대화가 멎으며 자리한 모든 이들이 황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황제의 자리를 향해 걷는 사와무라는 쓸데 없이 무거운 연회복 때문에 언짢은 기분을 억지로 감추며 미소지었다. 어차피 이 연회장에서 빳빳이 고개를 들어 황제의 얼굴을 볼 대범한 자는 없겠지만 어렸을 때 부터 몸에 밴 황실의 예법이라는 것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기나긴 전쟁에 백성들과 병사들, 그리고 대신들까지 모두 고생이 많았소. 오늘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이니 시름은 덜고 다들 즐겁게 즐겼으면 하오.”
사와무라의 힘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자애로운 황제의 은혜에 감사했다. 사와무라의 가벼운 손짓으로 다시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졌고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사와무라는 자리에 앉으며 흐트러진 제 예복자락을 가볍게 정돈했다. 연회자리를 좋아하지 않아 핑계거리를 대며 빠지기 일쑤였는데 어쩔 수 없이 붙들려 있으려니 벌써 죽을 맛이었다. 자애롭게 미소짓는 얼굴에 숨겨진 불편한 기색을 읽은 스가와라가 재빨리 사와무라의 옆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인다.
“폐하, 많이 불편하시옵니까.”
“불편한 자리에 불러놓고 불편하느냐 묻는게냐.”
“여기 모인 사람들이 폐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응당 참석해야 할 자리이옵니다.”
“알고 있다.”
작게 속삭인 사와무라가 꾸며낸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짓는다.
“네가 왜 그렇게까지 날 이 자리에 앉혀두고 싶어하는 지도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말거라. 적당히 얼굴 비추다 들어가볼테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사와무라를 향하는 뒤엉킨 시선들이 마냥 선망을 담은 것만은 아니었다. 황제를 향한 은애의 시선의 뒤에 날카로운 칼붙이를 숨기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자들의 위에서도 자애롭게 군림해야했다. 사와무라는 그들의 뜻대로 사사로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어리석은 사내는 아니었다. 사와무라의 방어적인 전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대신들이 꽤 있는 것을 잘 알았기에 이번 전쟁에서 더더욱 패할 수 없었다.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그치지 않고 영토를 더 확장하길 원하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사와무라를 괴롭혔다. 까마득한 선대에서는 전쟁을 즐겨하고 영토를 드넓혔더라는 이야기는 역사서에서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건 사와무라가 원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욕심을 위해 불필요한 피를 손에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적국의 포로들도 전쟁이 끝난 후엔 자신의 나라로 되돌려보냈다. 그 문제에서도 대신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사와무라는 관련된 상소문을 단호하게 돌려보냈다.
한가득 차려진 상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았지만 사와무라는 입에 대지 않은 채 그저 작은 술잔만을 집어 들었다. 쌀이 유명한 지역에서 정성껏 빚어 진상한 술이 입술 새로 흘러 들었다. 향긋한 술내음과 보드러운 봄바람은 안주거리도 필요 없을만큼 훌륭했다. 경쾌하게 울리던 연회의 음악이 잦아들었다. 팔랑이던 형형색색의 무희들은 빙그르 움직임을 정리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물러났다. 깨끗하게 빈 연회장의 중심에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올라섰다. 큰 신장에 비해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정교하게 세공된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사와무라는 힐끗 옆에 선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포로를 풀어주신 자애로운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번 연회를 축하하고자 조공으로 보내온 무용수이옵니다.”
“그런가.”
“제일가는 궁중 무용수로 춤솜씨가 아주 빼어나다고 하옵니다.”
가무에는 영 흥미가 없는 걸 잘 알면서도 스가와라가 굳이 올린 무용수라면 보지 않아도 실력이 상당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궁금해져 사와무라는 불편하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신장이 큰 사내는 윤기나는 검은 머리칼에 반쯤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염색했을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색을 내뿜고 있는 붉은 옷 위에 검은 실로 놓은 수는 화려함에 대한 고집이 엄청나 보였다. 과연, 칼을 든 장수들이 궁문을 열어젖히고 들이닥칠 때 까지도 술과 여자를 낀채였다던 망국의 복식다웠다. 그런 옷을 입고 선 사내의 모습은 과연 타국의 것임을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저 신장이라면 무용수라기 보단 장수가 더 어울리지 않은가. 사와무라는 사내의 몸을 가늠하며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본적 없는 예법으로 인사를 올린 사내는 기묘한 자세를 잡으며 섰다. 음악을 준비하는 순간의 고요함이 연회장 안을 맴돌았다. 낯선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깃든 긴장감이 팽팽하게 공기를 당겼다. 그런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음악이 시작되자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빙그르 자리에서 맴돌았다. 화려한 옷자락이 나긋하게 허공에 물결을 그리고 손 끝에서 부터 부드러운 움직임이 흘러내렸다.
고작 낯선 나라의 무용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으로 설명하면 지금 이 기분이 납득이 될 것인가. 남자가 움직이는 자리마다 허공에 붉은 잔상이 남았다. 마치 연회장 한 가운데 풍성한 모란이 피어나는 듯한 큰 궤적이었지만 그 중심에 선 무용수는 단 한 사람 뿐. 하지만 절대로 부족함 없이, 오히려 이런 화려함을 본적이나 있냐는 듯, 보란 듯이 온 몸으로 아름다움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발끝부터 손끝까지 허투루하는 움직임이 없었다. 기묘한 가락이 절정을 향해가고 사내의 몸짓도 점점 빠르게 달려나갔다. 느긋하게 시선을 당기는 초반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대단하다. 가무에 흥미라고는 전혀 없는 사와무라지만 그야말로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마치 이 연회장에 사내와 자신, 단 둘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 풀썩, 사내가 주저 앉고 조금 늦게 옷자락이 하늘하늘 내려앉았다. 눈 앞에 붉은 잔상이 어른거린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을 쉴 수 없는 공기가 맴돌았으나 이윽고 조용히 손바닥이 맞부딪히는 소리로 정적이 부숴졌다. 사와무라의 박수를 시작으로 연회장에는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사내가 사와무라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나긋한 봄바람이 가볍게 사내의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흐트렸다.
찰나에 시선이 마주한다. 붉은 노을이 일렁이는 이방인의 눈동자. 저절로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마음에 드시었는지요.”
나긋한 스가와라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내와 단 둘만이 존재하는 듯 했던 연회장에는 어느 새 다른 무희들이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어설프게 입술을 끌어올려 웃음지었다.
“그래, 대단하더구나.”
“마음에 드시었다니 다행이옵니다.”
“저 자에게 큰 포상을 내려 돌아가는 길이 섭섭지 않게 하라.”
“조공으로 바쳐진 이상 저 자는 이 나라의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이라 함은 저자가 머물 처소를 말씀하는 것이옵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점짓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본 스가와라가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를 내었다.
“포로로 잡혔던 병사들까지 그렇게 다 보내주시고 조공으로 바쳐진 사내까지 되돌려 보내려 하시다니요. 황제 알기를 우습게 알고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벌써 귀에 선합니다.”
단호한 스가와라의 얼굴과 말투에 사와무라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턱을 괴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스가와라에게 무어라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턱을 괸 손바닥에 쥐여지는 뺨이 슬쩍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래서 내가 우습게 보이는 소리를 듣고 있을 재상인가.”
“불지옥까지 쫓아가 그 자의 혀를 뽑아버리겠지요.”
하하하, 스가와라의 말에 사와무라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하게 표정을 정돈하고 선 스가와라가 조용히 사와무라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포로를 풀어주는 것은 폐하의 뜻을 따르겠지만 조공으로 들어온 것 까지는 아니되실겁니다.”
“어차피 재상의 뜻대로 하려고 한게 아니오. 알아서 하시게.”
사와무라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연회복이 몸을 꽉 눌렀지만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털고 일어섰다. 더 이상은 말릴 생각이 없는 듯 스가와라는 허리를 숙여 사와무라의 뒤를 따랐다. 사와무라의 뒤로 연회장에 모인 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하지만 호쾌한 걸음으로 연회복자락을 가볍게 휘날리며 사와무라가 연회장에서 모습을 감추자 멈췄던 음악이 다시 시작된다.
*
가벼운 인기척에 고개를 들자 호롱불을 든 스가와라가 조용히 서재의 등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쌓인 공문을 읽느라 잠시 정신을 빼놓은 사이에 삽시간에 어두워진 주위를 확인한 사와무라가 그제야 자세를 조금 풀어냈다. 스가와라는 거추장스러운 연회복을 벗어던지고는 그대로 서재에 틀어박힌 사와무라를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불에 그을리는 기름냄새가 가만히 코끝을 간질였다. 아직도 한참 쌓인 서류더미를 힐끔 살핀 스가와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폐하,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괜찮네, 그 동안 오래 자리를 비우지 않았는가.”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옵니다.”
“재상은 그렇게 걱정이 많아 어찌 살아가는고?”
“제가 하는 일이 폐하를 걱정하는 것이니 소임을 다할 뿐이옵니다.”
조용히 답하는 스가와라에 사와무라는 빙긋이 미소지었다. 저녁도 걸렀으니 이 정도면 스가와라로서는 아주 많이 참아준 것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와 목덜미를 주무르며 사와무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내가 없는 사이에 재상이 아주 심심했겠구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 동안 심심했을 재상을 위해 내 오늘은 재상이랑 말동무 해주리다.”
사와무라의 말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며 스가와라는 허리를 굽혔다. 몰두한 사와무라를 책상에서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목표하는 바는 이룬 셈이었다. 궁녀에게 일러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게 한 스가와라는 서재 한켠에 놓인 탁상으로 걸음을 향했다. 질 좋은 목재로 만들어 오랜 시간 정성들여 관리한 탁상은 나라의 크고작은 일부터 은밀한 사담까지 오가는 곳이었다. 선대에는 어떤 자들이 앉았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곳에 사와무라와 함께 앉는 것이 허락된 자는 오롯이 재상인 스가와라 뿐이었다. 준비된 다과가 놓이고 궁녀들이 물러나자 향긋한 차향을 맡으며 잠시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러한 날도 있는가 하면 자리에 앉기 전부터 쌓인 이야기를 마구 터트려대는 사와무라에게 스가와라가 참지 못하고 힐끔 눈치를 주는 날도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는 사와무라를 보며 스가와라는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역시 피곤하신 것이지요.”
“아니오. 단지 생각할 것이 조금.”
“예, 이것저것 많으시겠지요.”
가벼운 웃음 소리를 들으며 사와무라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빼곡하던 글자들을 한참 읽어내려 피곤한 눈가가 시큰거렸다. 피로하지 않을리 없으나 다만 눈 앞에 닥친 것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 무리를 했다. 미색의 종이 위에 한가득 쓰여진 검은 글자들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물에 번지는 먹물처럼 일그러지는 형상이었다가, 빙글빙글 맴돌았다가, 붉게 번져갔다.
“무용에 흥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용케 무용수를 올렸소, 재상.”
“황제의 은혜에 감사해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보냈다기에 폐하께 보인 것이옵니다. 불편하셨사옵니까.”
“불편했다면 재상이 여기에 나와 함께 앉아있었겠소?”
“가당치도 않사옵니다.”
시간이 지나 묽어진 붉은 모란꽃이 눈 앞에 일렁였다. 타국의 것이라 마음이 동하는 게 분명하다 몇번이고 되뇌었거늘 잔상은 여전한 채였다.
“포상은 내렸는가.”
“명을 따르었사옵니다.”
“서운치 않다던가.”
“황제를 욕보이겠사옵니까.”
그런가. 안도의 얼굴을 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말 없이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던 스가와라가 모른척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닐세.”
“제가 폐하를 한두해 모시겠습니까.”
저 말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말이렸다. 사와무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손에 쥔 찻잔을 말 없이 굴렸다.
“한나라의 황제라는 자가 이리도 알기 쉬운 얼굴을 해서야 어디 쓰겠는가.”
“그 황제가 두고 있는 재상이라는 자가 그리도 대단한 것이겠지요.”
저런 말을 황제의 앞에서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하는 것이 스가와라의 대단한 점이라면 대단한 점이었다. 설핏 웃으며 사와무라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재상이 준비해 준 무대가 정말 좋았네. 본 적 없는 진귀한 광경이라 그만 넋을 놓고 보았지 뭔가.
“다만.”
“예.”
“계속 마음에 걸려서 말일세.”
“어떤 것이 그러신지요.”
어떤 것이냐고 말하면 턱, 하고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느낌이었다.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답답해 목구멍 안이 간질거렸다. 갑작스러운 사와무라의 침묵에도 스가와라는 재촉하지 않은 채 가만히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하ㅡ 결코 가볍지 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스가와라는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 자를 부를까요.”
“지금?”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시면 어지러운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되지 않으실까 합니다.
눈앞에 일렁이던 묽은 빛의 모란이 선연한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눈이 아릿할 정도로 진한, 붉디 붉은 잔상이 어지럽게 움직여 가슴이 뛰었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차분하게 고개를 숙인 스가와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그러하듯 조용한 걸음으로 서재를 나섰다. 가볍게 마찰하는 문소리 이후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숨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렸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
“눈을 가리거라.”
뜨겁게 데운 잔이 차갑게 식었을 무렵, 장지문 너머로 천조각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으로 사내보다도 더 큰 들짐승을 잡은 적도 있는 사와무라였건만 이유모를 긴장감이 드는 것이었다. 눈을 가린 채 스가와라를 따라 서재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스가와라의 행동을 따라 허리 굽혀 예를 표했다. 마치 눈을 가리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재상은 그만 나가보셔도 좋소.”
“예, 폐하.”
조용히 뒷걸음질로 문까지 다가간 스가와라가 깊게 허리를 숙이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평소에는 소리도 없이 닫히는 문이었는데 오늘따라 소리가 둔탁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까이 오거라.”
조금 낮게 잠긴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사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이 보이는 듯 자연스럽게 걷던 사내가 어느즈음에서 우뚝 자리에 멈춘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는 사내의 움직임에 사와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가까이 오너라.”
허리를 굽히다 만 자세로 사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삐뚫어짐 없이 정갈한 걸음걸이었다. 바닥을 딛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뿐한 걸음이었으나 내딛음에 거침이 없었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긴 사내는 또 다시 자리에 멈춰 선다. 사내의 발끝을 부끄러울 새도 없이 쳐다보던 사와무라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까닭없이 애가 달았다. 갈증이 이는 목으로 다시 말했다. 조금 더 가까이 오너라. 사내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어차피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터였다. 사와무라가 앉은 자리에서 고작 다섯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내는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숨소리마저 닿을 것만 같아 사와무라는 잠시 호흡을 쉬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천한 것에 이름은 없사옵고 궁에서는 고양이로 불리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어찌 이름이 없단 말이냐.”
“다섯 먹을 무렵 부모가 가난에 못 이겨 저를 궁에 팔아먹은 후로 이름 없이 불리는대로 살아왔습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정작 사와무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란 자들이 어찌 그러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하실 수 없다 하질 않습니까. 덕분에 궁의 일을 배우면서 굶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럼 네 부모는..”
“저를 판 돈으로 노름을 하다 큰 빚을 져 맞아 죽었는지 그 뒤론 소식도 알 수 없다 합니다.”
허, 기가 막혀 허탈한 소리가 저절로 흘렀다. 외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선 사내는 남의 일인양 덤덤한 태도였다.
“무용은 언제부터 배웠느냐.”
“열살 때 부터입니다.”
“어쩌다 무용을 배웠느냐.”
“궁의 일을 하려니 모진 매질을 견딜 수 없어 지푸라기 잡듯 무용장님께 빌어 배웠습니다.”
사와무라의 말이 멎었다. 본적 없는 화려함으로 시선을 잡아끌던 사내의 이야기는 생각한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내뱉는 숨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낀 듯 사내는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며 자세를 낮춘다.
“너는 내가 원망스럽진 않느냐.”
“무엇이 말입니까.”
“네 나라를 망하게 한 내가 원망스럽진 않느냐. 나라에서 손꼽는 무용수였다 들었다. 지위도 재산도 부족하진 않았을텐데 지금은 이렇게 나라를 망하게 한 곳에 바쳐진 신세지 않느냐.”
제 자신을 나무라듯 쏟아지는 목소리에는 어쩐지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전쟁은 괴로웠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남을 공격해야했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나라를 잃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내는 사와무라의 말에 미동 없이 선 채 가만히 입을 열었다.
“원망스럽지 않사옵니다.”
“거짓을 고하지 않아도 된다.”
“주색을 탐하기 좋아하며 달콤한 아첨에 마음이 들썩이고 역병이 돌아도 궁에는 풍악이 끊이질 않고 가뭄에 홍수로 백성들이 배를 곯아 죽어가도 수랏상에는 산해진미가 끊이질 않는 그런 나라라면 차라리 망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간신들의 입놀림에 눈이 멀어 낡아빠진 군대로 영토를 넓힐 욕심이나 부렸으니 망하기를 자처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를 갖추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든 말은 칼날과도 같았다. 가리어 온전히 보이지도 않는 사내의 얼굴에 스치는 분노는 고요하고도 날카로웠다. 사내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어 사와무라는 한숨으로 대신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 흐린 느낌이었다. 자세를 낮춘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사와무라를 기다렸다.
“그것이 전쟁을 정당화를 시킬 순 없지 않느냐.”
“망국의 황제께서 가무를 즐긴 덕택에 천한 것이 무용이라는 것을 배워 지금 폐하의 용안을 마주하고 있으니 망국에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말하는 것이 맹랑하구나.”
“이 곳에 드는 순간부터 어차피 제 것이 아닌 목숨이라 생각했사옵니다.”
가려져 알 수 없었으나 사내는 빙긋 미소짓고 있었다. 천천히 탁상에서 일어나 발걸음은 사내를 향했다. 사와무라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사내의 눈을 가린 천을 살짝 끌러내렸다. 비단천이 쉽게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사내의 눈동자는 좁고 길었으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짙은 검은 색이었다. 느긋한 사내의 얼굴을 보며 외려 제 쪽이 더 긴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피하지 않는구나.”
“천것의 눈을 보려 직접 끌르신것이 아니신지요.”
“맞다.”
가볍게 미소지으며 사와무라는 사내의 얼굴께에 두었던 손을 거뒀다. 아마도 사내는 황제의 얼굴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서재를 나서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당할지도 몰랐다. 심사가 뒤틀린 사와무라의 한마디에도 목숨이 오갈 상황에 사내의 언사는 거리낌이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에 노할지 모르겠지만 사와무라는 그런 사내가 퍽 마음에 들었다. 키가 제법 큰 사내였지만 예를 갖추어 낮춘 자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말 없이 사내의 좁고 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스가와라의 단호함에 못 이긴척, 사내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지 않고서야 한 나라의 황제라는 자가 이렇게 쉽게 마음이 들뜰 수가 있는 것인가. 가만히 손가락을 들어 사내의 눈밑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맹랑하게 대답하던 사내는 사와무라의 손길에 가만히 눈을 내려감았다. 사와무라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감아 준 덕분에 이런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사와무라는 사내를 쿠로오黒尾라고 불렀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 어느 날이었다. 양손에 꼽을 수도 없는 시간 동안 이름 없이 살아왔던 사내는 개의치 않는단 얼굴을 했던 주제에 뛸듯이 기뻐했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듯 하염 없이 고개를 조아리던 사내가 추었던 그 날의 춤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니, 쿠로오가 추었던 춤은 단 하나도 잊을 수 없이 켜켜이 사와무라의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대신들과의 언쟁에 머리가 아픈 날이거나 피곤한 날엔 어김 없이 사와무라는 쿠로오를 불렀고 쿠로오는 언제든 사와무라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꽃이 피고 몇 날인가 지났지만 서늘함을 아직 품고 있는 밤공기에 유난스럽게 껴입혀진 옷이 답답했다. 답답하여 산책이나 하겠다는 말에 오히려 더 답답해지다니 이 것도 못할 짓이라 생각하며 사와무라는 잘 세공된 가죽신을 신었다. 마지막까지 매서운 눈으로 의관을 점검한 스가와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분주하게 손을 더하던 궁녀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아직 밤에는 날이 차갑습니다 전하.”
“그럼 날이 추우니 산책에는 아무도 따르지 말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하.”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들면 어찌하는가. 재상도 따뜻한 차라도 마시며 쉬게.”
빙긋 웃으며 건네는 사와무라의 말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순간 단호한 빛이 들었으나 그 보다 사와무라가 낮게 건네는 말이 더 빨랐다.
“사람들을 다 물리고 쿠로오를 불러주게.”
“전하..”
“혼자 있고 싶은데 워낙 재상이 걱정투성이라 쿠로오라도 데려 가야겠소.”
낮게 웃는 사와무라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스가와라는 손을 들어 궁녀를 불러 무어라 일렀다. 종종걸음으로 물러나는 궁녀의 뒷모습을 힐끗 보며 사와무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조금 덜 채워진 둥근 달이 휘영청 뜬 밝은 밤이었다. 조금은 차가우면서도 옅게 섞인 복사꽃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궁녀와 함께 온 쿠로오에게 가볍게 눈 인사를 한 사와무라가 부드럽게 웃으며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다녀오겠소. 재상도 들어가 쉬시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전하.”
따르겠다 말하기도 전에 한번 더 이르는 사와무라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스가와라가 허리를 굽혔다. 말 없이 걸음을 옮기는 사와무라의 뒤를 따르는 쿠로오의 걸음이 조용했다. 겨울과 봄이 섞여 일렁이는 밤공기는 가만히 두 사람을 인적이 드문 뒤뜰로 이끌었다. 당연한 듯 황제의 뒤를 따르는 쿠로오의 발걸음이 사뭇 아쉬워 걸음을 멈추면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는 듯 가만히 멈추어 사와무라의 뒤에 선 채였다. 어쩔 수 없어 조금 보폭을 좁혀 걸어보면 어찌 사와무라의 속내를 알았는지 제법 넓은 보폭으로 사와무라에게 가까워진다. 이러니 내가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사와무라는 입꼬리를 실룩이고 만다.
“오늘은 달이 제법 밝구나.”
“내일이 보름이라 그런것이지요.”
“덕분에 등을 들어도 되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
사와무라의 밝은 목소리에 쿠로오는 은근한 미소를 띄며 고개를 숙였다. 태양같은 황제가 달빛을 받아 들뜬 모습이 묘하게 느껴졌다. 봄을 맞아 파릇하게 물들기 시작한 뒷뜰을 느릿하게 걸었다.
“마련해준 처소는 지낼만 하느냐.”
“분에 넘치는 곳이라 감히 제가 머물러도 좋을 지 모르겠사옵니다.”
“제일가는 무용수에게 내 그만한 것도 못 내릴까.”
사와무라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쿠로오의 얼굴은 달빛을 그득하게 받아 훤히 보였다.
“부족한 것은 없느냐.”
“없사옵니다.”
“그럼 원하는 것은 없느냐.”
“머물 곳도, 이름도 받았으니 제가 감히 무얼 더 바라겠사옵니까.”
조근하게 내뱉는 말을 들으며 사와무라는 가만히 다가갔다. 이 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이국의 향이 쿠로오에게서 풍겼다.
“쿠로오야.”
“예.”
“고개를 들거라.”
천천히, 내려깐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가만히 들어올린 얼굴을 마주하려면 조금 고개를 들어야했다. 감히 황제보다 높은 시선을 할 순 없다 몇번이고 만류했지만 사와무라는 그럴 때 마다 어명을 어기느냐며 으레 짓궂은 농을 던지곤 했다.
“어쩐지 너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는 이렇게 마음이 편한데, 너는 타국에서 어쩌면 마음고생을 하고 있진 않을지 나는 항상 걱정이 된단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말을 해보려무나.”
이상할 정도로 올곧은 신뢰였다. 한낱 무용수에게 드는 이 마음을 황제인 사와무라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가볍게 웃었다. 입술 사이로 작게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춤을 춰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쿠로오의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일그러졌다. 부끄러움과 웃음을 꾹 눌러담는 형태에 저절로 쿠로오의 입술 끝에 미소가 번졌다.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이런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얼굴을 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는 것도 어쩌면 자신 뿐일지도 모른다는 당돌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천한 것이 황송하옵게도 황제께 칭찬 받은 춤솜씨를 조금 알려드리면 어떨까 싶사옵니다.”
“지금?”
“예.”
대답과 함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부채를 꺼내 든 쿠로오가 가로로 들어 무릎을 꿇고는 사와무라에게 내밀었다. 당황스러운 제안에 어찌할 줄을 몰라 얼떨결에 쿠로오가 내미는 부채를 받아 든 사와무라가 어찌할 줄 모르는 얼굴로 쿠로오를 내려보았다. 까만 머리통이 가만히 사와무라의 발끝을 주시하고 있었다. 빈 손으로 제 품 안쪽에서 작은 부채를 꺼내 든 쿠로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사와무라에게서 한발짝 물러섰다.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전하.”
“그러한가.”
“황제께 칭찬받은 대단한 실력이지 않습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는 말솜씨도 칭찬해줘야겠구나.”
피식 웃으며 사와무라가 쿠로오가 하는 대로 부채를 펼쳐 들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뒷뜰에 부채를 든 두 남자가 마주보고 서서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쿠로오가 하는 모양을 따라 펼친 부채로 눈 아래를 가린 사와무라가 쿠로오가 하는 대로 천천히 팔을 움직였다. 어렵지 않은 동작이었기에 쑥스러움을 감춘 채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꽤 움직였으나 서늘한 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무예를 즐겨하는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동작을 따라하는 사와무라는 점점 즐거운 얼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차르르, 맑은 소리를 내며 부채를 접는 것 까지 따라한 사와무라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쿠로오는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십니다.”
“듣기 좋은 소리를 곧잘 하는구나.”
“없는 소리를 할리 있겠사옵니까.”
쿠로오는 접은 부채를 고쳐쥐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간단한 동작이오나 잘만 활용하면 훌륭한 호신술이 될 수도 있으니 익혀두시는 것도 좋으실 것입니다.”
“호오, 어떤 것이냐.”
“전하가 쥐고 계신 부채가 칼이라 생각하시고 저를 한번 찔러 보시겠사옵니까.”
쿠로오의 말에 흥미가 생긴 사와무라가 무용을 하듯 팔을 나긋하게 벌리고 선 쿠로오를 향해 부채를 고쳐쥐었다. 부채 치고는 제법 긴 덕분에 부족하기는 해도 제법 칼을 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칼이라 마음을 고쳐먹자 웃는 낯이던 사와무라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뚫어져라 목표한 것을 바라보며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다. 과연 그것으로도 기세가 대단해 쿠로오의 얼굴이 덩달아 진중해진다.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맹렬한 눈동자, 일렁이는 밤공기의 틈을 타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 사와무라가 쿠로오에게 가볍게 접근해 단숨에 베어낼 듯 팔을 휘둘렀다. 빠른 공격이었으나 그보다 더 유연하고 날렵하게 움직여 공격을 피한 쿠로오가 단숨에 사와무라의 팔 아래로 파고들었다. 좋은 움직임이다. 역시 장수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닌가. 사와무라의 찰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쿠로오는 유연하게 팔을 휘둘렀다. 마치 춤을 추는 듯 유연하고 나긋하게 움직인 손에 쥔 부채의 끝이 사와무라의 손등을 짧게 내리쳤다. 단단하게 쥐었던 부채가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얼떨떨한 사와무라는 온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옷자락을 장난스럽게 건드리고 달아난다. 멈추었던 호흡을 들이쉬자 가까이에서 쿠로오의 향이 풍겼다. 낯선 나라의 향. 하지만 단숨에 쿠로오가 떠오르는, 이젠 익숙해진 향. 뻐근하게 굳은 몸을 겨우 움직여 고개를 들자 한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 쿠로오의 얼굴이 마주했다. 여전히 짙은, 좁고 긴 눈동자가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였다. 낮추었던 자세를 곧추세우려 움직이자 허리에 무언가 툭 다가와 닿는다. 단단하고 길다란 것의 감촉. 손에 쥔 부채로 사와무라의 허리를 지탱한 쿠로오가 천천히 제 몸쪽으로 팔을 당겼다.
홀린 듯이 쿠로오에게 이끌려 그 품에 안기듯 끌려갔다. 비집을 틈 없이 가까우면서도 닿지 않은 미묘한 거리. 사와무라는 내뱉던 숨을 참았다. 양 손에 부채의 양끝을 쥔 쿠로오가 제 품안에 들어온 사와무라를 가만히 내려본다. 감히 황제의 옥체에 닿을 순 없다는 듯 그렇게 가만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말하라 하셨지요.”
두텁게 껴입은 옷안으로 열이 올랐다. 방금 전 까지 움직이고 있었으니 당연한 열기였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열기라는 것을 사와무라는 잘 알 수 있었다. 달을 등지고 서 쿠로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웠다. 나는 지금 네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와무라는 가만히,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훤하게 달빛을 받아 훤하게 드러난 사와무라의 얼굴을, 품안의 그 얼굴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던 쿠로오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입술이 내려 앉았다. 긴장한 듯 조금 건조한 입술이 거칠하게 사와무라에게 닿았다. 살며시 닿았을 뿐인 입술은 금세 물러났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원한다 할지언정 말해선 안되겠지요.”
허리를 받치고 있던 부채를 쥔 손이 느슨하게 풀려나갔다. 사와무라에게서 한 걸음 물러난 쿠로오가 부채를 갈무리하여 제 품 안으로 밀어넣었다. 허리를 숙여 사와무라의 발치에 떨어진 긴 부채를 집어 든 쿠로오가 정갈한 손놀림으로 정리를 하여 제 허리춤에 다시 꽂아둔다. 덜 찬 보름의 달빛이 그득히 쏟아졌다. 사와무라는 얼른 고개를 돌려 들킬새라 엉망이 된 제 얼굴을 감추었다. 그래봤자 붉어진 목덜미와 귓불이 훤히 드러나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떤 분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소재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같은 경험을 가진 분이 주변에 계실지도 몰라 연성에 있어 조금 망설였지만 ㄴㅇㅌ판 형식으로 쓴 이야기인지라 우리 주변에 있음직할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연성의 하나로 봐주시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야기판] 철 없는 남편과 이혼조정 중입니다. (+추가)
결시친 여러분 안녕하세요.
철 없는 남편이라는 제목으로 예전에 판을 썼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글에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시고 용기 주는 댓글 달아주셔서 남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소식으로 찾아 뵈었다면 좋았겠지만 제목대로 결국 남편과는 이혼조정 중입니다.
모든 일이 정리가 된 다음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 순서겠지만 많은 분들이 뒷 이야기를 궁금해 하실 것 같기도 하고 저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없어 이야기가 엉망진창일 것 같지만 이해해주시고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신정 사건 이후로 남편도 제가 쓴 판을 봤더군요. 자기가 쓴 댓글이 베플이 되면서 많은 분들께 질타도 당하고 욕도 먹으면서 정신 차린 건지 바로 미야기로 냉큼 달려왔습니다.
저희 부모님한테 장인어른 장모님하고 세상 둘도 없는 달콤한 목소리로 살살 애교부리고 눈치보는거 보니까 다시 화가 나다가도 또 마음이 약해지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이 남편을 정말 예뻐라 합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 연애 시절부터 그렇게 잘 할 수 없었어요. 저도 그 점 보고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거긴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먼데까지 왔다고 그 늦은 시간에 부랴부랴 상을 보시더라구요. 그 때 진짜 울컥했습니다. 시댁이란 것들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부모님께는 됐다고 하고 남편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신정연휴라 열린 데는 하나도 없고 데이트 할 때 자주 갔던 집 근처 공원에서 얘기 좀 하자 했습니다.
너 내가 한발짝만 더 따라오면 이혼서류 떼러 간다 했냐 안했냐 라니까 바로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더군요. 자기가 잘못했다고 한번만 봐달라고.
그놈의 정이란게 뭔지 또 마음이 약해지더군요. 남편이랑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만나왔습니다. 장거리 연애라 지칠만도 한데 남편은 그런 기색 하나도 안 내고 저한테 잘 했고요. 그런 남편이 결혼하고 고작 1년도 안되는 시간에 그렇게 변할 줄 몰랐기에 그런 점들이 서운했던 것이겠죠.
마음이 약해지니 눈물부터 나더군요.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인적은 거의 없었기에 제가 우니 남편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정말 진지하게 얘기하더군요. 저를 끌어안고 보듬어 주면서 제가 너무나 좋아했던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몇번이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던 그 사람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지하게 이야기 해주었고 마음이 풀릴 수 밖에 없더군요.
그 뒤로 연애시절처럼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서운 했던 것, 미안했던 것, 고마웠던 것. 조금만 참으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더라구요. 남편도 그 동안 니 마음 몰라서 미안했다 진심으로 사과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 도쿄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시댁에야 당연히 밉보였겠지만 남편이 어떻게 말해준건지 더 이상 연락은 오지 않더군요. 매일매일 안부전화 해야되는 일상도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남편과 저 단 둘의 결혼 생활이었고 우습게도 그제야 아 진짜 신혼이다 싶더군요.
하지만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이 지옥이니 뭐니 하는거 다 남 얘긴 줄 알았는데 저한테도 현실이 되더군요.
한 삼년 쯤 되니 슬슬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이 생각이 별로 없는 편이라 두 사람의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갖자고 결혼 전에 합의했었습니다. 근데 일년에 몇번 없는 집안 행사에 참여하면 꼭 어른들이 아이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 때 마다 남편이 잘 둘러대주긴 했지만 그런 집안행사들이 가시방석 같았습니다.
물론 초반엔 저도 계속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이 사람과의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농담처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는 아니고 그냥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뭐 그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요.
아이가 생긴 후에는 부모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싶었기에 그 전에는 부부로서 충실히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 욕심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이는 전혀 소식이 없더군요. 아침에 임테기에 뜬 한줄을 볼 때 마다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닌가 후회되고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잘 알기에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본인도 불안하고 초조했겠지요.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웬일로 시댁에서 부르시길래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남편과 함께 건너갔습니다. 사실 별 좋은 소리 들을 것 가진 않았지만 아이 소식이 없는 상황에서 왠지 시댁에 갈 때 마다 저는 죄인 같더군요.
좋은 고기가 선물로 들어왔다며 같이 먹게 불렀다는 시댁에는 오랜만에 보는 시누가족도 왔더군요. 거리가 멀어서 만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저희 결혼식 이후로 한 두번 정도 봤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식구들 모이니 북적북적 거리더라구요. 저도 좋은 며느리 되고 싶어서 어머님 기분도 맞춰드리고 잘 하지도 못하는 애교도 부리면서 바쁘게 그러던 중 간장이 똑 떨어져서 제가 얼른 다녀오겠다며 지갑 들고 시댁에서 나섰습니다.
시댁 냉장고에 없던 과일도 좀 사고 시조카 먹을 간식거리도 좀 사고 양손에 마트 봉지 들고 시댁으로 갔는데 환기시켜 놓는다고 반쯤 열어놓은 현관문 너머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처음엔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할 얘기가 많겠거니 싶어 별 신경을 안 썼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제 이름이 자꾸 나오더라구요. 제 이름과 임신, 단 두 단어를 듣자마자 발끝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께에서 그 이야기들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하게 쓰자니 아직도 손이 덜덜 떨려 간단하게 말하면 아직도 아이 소식이 없는데 너네 부부관계는 제대로 하고 있냐 일부러 임신 안하는 거냐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아직 소식이 없느냐... 네, 제가 이렇게 말했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들어주기 힘든 욕설에 가까운 단어들도 종종 섞여 들려오더군요.
참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것이 모른 척 뻔뻔하게 현관문 뻥 차고 들어가서 저 왔다고 무슨 얘기 그렇게 재밌게 하고 계셨냐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그냥 여우짓 좀 할 걸 그랬습니다. 근데 제가 그걸 진짜 못하거든요, 여우짓. 마냥 서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몇년 간 말도 못할 정도로 지쳐있던 것 같았습니다. 저도 아이를 원했지만 그 것보다 주변에서 아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기에 받은 스트레스가 저도 모르게 쌓여 있었겠지요. 너무 마음이 아프니 눈물도 나지 않더군요. 저들 말처럼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아이가 찾아오지 않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 뒤로는 모른 척 시댁에 들어가 마트 봉지 내려 놓으면서 먹고 싶은게 넘 많아서 고르는게 늦었다는 둥 어설픈 너스레를 떨다가 음료 사오는 걸 잊었다며 다시 다녀오겠다며 시댁에서 나섰습니다. 저도 참 바보 같은게 모른 척 할거면 영리하게 했어야 했는데 봉지 안에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물이 된 걸 보였으니 제가 이야기들을 들은 걸 다 들키고 말았습니다.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걷고 있는데 남편이 부랴부랴 쫓아오더군요. 한참 헤맸는지 얼굴엔 땀범벅이 되어서 저를 보고 뭐부터 말해야 될지 모르는 얼굴로 있는데 참 마음이 그렇더군요.
제가 왜 그렇게 시댁에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남편이 왜 그렇게 저에게 죄지은 얼굴을 해야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과 한참을 만나왔는데 그 얼굴의 의미를 제가 어떻게 모를까요.. 남편은 저에게 적당한 잘못은 꼭 사과부터 하는 사람입니다. 사과도 못할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저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제가 미안해서 요구한 것도 있으며 남편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이라는 행복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한 것도 있습니다. 남편은 거절했지만 저는 한번 결심이 서니 번복은 안되더라구요.
그 뒤로의 시간은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남편에게 일부러 모질게도 굴면서 서로에게 상처주는 날들이 반복되고 결국 남편은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후회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 제 결심이 더 컸습니다. 남편을 놓아주고 저도 저를 옭아매는 이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합의 이혼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지금은 조정기간을 가지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분들도, 힘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저는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부쩍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아니면 조금 늦게 했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참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알 수가 없네요.
저의 선택을 비난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잘 했다고 다독여주실 분들 계실까요?
익명이라는 공간을 빌어서라도 누군가에게 잘 했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하네요. 이것 또한 제 욕심이겠지요.
남편과는 현재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직 집 정리를 하진 않았구요. 매일 얼굴 보는 것도 괴롭지만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도, 얼굴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냥 조금 더 견뎌보자 싶어지네요.
집어던지듯 연필을 내려놓았다. 지저분하게 연필로 사방팔방 그어진 음표들의 향연이 꽉 뭉쳐진 내 머릿속을 억지로 헤집으며 음의 흐름이라는 걸 만들어 내려 발버둥을 친다.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깜빡깜빡 거리는 어떤 악상을 기록하곤 마침표를 꾹 찍었다. 스쳐봐도 손볼게 많은 악보라는 게 훤히 보인다. 하지만 이게 지금의 나로서는 최선이다.
“다했어?”
작업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오이카와가 슬쩍 고개를 들이민다. 나는 피곤함이 묻어나는 눈을 한 손으로 문지르며 악보를 내밀었다. 말이 좋아 악보지 낙서투성이인 종이 나부랭이를 받아 든 오이카와의 표정이 기막히게 구겨진다.
“뭐야?”
“악보지 뭐긴 뭐야.”
지랄을..하고 읊조리던 오이카와가 뒤적뒤적 종이를 뒤진다. 나는 피곤함에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한 쪽 어깨를 주물럭거렸다. 영화를 보다 말고 내려진 그 엉뚱한 결말에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벌떡 일어나 대뜸 작업실에 처박혔다. 어이가 없는 오이카와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걸 느꼈지만 나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몹쓸 버릇이다. 뭔가 머릿속을 스치면 어떻게든 저렇게 콩나물 대가리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막무가내로 휘갈긴 건 또 처음 보는지 오이카와의 표정은 울상이 섞여있다. 만족하냐고? 아니, 만족 못한다. 작곡가 쿠로오 테츠로 자존심에 저런 낙서는 말도 안 되는 거다. 말도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지금 내 마음도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지금 내 상황도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슬럼프에 허덕거리고 있는 것도, 바보같이 케케묵은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것도.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오이카와의 투덜거림이 들린다. 나는 그저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뭐, 일단 니 상태 보니까 이걸로 만족은 해야 할 거 같고..”
“너 능력 좋잖아. 한 번 알아서 해봐.”
“이럴 때만 칭찬이지.”
허탈한 듯 웃으며 내 목에 헤드락을 걸곤 꾹꾹 눌러대던 오이카와가 결국 픽 웃어버린다. 나도 덩달아 건조하게 웃어버렸다. 애석하게 답답한 상황에서도 웃음은 나왔다.
해야만 하는 일까지 사라지고 나니 정말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 듯이 있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쿠션 끝에 달린 술을 만지작거렸다. 순전히 다이치 취향인 단정한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있다가 벽지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보고 있다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TV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베란다에 둔 화분들을 보다가...시선이 천천히 집안 구석구석을 훑었다. 이 빈집에 만약에 혼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새삼 넓게 느껴지는, 존재감이라곤 깡그리 비워낸 이 거대한 공허함 속에서 이리도 끔찍하게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새삼스럽게 혼자라는 그 흔한 단어가 가슴에 쿡 박힌다. 차분하게 내쉰 한숨이 생각보다 크게 거실을 가득 메운다. 그 어마어마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서 차키를 집어 들고는 무작정 시동을 걸었다. 평소처럼 조수석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자 목적지도 없이 그저 엑셀을 밟아댔다. 주황빛의 가로등이 켜진 도로는 퇴근시간을 한참 넘기고 나니 거짓말같이 한적했다. 멋대로 속도를 올리고 떠나가라 크게 노래를 틀었다. 거기다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한밤중의 드라이브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대중교통을 타는 걸 더 좋아했지만 비오는 날의 드라이브를 위해서 차를 꼭 사야한다던 다이치가 마치 옆에서 숨을 쉬고 있는 마냥 생생하다. 차선이며 신호 따윌 싸그리 무시하며 달리다가 한적한 강변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웠다. 뻑뻑한 마찰음을 내며 시야를 확보하던 와이퍼가 느릿하게 앞 유리를 닦아낸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음악을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 섞인 호흡이 귓가를 괴롭힌다. 신경질적으로 오디오 전원을 끄자 시끄럽게 유리창을 때려대는 빗소리가 들린다. 우습게도 지금 상황에서 적막하다는 표현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습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핸들 위로 엎드렸다. 편안하게 받쳐 입은 셔츠가 동선이 매끄럽도록 도와준다. 이것 또한 다이치가 골라준 셔츠. 코끝에 닿는 향기도 다이치가 고른 방향제. 지금 울리고 있는 이 전화벨은 다이치가 직접 골라 준 벨소리.
눈물 날 정도로 큰 다이치의 존재감에 호흡마저 엄숙해진다. 관계의 끝을 생각했던 내 자신이 엄청난 바보 같았다. 조수석에서 울리고 있는 벨소리를 조심스럽게 허밍으로 따라 읊조렸다. 건조한 음의 나열. 눈앞을 요란하게 어지럽히는 악보의 형상에 눈을 감았다. 그리곤 핸드폰을 덥썩 집어 들었다가 액정에 뜬 이상한 번호의 조합에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부쩍 늘어난 광고 전화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내려놓으려다 말고 거짓말처럼 무서운 그 어떤 예감이 들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당연히 나와야 할 목소리는 잠시 꾹 담아 둔 채.
- 쿠로.
와이퍼가 스르륵 앞 유리를 문질렀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잠시 닦여나갔던 앞 유리는 삽시간에 다시 빗물로 뒤덮이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내 이름을 부르는 한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려왔다.
- 야, 여보세요? 쿠로오??
“어.”
- 뭐야, 왜 대답을 안했어. 놀랬잖아.
너 놀래라고 그랬다 왜. 평소 같은 농담도 나오지 않았다. 시끄럽게 쏟아지는 외국어의 향연 속에서 똑똑하게 들리는 일본어가 이질적이라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고 싶었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건.
- 밥은 잘 챙겨 먹구 있어?
“어.”
- 여기 너무 좋다. 너 작업 끝나면 같이 오자. 너랑 볼려구 관광 명소도 나 혼자 다 안 보러 갔어. 나 잘했지?
“그래.”
- 작업은 좀 잘 되어가?
“그럭저럭..”
- 내가 커피 안 타줘서 작업 진행 안되는 건 아니고? 하하.
십년씩이나 겪었는데 모를 리가 없다. 우리가 싸운 것도 잊은 채 장난처럼 말하면서 나를 걱정하고 있는 다이치의 표정이 눈앞에 생생했다.
- 그래도 다행이다. 너 화나서 내 전화도 안 받을 줄 알았어.
그러곤 작게 웃는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다. 그 한숨 같은 웃음소리에 갑자기 눈 밑이 쓰렸다.
“뭐가 다행이야.”
- 그럼 다행 아니야? 응? 하하.
“니가 뭘 잘못해서 내가.. 전화도 안 받어.”
십년을 봐왔지만 사와무라 다이치는 바보인 게 틀림없다. 아니면 단기 기억 상실증. 아니면 판단력 부족. 뭐가 그렇게 잘못해서 맨날 자기 혼자 미안하고 자기 혼자 잘못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 한 번도 다이치가 그럴 짓을 한 적이 없는데.
- 쿠로오.
“왜.”
- 진짜 화 안 났어?
“그래.”
- 그럼 됐어.
“.....”
- 뭘 잘못한 게 무슨 상관이야. 화 안 났으면 그걸로 됐어.
“후...”
- 웬 한숨이야.
“바보같이 한심할 정도로 깔끔한 게 딱 사와무라 다이치라서 그런다 왜.”
뭐야 그게. 으하하 넘어가는 소리가 기계음이 섞여 선명하게 들린다. 한 박자 늦은 대답은 국제전화라는 것을 실감케 해준다.
- 아, 쿠로. 나 지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 ......
“......”
- 괜찮지?
“어.”
잠시 수화구를 반쯤 막고는 영어로 누군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다이치가 난감한 목소리로 그런다. 나는 보일 리도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그래.
“.....”
- .......
“들어가 봐.”
- 응.
미련이 가득 남은 목소리로 머뭇거리던 다이치가 급하긴 정말 급했던 모양인지 전화를 툭 끊는다. 나는 잠시 아무렇게나 전화기를 내버려 둔 채 멍하니 있었다. 그제야 다이치와 통화를 했다는 게 실감이 나서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뭔가에 홀린 듯 천천히 전화기를 제대로 조수석에 내려 두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묘한 웃음기로 일그러진 지금의 내 표정을 만약에 다이치가 봤었다면 웃을 것이 분명해서.
딱 한 번 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들 수도 없는 노래를 며칠을 새가면서 완성해 내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무려 연습씩이나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내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예술성들을 표현하는데 음악이 가장 좋은 도구라면,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도 있는 게 음악이 아닐까. 좋아해, 사랑해, 설렘이 가득 담긴 가사를 쓰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날 이렇게 만든 게 넌데 이 노래를 받아야 할 사람도 니가 아니겠냐며, 억지로 다이치의 손을 잡아끌었다. 볕이 아주 예쁘게 드는 텅 빈 강당 중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다이치를 앉혔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다이치를 뒤로하고 천천히 무대 위에 올라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누군가를 위해 불러보는 노래는 어버이날 노래 밖에 없는 나에게 그만큼 다이치는 특별했다. 며칠 동안 내내 끌어안고 살아서 머릿속에 아예 새겨둔 악보를 따라 피아노를 치면서 단 하나만을 생각했다. 오늘 이 노래가 다이치에게 닿을 수 있으면 앞으로 노래를 쓸 모든 힘을 여기에 다 담을 수도 있다고. 그만큼 특별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날의 그 때 나에겐 다이치와 노래, 그 둘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온통 사랑 투성이에, 너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부하지만 진심이 담긴 노래가 끝나는 마지막 소절을 따라 두드린 건반 위로 천천히 눈물이 떨어졌다. 널 이렇게 생각하고 가슴에 담는 것만 해도 나는 이렇게 설레고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어 다이치.
“내 마음이야.”
“.......”
“널 사랑한다구.”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슴 벅찬 걸 너를 통해 알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쓴 노래는 당연히 진심이 전부 담길 수가 없었다. 그런 진심이 빠진 내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늘 다이치였다. 그런 나에게 활기를 불어 넣는 것도 다이치였고.
몇 번 음정이 틀렸다든지 그런 실수는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정말 모든 감정을 다해서 부른 노래였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마음이란 것을 입으로 털어내는 순간 느끼는 그 가슴 벅참을 과연 다이치가 온전히 이해했을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묽은 눈으로 날 바라보던 다이치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와 그 단단한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던 다이치가 결국엔 날 끌어안고 울어버렸던 그것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얹어져 있던 무거운 먼지 더미를 닦아낸 듯 그 순간의 엄청난 감정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다이치가 떠난 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얼굴을 파묻고는 엉엉 울어댔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미안할 것이 없는데 잠시 이 감정을 잊고 있었다는 게 너무나 다이치한테 죄스러운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바보인 모양이다.
숨 쉬는 매 순간 느낀다. 내 사랑이 너라는 것을.
*
안정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휴식이 필요했다. 비비꼬였던 속내를 억지로 풀어내려 애쓰다 기어이 썩둑 잘라내 버린 마냥 속이 시원했지만 그 텅 비어버린 공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나는 쉬어야한다. 어제 겉옷 하나 없이 집에서 입던 간편한 옷 그대로 나가 폭우가 쏟아지는 그 추운 곳에 있었더니 미열이 있는 것도 같고. 핑계를 대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있는 핑계 없는 핑계 만들어서 댈 수도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오전 내내 뒹굴었다. 대자로 뻗었다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이리저리 팔다리를 휘적거리다가 요가비디오에서 본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작업할게 없으니 그저 신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간사하다. 내 짐이고 내 족쇄였던 작업이 마음먹기 따라서 이렇게 가볍게 느껴질 줄이야. 나는 침대 끝에 머리를 축 늘어뜨리곤 천장을 보고 누웠다. 축 처진 머리끝으로 피가 묵직하게 몰린다. 지금 마음으로는 수십 개도 넘게 곡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왠지 미뤄두고 싶었다. 지금 심경이 어떠한지 표현을 하라면 난 여전히 표현할 순 없었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그 꽉 막힌 답답함은 충분히 가신 상태였다.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사와무라 다이치.”
그대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언빌리버블.
“뭐해. 어서와.”
중얼거리다 말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리끝으로 피가 잔뜩 몰려 있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니 현기증이 났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안 돼. 청소도 해야 하고 점심 준비도 해야 하고, 난 너처럼 할 일 없는 게 아니잖아.”
점짓 엄한 목소리를 섞어가며 다이치의 목소리를 흉내 내다가 배를 잡고 큭큭 웃어댔다.
“내가 왜 할 일이 없어. 작업도 해야 되고, 너랑도 놀아줘야 되고..”
이젠 별 짓을 다 한다 진짜.
“나 지금 바뻐 쿠로오. 나중에, 응? 아 바쁘긴 뭐가 바뻐, 이리 와. 나 지금 청소해야 된다니깐? 야, 까짓 청소 내가 하지 뭐.”
혼자 실랑이를 벌이다가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고는 큭큭 웃어댔다. 진작 이렇게 싸워볼걸. 웃음기 섞인 한숨을 서서히 내쉬었다. 진작 그렇게 해볼 걸이라는 후회는 작은 다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해야지 하고.
그래서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어색하게 자리 잡은 고무장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태어나 처음 시도해보는 욕실청소란 것에 묘하게 긴장감이 맴돌았다. 까짓 거 지가 대단해 봤자 화장실이지.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욕실 세제를 짜서 바닥에 문질렀다. 수세미를 찾다가 못 찾아서 신발을 빠는 솔로 정성스레 문질러줬다. 이 귀한 손으로 씻겨준 건 아빠랑 다이치 뿐인데 화장실 주제에 호강한다. 쪼그려 앉아서 바닥을 구석부터 북북 닦다가 다리가 저려서 콧등을 씰룩 거렸다. 이럴 땐 코에 침 바르면 한 방에 해결된다. 첨엔 뭔 개소리냐 했는데 정말로 효과가 직빵이다. 다이치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사실들이었다. 화장실 청소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도. 북북 힘차게 바닥을 문지르던 손이 점점 잦아든다. 복작거리던 마찰음이 멎자 욕실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화장실 문을 닫으면 완벽하게 외부와 단절되는, 이 좁디좁은 공간에서 다이치는 혼자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내가 배를 긁으며 개그프로 따위나 보며 낄낄 거릴 동안 다이치는 이곳에서 나름대로의 외로움과 씨름했을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줄 수 있었다면, 다이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지금 내가 이렇게 괴롭다든가 공허하다는 그런 쓸데없는 감정 따윈 느끼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힘들다..”
내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세면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바닥을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젠 사그러들고 있는 거품 위로 툭 떨어진다. 힘들다. 너도 힘들었을까? 똑같이 힘들었을 거야. 근데 넌 어떻게 계속 버텨왔을까? 힘들다는 투정이 당연할 텐데. 눈앞에 있다면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어깨를 다독거리며 보듬어 주고 싶었다. 당연히 다이치랑 계속 살 거니까 결혼 따윈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내게 아내가 생긴다면 꼭 이런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밥은 꼭 챙겨먹어야 해. 귀찮다고 쌀 한꺼번에 많이 씻어두지 마. 다 상해. 빨래는 내가 다녀와서 하면 되니까, 청소랑 밥만 제대로 챙겨. 가뜩이나 예민한 기곈데, 먼지 많으면 금방 고장 나잖아. 너 또 기계 탈나면 삼박 사일 동안 뿔 세울 거지? 그러니까 미리미리 청소 좀 잘 하고. 책상까진 내가 바라지도 않아. 그냥 기기에 있는 먼지 좀 자주 털어주고. 밥 꼭 챙기고. 음, 차라리 시켜먹는 게 좋으려나. 아니다, 요즘 바깥 음식은 영 믿을게 못 돼서. 좀 귀찮더라도 챙겨먹어 알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죄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였는데. 싸울 것 까진 없었는데.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나서 배웅조차 제대로 못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 나도 너를 걱정해서 투덜거린 건데. 멀리까지 가면서 자기 짐 하나 덜 챙긴 거 없나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은 뒷전이고 나만 걱정하는 게 왠지 고마우면서도 속상해서 투덜거린 다는 게 어쩌다보니 싸우기까지 해버리고. 쪼그려 앉은 채로 모아진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우린 좀 웃겼다. 지들 앞가림도 못하는 둘이서 괜한 오지랖들이다. 닮은꼴이다. 같이 살다 보니 닮은꼴이 된 건지 애초부터 닮은꼴이라서 서로에게 끌렸던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쌉쏘롬하게 웃고 있는데 이젠 다이치의 목소리마저 들린다. 귓가에 속삭이듯 쿠로오, 쿠로오, 하고 부르는 다이치의 목소리가. 쿠로오 테츠로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구나. 하던 청소나 마저 할까 싶어 으휴, 하고 다시 고무장갑 낀 손으로 솔을 집어들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린다.
“으악!!!!!!!!!!!!!!”
너무 놀라서 때 솔을 집어들다 말고 악 하고 비명을 지른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런 나 보다 더 놀란 모습으로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다이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 이만큼 놀랐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 부다. 먼 나라 지구 반대쪽에 있어야 할 다이치가 보이다니. 제대로 밥을 안 챙겨 먹었더니 헛것이 보이는 게 분명하다.
“뭐해??”
근데 그 헛것이 말까지 한다. 목소리마저 사와무라 다이치다. 으악. 또 비명을 지를 뻔 했는데 너무 꼴사나워서 영화에서 하던 것 마냥 진부한 모션으로 손등으로 눈을 슥슥 비볐다. 넌 누구냐. 어디서 본 영화배우 흉내라도 내볼까 했는데 손등에 묻어 있던 세제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진짜 모냥 빠지게 으악 소릴 지르며 뒹굴 뻔 했다.
“너, 너, 너, 너 뭐, 뭐야.”
“뭐긴 뭐야. 나지.”
무슨 소리냐는 듯 무심하게 대답한 다이치가 욕실을 휘휘 둘러보더니 날 보곤 풉 하고 웃는다. 그제야 머쓱해져서 스르륵 일어났다. 느적느적 고무장갑을 벗고 있으려니 다이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게 보인다. 으윽. 이제 앞으로 모든 일에-특히 욕실 청소에- 헌신적으로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던 건 취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너 왜 그러고 있어?”
욕실 슬리퍼를 직직 끌며 거실로 나오는 나를 보며 다이치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묻지 마라. 저 손바닥만 한 곳에서 너의 외로움과 고독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노라고는 차마 낯 뜨거워서 읊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넌 어떻게 된 거야?”
대답을 회피하듯 말을 돌렸는데 거실에는 트렁크며 온갖 짐이 한 무더기 놓여 있었다. 온갖 삽질을 하다못해 결국엔 날짜 감각마저 상실했나 싶어서 거실에 있는 전자 달력을 봤는데 다이치가 귀국하는 날짜는 이틀 뒤가 확실했다. 어라, 뭐야 이 황당한 상황은.
“짤렸어?”
“그런 거 아냐.”
말을 단박에 끊은 다이치가 기어들어 갈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마저 한다.
“아직까지는...”
뭐냐, 더 불안한 저 대답은!!!!!!!
“안 괜찮잖아.”
당연히 안 괜찮지. 니가 짤리면 일단 내가 너를 먹여 살려야 하잖아. 이제 그만 일에서 좀 벗어나서 쉬는구나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며칠 내로 곡을 뽑아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알겠다. 걱정 마라. 너 하나 정도는 이 오빠가 먹여 살릴 수 있어.
“너 목소리 듣는데, 괜찮다고 하면서.. 목소리가 하나도 안 괜찮았잖아.”
느닷없는 다이치의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저게 뭔 소린가 싶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에 낀 부연 안개 같은 게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다.
“니 목소리 듣는 순간 안 괜찮은 게 확 티가 나는데, 정신 차리니까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가고 있더라고. 아, 그리고”
그 뒤로 다이치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더 참아주고 들어 주고 있을 만큼 내 인내심은 깊지 않았다. 무작정 다이치를 끌어안고는 허겁지겁 입을 맞추었다. 마치 안달난 사람처럼 끌어안고 무작정 입술을 들이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잠깐, 잠깐만 하며 말리던 다이치가 이젠 제가 못 참겠다는 듯 물러서던 발걸음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축축한 숨이 진짜 다이치라는 걸 말해준다. 진짜 다이치가, 내 앞에서, 정말로 나랑 입을 맞추고 있다. 그 사실에, 그 현실에 나는 꼴사납게 감동했다. 고작 오일동안 못 본 주제에 나는 별난 이별을 했던 사람처럼 굴었다. 그렇지만 난 그 오일동안 피가 마르는 줄 알았다. 감촉이 없는 사와무라 다이치의 환영에서, 사와무라 다이치의 흔적에서, 헤어 나오지도 매만지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앓았으니까.
“죽을 뻔 했어.”
숨을 가까스로 들이마신 다이치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그런 다이치를 정성스럽게 매만졌다. 나는 첫사랑의 열병에 들끓던 그 때 처럼 마음속에 있는 말을 죄다 털어내었다.
“보고 싶어서 죽을 뻔 했어.”
아랫입술을 쭉 빨아 당기며 입술 새로 흘리듯 뱉은 내 말을 용케 들었는지 다이치가 물기 섞인 웃음을 푸흣 하고 뱉어낸다. 사랑스럽다. 왜 이렇게 새삼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10년 동안 꼬박 꼬박 들어왔던 저 장난스러운 웃음이 오늘 따라 유난히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럴 것 같아서 이렇게 왔잖아.”
아쉽게 주춤거리며 떨어진 입술이 닿아 살짝살짝 스친다. 차분하고 단정한 저 얼굴에서 가끔씩 보이는 이런 섹시함은 나만 아는 다이치의 매력이다. 정말 그 매력에 숨질 것 같다. 엄마, 나 일찍 죽으면 다 얘 때문이야. 심장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뛰어. 달큰한 목덜미에 입술을 푹 묻자 기묘한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단숨에 다이치의 벨트를 휘리릭 풀었다. 그러자 눈을 둥그렇게 뜬 다이치가 주춤 하는 게 느껴진다. 이곳저곳 보이는 곳에 죄다 입술 도장을 찍으면서 셔츠 단주를 푸는데 다이치가 말리는 게 느껴진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았다. 다이치의 손길을 무시한 채 소파까지 밀어붙여 넘어뜨렸다.
“쿠로오, 잠깐만.”
“싫어.”
“잠깐만, 잠깐, 우리 좀 있다가..”
“가만 있어봐.”
“쿠로. 사실, 읏.”
“다이치 너 짐은 이게 다지????”
소파 위에서 한참을 뒹굴고 있는데 현관문이 소란스럽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와 다이치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힌 그 곳에는 다이치의 짐 가방을 든 오이카와가 바퀴벌레 씹은 마냥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랑...같이 왔다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 다이치가 부랴부랴 옷을 추스린다. 투둑, 짐가방을 내팽개치듯 떨어뜨린 오이카와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그런다.
“씨발, 아주 에로 영화를 찍어라.”
“어, 찍을 거야. 그러니까 삼초 내로 좀 꺼져줘.”
다이치의 바지춤을 덥석 집으며 그랬더니 다이치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고맙게도 진짜 나가버리는 오이카와에게 다이치가 가까스로 ‘데려다 줘서 고마워!’ 그런다. 채 내뱉기도 전에 발음이 죄다 뭉개져 버리긴 했지만. 슬쩍 돌아보자 오이카와랑 눈이 마주쳤다. 입으로 작게 땡큐 이랬더니 닫히는 문 사이로 가운데 손가락을 번쩍 치켜들며 씩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