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다이] 야속한 그대여上
쿠로오 테츠로 X 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와 사귄지도 삼개월. 게이도 아닌데 남자인 사와무라에게 첫 눈에 반해 열렬한 구애를 했고 어쩐지 조금 고지식해 보일 정도로 올곧은 사와무라는 무지막지한 구애에 마음을 열었던지 의외로 흔쾌히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연인이라는 형태의 관계가 되어 알콩달콩한 데이트를 하고 남자애들답게 운동도 하고 뭐 그러다 보니까 100일이 후딱 지나간 것이다. 로맨틱 시티보이 쿠로오는 사귀고 처음으로 맞는 의미 있는 기념일인데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며 100일 기념일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 사와무라는 민망하다며 괜찮다고 연신 말을 했지만, 어느 정도 기대를 한 건 사실이었다. 다정하고 상냥하며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줄 모르는 그 쿠로오와의 연애에 한참 눈이 돌아가 있을 때였다. 사와무라는 쿠로오에게 어울릴만한 선물도 사고 어쩐지 부끄러운 데이트 시뮬레이션도 머릿속으로 몇번이나 하며 쿠로오가 준비한 100일 기념 1박 2일 여행길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행복하니까 다들 연애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 100일 기념 여행이 앞으로의 두 사람에게 무슨 시련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두 사람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핑크빛 연애질에 한참 콩깍지가 씌인 사와무라는 펜션에 도착하면 막 입구부터 초가 놓여져 있고 욕조에 장미꽃이 뿌려져 있는거 아냐? 따위의 인소같은 망상이나 뭉게뭉게 품고 있었다. 그에 반해 쿠로오는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성 답게 아주... 핑크하다 못해 시뻘건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100일 쯤 됐으면 이제 슬슬 해도 되지 않냐? 둘다 성기발랄한 청춘들인데? 첫 떡은 로맨틱하게 빚어야 하지 않나? 따위를 줄곧 생각하던 쿠로오의 핸드폰 검색창은 [분위기 좋은 러브호텔], [애인이랑 가기 좋은 펜션] 등의 사심 가득한 단어들로 가득했다. 이렇게도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펜션으로 입실하여 언제나의 데이트의 연장선을 즐기다가 분위기 좋은 음악에 취해 입을 맞추고 풀썩 침대에 누울 때 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다.
“다이치. 너를 나에게 줘.”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찾아낸 애인이 한방에 뻑가는 필살 대사 50선 중 제일 마음에 든 대사를 꺼내든 쿠로오가 그윽하게 제 아래에 누운 사와무라를 내려보았다. 그런 구림이 활개치는 대사에도 미야기 청년 사와무라의 심장이 떨린 걸 보면 둘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천생연분이었다. 이왕 천생연분인 김에 몸 궁합도 잘 맞았으면 좋으련만.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사와무라의 대답에 눈이 돌아간 쿠로오는 이제껏 뒤집어 쓰고 있던 다정하고 친절한 시티보이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제 안의 욕망을 고스란히 끄집어 냈다. 문자 그대로 잡아먹을 기세로 사와무라에게 달려든 쿠로오는 제 아래의 사와무라를 잡아벌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고스란히 제 욕망을 쏟아냈다. 사와무라는 제 몸을 찢어발길 듯한 쿠로오의 기세에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다 하는거야 처음은 원래 아프댔어 따위의 합리화를 시키다가 까무룩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땐 천장이 아득하니 빙빙 돌았고 쿠로오는 제 옆에 누워 살살 가슴을 매만지며 하, 자기야 진짜 좋았어 따위의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너 혼자 넣고 흔들다 너 혼자 쌌으니 너는 좋았겠지. 내 찢어진 구멍은 니가 꼬매줄거냐!!! 사와무라는 목구멍까지 끓어오르는 마음속의 외침을 필사적으로 짓눌렀다.
“우리 자기도 좋았지?”
“으, 응? 응...!”
하지만 사와무라는 눈을 빛내며 물어오는 쿠로오의 면전에 대고 바보같은 맞장구 밖에 쳐줄 수 없었다. 쿠로오의 반질거리며 윤기 흐르는 얼굴을 보면 어쩐지 아랫구멍이 움찔, 아파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와무라는 쿠로오를 눈에 띄게 피했다. 처음엔 그냥 제 착각이 아닐까 그렇게 정신승리 하려고 했지만 100미터 밖에서도 제 솟은 머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뒤돌아 뛰어가버리는 사와무라를 보고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쿠로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니야, 우리 다이치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다이치가 나를 버릴리 없어. 하지만 그럴리 있었다. 사와무라는 명백하게 쿠로오를 피하고 있었다.
“다이치.”
“응 쿠로오. 수업 끝난거야?”
전화를 걸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꼬박꼬박 연락은 잘 되니 싫어졌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응, 괜찮으면 같이 밥 먹을래?”
“아ㅡ 아 나 방금 점심 먹고 나오는 길이라서.”
“아, 점심은 나도 먹었어. 저녁 말이야.”
“아, 저녁은....그 약속이 있었네? 하하하.”
“무슨 약속?”
“학교 동기들이랑 말이야 하하하.”
미묘한데. 쿠로오는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어 그냥 알겠다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사와무라는 가끔 캠퍼스 안에서 마주치면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며 스쳐지나갔다. 말 그대로 인사와 함께 스쳐 지나갔다. 데이트 신청을 하면 다섯번 중에 넷은 그럴듯한 이유로 거절당했다. 쿠로오가 간혹 섭섭한 기색을 보이면 미안해~ 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용서를 구하니 금세 사르르 풀리곤 했다. 그럴 듯하게 관계는 이어졌지만 쿠로오는 문득 사와무라와 스킨쉽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을 눈치챘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대략 일주일도 넘은 상태였다.
말도 안되잖아. 우린 지금 한참 불타오를 시기라고!! 쿠로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사와무라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냥 요즘 좀 바빴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간절하게 붙들었다.
“여보세요?”
“응, 다이치. 바빠?”
“응? 조금? 무슨 일 있어?”
응, 있어. 쿠로오씨가 지금 다이치랑 떡치고 싶어서 안달이 났거든. 전혀 로맨틱하지 못한 생각을 하며 쿠로오는 사와무라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애인의 목소리를 내었다.
“아니, 우리 자기랑 데이트 한지 너무 오래 됐다 싶어서. 전에 다이치가 먹고 싶다고 하던 라면집 이 근처에 체인 생긴다는데 같이 갈래?”
“아, 그래?”
“응응. 자기가 옛날부터 가고 싶어했잖아.”
이건 거절 못하겠지. 쿠로오의 예상대로 사와무라는 꽤 오랜시간 머뭇거렸다.
“거기 오픈 기념으로 본점 육수 한정 50그릇 판매래. 자기 좋아할 거 같은데, 시간 내기 힘들까?”
꿀꺽, 수화기 너머로 사와무라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와무라는 조금 홀린 목소리로 아니, 하고 대답했다. 쿠로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들뜬 목소리로 신속하게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사와무라는 라면을 먹고 나는 다이치를 먹고 우리 둘다 좋은게 좋은거지. 쿠로오는 탄력 좋던 사와무라의 허벅지를 떠올리며 군침을 삼켰다. 끝까지 다정한 애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고대하던 데이트 날이 되고 쿠로오는 세상둘도 없는 상냥한 얼굴로 사와무라를 맞이했다. 사와무라는 그런 쿠로오를 보며 해맑은 미소로 맞이했다. 학교에서 스쳐지나가던 얼굴을 오랫동안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사와무라가 밀어낸다고 생각했던 건 좀 착각이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정도로 사와무라는 쿠로오에게 밝은 미소와 목소리로 인사했다. 으, 역시 좋아. 쿠로오는 어쩐지 뭉글뭉글해진 기분으로 사와무라의 곁에 섰다. 길거리가 복잡해 슬쩍 어깨에 손을 올려 제 쪽으로 끌어 당기면 흠칫 쑥쓰러움에 굳은 어깨가 귀여웠다. 쿠로오는 몇번이고 가본 길을 능숙하게 에스코트했다. 사와무라가 좋아할 가게, 위치 등을 몇번이고 시뮬레이션 했다. 가게 근처에 도착했을 때 사와무라는 가게 밖으로 풍기는 라면 냄새에 감출 수 없는 흥분감을 내비췄다. 일찍 서두른 덕분에 한정 라면도 무사히 먹을 수 있어, 사와무라는 연신 행복한 미소를 가득 띄웠다. 사와무라의 행복한 미소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찡해져와 쿠로오는 이게 행복인가, 하고 촉촉해진 눈가를 가볍게 훔쳤다.
“맛있었어.”
“괜찮았어?”
응!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사와무라가 배시시 발긋하게 풀린 눈으로 지긋하게 웃었다. 얼마만에 보는 저 무해한 미소인가. 미친 귀여워!! 심장을 얻어맞은 것 마냥 달려드는 충격에 쿠로오는 지긋이 손을 들어 심장 부근을 손으로 꾹 쥐었다. 영문을 모르는 사와무라는 왜 그래? 하고 쿠로오의 남은 손을 잡아온다. 살포시 닿는 사와무라의 감촉에 벌떡 심장이 튀어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쿠로오의 기억을 헤집으며 덤벼들던 그 사와무라의 감촉이었다. 이제껏 꾹꾹 눌러둔 욕망이 삽시간에 펑 하고 터져버린다.
“다이치!”
“으,응?”
“자기야!”
와락, 손을 얽어쥐고 쿠로오가 외쳤다. 그 박력에 사와무라가 움찔, 어깨를 떤다. 쿠로오가 호기롭게 다이치를 잡아끌며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영문을 모르는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뒤를 쫓았다. 왜 그래? 하고 의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쿠로오는 이미 그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거침없이 옮기고 있었다. 몇갠가 골목을 접어들고 쿠로오가 어딘가에서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졸졸 따라오던 다이치가 덩달아 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들곤 삽시간에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다.
“우리, 좀 쉬었다 갈까?”
뭉근하게 풀린 눈으로 쿠로오가 사와무라를 바라본다. 꾹 쥔 손은 힘이 들어간 채였다. 유치할 정도의 배색으로 외관을 칠한 건물은 어떻게 봐도 러브호텔이었다. 노골적으로 바라는 걸 드러내는 쿠로오의 행동에 사와무라는 굳은 얼굴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바, 방금 밥 먹었잖아.”
“응, 그러니까 쉬었다 가자.”
찡긋, 얼굴을 구기며 애교스러운 윙크를 한다. 다이치~ 우리가 어린 애도 아니고 성인인데 꺼릴게 뭐 있어. 안그래? 욕망에 충실하자 우리~ 쿠로오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와무라의 팔을 당기며 보챈다. 사와무라의 입술이 달싹댄다.
“...어...”
“응?”
“싫어.”
사와무라의 단답에 쿠로오가 잠깐 멍청한 얼굴이 된다. 싫어라는 대답은 쿠로오의 시뮬레이션 안에 없는 말이었다. 자기가 준비한 데이트 코스에 기분이 좋아진 사와무라는 그저 쿠로오에게 안기며 아잉 자기 몰라몰라 응큼하기는~ 하고 아양 떨며 러브호텔로 들어가는 것만이 쿠로오의 시뮬레이션 안에 있었다.
“응? 자기야 왜 그래?”
“시, 싫어!!”
확, 거칠게 손을 잡아뺀 사와무라가 주춤 뒷걸음질 친다. 어쩐지 조금 울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쿠로오씨... 뭔가 어떻게 되어버렷! 아찔해지는 눈 앞을 머리를 털며 가까스로 추스렸다. 쿠로오는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사와무라에게 한발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사와무라는 두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그래 자기야? 무슨 일 있어?”
“뭐, 뭐하려고 그러는데.”
“응? 뭐긴 뭐야. 애인끼리 러브호텔 가서 할게.. 더 있어?”
피식, 조금 쑥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쿠로오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우리 다이치가 쿠로오씨 부끄럼 태우고 싶어했구나? 귀엽기는. 조금 부끄러운 미소로 슬쩍 눈 앞의 사와무라를 보자 사와무라의 안색은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그, 그거?”
“응?”
“그거...그, 그거 할거야? 섹스?”
어휴 우리 자기 대담한거 좀 봐. 쿠로오가 헤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와무라가 다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고 만다. 그 뒷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어라..하고 멍청한 소리를 뱉어냈다. 이게뭐지, 하고 잠시 상황을 파악하는 와중에 사와무라는 형형색색 러브호텔이 가득찬 골목을 바람처럼 달아나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쿠로오가 다급하게 사와무라의 뒤를 따른다. 허겁지겁 달아나는 사와무라를 따라 쿠로오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박하게 뜀박질을 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정도 쯤 되면 쿠로오도 대충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쿠로오는 절박하게 뛰어 제 앞에 팔랑팔랑 달아나는 사와무라를 낚아챘다.
“악!!!!”
“다, 다이치, 헉, 헉, 너 혹시 나 피하는, 헉, 거야?”
쿠로오의 말에 사와무라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가 멍청해진 얼굴로 쿠로오의 얼굴을 바라본다.
“혹시라니.”
“응?”
“나 대놓고 너 피했어.”
가슴을 후벼파는 사와무라의 말에 쿠로오는 억, 입에서 피를 토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왜냐니?!”
사와무라는 덜덜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쿠로오를 바라봤다. 쿠로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사와무라를 내려다 봤다.
“너, 그 날 나한테!! 나한테 어떻게 했어!!!!!”
“응?”
“그 날 그.......그 날 있잖아!!”
아무리 아둔한 쿠로오도 어줍잖은 눈치는 있었다. 그 날이 두 사람의 첫 거사를 치루던 날을 말하고 있다는 걸.
“그 날 우리 잘 했잖아?”
하? 어이없는 말에 사와무라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햇살 같던 우리 다이치의 얼굴이. 쿵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쿠로오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사와무라가 쿠로오에게 잡힌 팔을 잡아뺀다.
“나 그날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왜?”
“왜긴 왜야!! 너 혼자 넣고 너 혼자 흔들다가 너 혼자 다 싸고!!! 내 배려는 하나도 안하고!!!”
에? 쿠로오의 얼굴이 멍청한 낯이 되었다.
“너 그날.. 좋다고 했잖아?”
“아 그럼 그 분위기에 넌 좋았냐 난 찢어지는 줄 알았다!!! 뭐 그런 얘기 해야 돼?”
하느님 내 천사같은 다이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쿠로오는 잠시 현실 탈출해버린 가느다란 이성을 간신히 붙들었다.
“미안해 나 너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닌거 같아.”
“자기야!!”
“나한테 시간을 좀 줘 쿠로오.”
“시간이라니 무슨 소리야 자기야 우리 지금 한참 뜨거울 땐데!!!”
“뜨거운 건 너 혼자 뜨거우시구요 쿠로오씨!!!”
난데 없는 싸늘한 선언에 한대 얻어맞은 모양이 된 쿠로오가 사와무라를 붙든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쿠로오를 밀어낸 사와무라는 파랗게 얼굴이 질려있었다.
“미안해 쿠로오, 나 너무.. 좀.. 미안해 마음 정리 좀 할 시간을 줘.”
“안돼!!!!!”
와락, 눈 앞의 사와무라를 끌어안자 품안에 푹 담긴다. 절박하게 끌어안는 쿠로오의 행동에 조금 마음이 흔들린다. 사와무라는 잔뜩 어지러운 눈동자를 꾹, 눌러감다가 벼락같이 번쩍 눈을 치켜 뜬다.
“야, 너, 이 미친, 너 길바닥에서 세우지마!!!”
“내가 얼마나 오늘을 기다린 줄 알아?!”
“내가 알게 뭐야, 난 못해!!!! 아니, 안해!!!”
“아직 안해본거면 몰라, 한 번 해본 나에게 너 너무한거 아니냐? 이럴거면 차라리 뭔 느낌인지 모를 때가 더 좋았지!!!”
“그래 나도 안해본게 더 나았던거 같다!”
헉, 머리를 맞은 듯 멍했다. 사와무라의 말에 물끄러미 품안의 사와무라를 보니 금세 울듯 눈이 젖어 있었다.
“너 내가 얼마나...어? 얼마나 아팠는줄 알아?”
“어, 자, 자기야 울어?”
“나 진짜 무서워. 아팠다고. 근데 니가 좋아하니까 내가 참았는데.. 넌 너무 너만 생각하는거 아니야?”
울먹, 목이 메인 사와무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굳게 다문다. 멍하니 품안의 사와무라를 내려다 보았다. 아..
“나도 니가 좋아하니까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어.”
울먹울먹 울음을 머금은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는 순간 쿠로오는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홀린 듯 품안에 품은 사와무라에게 입을 맞추었다. 여기가 길바닥이든 어디든 상관 없었다. 잔뜩 사와무라를 감싸안고 입을 맞추자 사와무라가 울음을 삼키며 입술을 맞대온다.
“미안해 다이치. 내가 더 잘할게.”
가만히 품에 안고 다독였다. 사와무라는 조금 굳은 몸으로 쿠로오에게 가만히 안겼다. 다독다독, 다정하던 손길이 내려와 사와무라의 손을 따스하게 감싸쥐었다.
“잘할테니까, 응?”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사와무라는 어이없는 얼굴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쿠로오의 얼굴이 단호했다. 이제껏 내가 한 말은 똥구멍으로 쳐먹은거야?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악!!!!!”
“너랑 안해!!!!!! 안한다고!!!!!”
앞으로 푹 꼬꾸라진 쿠로오를 내팽개치고 사와무라는 미련없이 걸음을 옮겼다. 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바닥에 나뒹굴던 쿠로오가 번뜩 눈을 떠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일으킨다.
“다이치!!!!”
씩씩 대며 길을 걷던 사와무라가 쩌렁쩌렁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휙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대뜸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다. 인도 끝에 아슬아슬하게 선 쿠로오가 비장한 얼굴로 그런다.
“너 그대로 가면 나 뛰어들거야!!”
저게 미쳤어 진짜!!!! 쩍 입이 벌어진 사와무라가 어이없다는 듯 우뚝 멈춰 선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사와무라는 잘 알고 있었다. 쿠로오는 한다면 하는 놈이라는 걸.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서 쿠로오는 비장한 얼굴이었다.
“미쳤어 진짜..”
저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다이치!!!!! 난 너 없이 못살아!!!!! 너 없는 삶은 내게 의미가 없어!!!”
저 미친놈의 시티보이 감성은 왜 이 상황에서 폭발하고 지랄이니. 사와무라는 사색이 되어 허겁지겁 쿠로오에게 달려갔다. 쿠로오와의 섹스도 무서웠지만 지금은 저 미친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 더 무서웠다. 사와무라의 미야기 감성으로는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미쳤다고 저런게 멋있어 보이던 때도 있었지.
“너 없이 살 바엔 차라리 죽어버릴거야!!!!”
지금은 저 감성에 휩쓸려 쿠로오와 사귀기로 한 과거의 자신을 후드려 패고 싶었다. 사와무라는 다급하게 달려가 쿠로오를 잡아 당겼다. 너랑 못 잘바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난리를 치는 몸을 겨우 잡아끌어 바닥에 쳐박았다.
“너 미쳤어?”
“미친 사람 살린다 생각하고 한번만 더 하자.”
“쿠로오 제발.. 못하겠다고 했잖아.”
“그럼 내 불쌍한 똘똘이는 어떡해!!! 사흘 밤낮 너만을 그리며 10분 대기조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니까 제발 밖에서 좀 세우지 말라고!!! 안그래도 길 한복판의 호모게이들의 사랑싸움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대로 집중된 마당이었는데 눈치 없이 고개를 쳐드는 쿠로오의 것을 마음 같아선 잡아 분질버리고 싶었다.
“다이치이”
“...”
“자기야아.”
사와무라가 잠시 간과 한것이 있었다. 이런 미친놈한테 단단히 코꿰어 사귀고 있는 자신이었다는 것을. 아무리 때려죽이고 싶은 쿠로오일지언정 촉촉하게 젖은 불쌍한 눈으로 이렇게 바라보면 자신은 이길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길바닥에서 널부러져 시선을 모으는 것 보다 피하는 쪽을 택했다. 영 떨떠름한 사와무라를 진짜 안한다 나를 믿어라 거듭거듭 달랜 쿠로오가 향한 곳은 아까 보았던 형형색색의 러브호텔이었다. 꺼름칙한 기분을 채 떨치지 못한 사와무라가 머뭇거리는 걸 이끌고 들어간 쿠로오가 카운터에서 능숙하게 방키를 받고는 방으로 향한다. 지칠대로 지쳐 이제 반쯤 어떻게 되든 모르겠다 싶은 사와무라가 쿠로오를 따라 들어가다가 덜컥 멈춰선다.
“여기 찾는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여기 예약 안하면 안될 만큼 인기 짱 좋은데야.”
붉은 조명이 두 사람을 반겼다. 아, 이건 아닌 것 같아. 사와무라는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각종 입에도 담기 민망한 인테리어와 도구들이 언듯 시야에 스쳤다. 사색이 된 사와무라를 패기롭게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린 쿠로오가 쿵, 문을 닫는다. 놀라 숨도 못쉬는 사와무라가 버둥버둥 저항했다. 하지만 이미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들리는 쿠로오는 그저 사와무라의 반항이 귀여운 애교 같을 뿐이었다.
“자기야.”
양껏 느끼해진 쿠로오의 목소리가 사와무라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오소소 소름이 끼쳐올라왔다. 그 날의 기억이 사와무라를 덮쳐왔다.
“쿠, 쿠로오.”
더듬거리며 이름을 부르자 낮게 깔린 목소리가 웃는다. 그 안에 담긴 수컷의 시뻘건 본능에 단번에 식은땀이 솟는다. 도망가야 해, 생각했지만 이미 몸은 쿠로오의 손에 반듯이 침대 위에 눕혀져있었다. 단숨에 위에 올라 탄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귓바퀴를 입술로 물며 달큰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다이치.”
단박에 그날의 기억이 끼쳐올라 사와무라가 덜컥 겁에 질린다. 몸이 쪼개질 것 같던 그날의 고통이 생생하게 떠올라 사와무라는 말보다 왈칵 눈물이 솟았다.
“쿠, 쿠로오..”
“응.”
“나, 나, 으으, 무서, 무서워.”
“괜찮아.”
다정하게 입술이 내려앉았다. 가만 가만 입을 맞추자 사와무라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게 느껴졌다. 느낄만한 곳을 골라 손으로 만져주자 조금 긴장한 몸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팔 안에 가둔 사와무라에게 입을 맞추며 달래주자 사와무라가 울음을 터트린다.
“나 못하겠어 쿠로오. 미안해 나, 나.”
“괜찮아 다이치. 천천히 할테니까. 괜찮아 괜찮아.”
“쿠로 미안해, 나, 나 살려줘. 나, 무서워 나 못해, 무서워 안돼 나 싫어.”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횡설 수설 말을 꺼내며 애원하는 사와무라에 쿠로오는 얻어맞은 듯 쿵 머리와 심장이 얼얼했다. 울먹이며 애원하는 사와무라라니. 이거 꿈인가? 하고 잠시 사고가 멈추는 것 같았다. 순간 제가 첫 경험 때 얼마나 못했던 건가 새삼스럽게 죄책감이 들었다. 하긴 벗은 다이치의 몸에 좀 흥분하긴 했었지. 둘다 아무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덤벼든 관계였던지라 그 말도 안되는 게 가능했던거다.
“쿠로오오.”
허엉 하고 울어버리는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쿠로오의 것이 벌떡하고 일어선다. 미친 이건 내 의지가 아니야. 난 이정도로 파렴치한이 아니야. 쿠로오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합리화를 시켜댔지만 당당하게 솟은 쿠로오의 것은 다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이치가 이 정도까지 하는데. 쿠로오는 제 품안의 사와무라가 엉엉 울며 애원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언제나 햇살 같고 당당하던 사와무라가 저에게 빌고 있었다. 뒤틀린 정복욕 비슷한 것보다 인간으로서의 측은함이 앞섰다. 쿠로오는 얌전히 사와무라의 젖은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몸을 내려 사와무라의 옆에 눕곤 사와무라의 몸을 와락 끌어안는다.
“마음 안 좋으니까 그렇게 울지마.”
“쿠로오오.”
“알겠어 다음에 하자.”
마지막 말은 어쩐지 좀 목이 메었지만. 쿠로오의 말에 사와무라가 젖은 얼굴로 함박 웃는다. 쿠로오오~하고 조금 끝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어쩐지 심장이 간질거렸다. 그래, 어차피 앞으로 우리에게 시간 많으니까. 그렇지? 아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날거 같지. 가만히 끌어안은 사와무라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쿠로오 진정해라 사나이는 가슴으로 우는거야. 찡한 코끝을 애써 꽉 누르며 울음을 삼켜내었다.
“쿠로오.”
“응?”
쿠로오의 품에 안겨 조금 진정된 사와무라가 가만히 쿠로오의 이름을 부른다. 그 차분한 목소리에 쿠로오가 가만히 대답한다. 품안의 사와무라는 어느새 진정을 하고 조금 안정된 얼굴이었다.
“얘.. 언제 죽어?”
사와무라가 제 아랫배 부근에 비벼지는 쿠로오의 것을 가리키며 물어온다. 단단한 쿠로오의 것이 사와무라의 아랫배를 쿡쿡 찔러온다. 쿠로오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킨다.
“그, 미안. 빼고 올게.”
쿠로오가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는데 사와무라가 슬쩍 쿠로오의 손을 잡는다.
“진짜, 안할거지?”
“응?”
“안한다고 약속하면.... 그, 손으로라도 해줄게.”
헉 땡쓰갓. 쿠로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돌렸다. 한껏 울어 코끝이 붉어진 사와무라는 이따끔 울음기 섞인 딸꾹질로 히끅히끅 몸을 떨었다. 사와무라의 손에 이끌려 쿠로오는 침대 위로 천천히 앉았다. 어쩐지 새삼스럽게 민망해져서 어흠, 헛기침을 하자 사와무라가 웃는다.
“이리와.”
천사같이 해사한 얼굴로 웃는다. 쿠로오는 홀린 듯 몸을 당겨 앉았다. 사와무라의 손길이 슬쩍 제 앞 사타구니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한 쿠로오의 것이 팽팽하게 일어섰다. 사와무라는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반쯤 고개를 돌리고는 제 손에 잡히는 쿠로오의 것을 덥석 쥔다. 홧홧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손으로 매만지자 낮은 신음이 흐른다. 귀를 간질이는 소리에 사와무라는 어느새 제 손에 쥔 쿠로오의 것에 집중한다. 첫 관계 때는 잘 몰랐다. 어떤 모양인지 어떤 느낌인지. 새삼스럽게 이제와서야 제 애인의 것과 대면하고야 만 것이다. 손바닥으로 조심해서 훑으니 쿠로오의 낮은 신음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영 불편한 자세로 매만지던 사와무라가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있어봐.”
그러더니 쿠로오의 상체를 세워 앉게하고는 쿠로오의 뒤로 가서 털퍽 주저 앉아 버린다. 뜬금 없는 사와무라의 행동에 쿠로오가 뒤를 돌아보려하자 찰싹 등에 달라붙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어 쿠로오의 것을 쥐었다.
“헉.”
“앞에서 하니까 영 자세가 안나와서.”
멎쩍은 웃음을 하며 사와무라는 천천히 쿠로오의 것을 쓰다듬었다. 저보다 앉은키가 더 큰 쿠로오의 등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등에 가만히 입술을 묻으며 제 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뜨겁고 단단하게 달아오른 쿠로오의 것을 매만지며 어쩐지 패배감이 들기도 했다. 같은 남잔데 이거 너무 불공평 한거 아니야? 입술을 삐죽이며 손가락으로 툭 쳤더니 쿠로오가 낮게 신음하는 소리에 등이 울렸다. 어쩐지 야한 기분이 되어 조심스럽고도 조금 집요하게 쿠로오의 것을 매만졌다. 낮게 신음하던 쿠로오가 제가 던져둔 가방을 팔로 끌어 당긴다. 지퍼를 열고 손를 넣어 뭔가 부스럭대던 쿠로오가 끄집어 낸 것은 러브젤과 콘돔꾸러미었다. 이 정도로 하고 싶었냐. 어쩐지 조금 찝찝한 얼굴이 되었다가 쿠로오가 젤의 뚜껑을 열어 제 손 위에 쏟아내자 차가운 감촉에 흠칫 놀란다.
“으음, 다이치이.”
낮게 흥분에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와무라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에 덩달아 사와무라도 흥분한다. 질척하게 젖은 손 위를 쿠로오가 감싸쥔다. 미끌한 손가락 위로 길죽하고 감촉이 다른 쿠로오의 손가락이 얽혀 흔들린다. 으아, 어쩐지 부끄러워진 사와무라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손은 쿠로오의 손길에 이끌려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풀어오른 쿠로오의 것이 한계에 달한 듯 손길이 빨라졌고 타이밍 좋게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것의 끝을 매만졌다. 뜨겁고 끈적한 정액이 툭툭 사와무라의 손 위로 쏟아졌다. 사정의 여운으로 부르르 떨리는 몸이 닿은 등으로 느껴졌다. 흥분에 잠겼던 목소리, 조금 달아오른 체온. 사와무라는 어쩐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애인이 이렇게 섹시했던가? 사와무라의 팔 안에서 몸을 일으킨 쿠로오가 조금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며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티슈를 툭툭 뽑아들고는 사와무라의 손을 닦아주었다. 아직 조금 거친 호흡이 바로 앞에서 쏟아지며 꼼꼼하게 길죽한 손가락으로 사와무라의 손가락을 매만져 닦았다. 아 미치겠다.
“고생했어. 고마워.”
웃으며 사와무라의 손을 쥔 그대로 쿠로오가 뺨에 입을 맞췄다. 말도 안돼 내 애인이 이렇게 섹시했다고? 사와무라는 고개를 비틀어 떨어지는 쿠로오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포갰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섹시한 건 섹시한 거였다. 내 애인한테 내가 키스 좀 하겠다는데 그게 왜? 사와무라는 맞닿은 입술 새로 쑥 혀를 집어넣었다. 잠깐, 하고 뭉개진 발음의 쿠로오는 깡그리 무시한 채 어깨에 손을 얹고 진득한 키스를 했다. 츕, 츕, 얽혀 젖은 소리를 내는 입술에 사와무라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쿠로오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저는 쿠로오를 올라 타고 있는 모양새였다.
“다, 다이치.”
반쯤 풀린 눈으로 다시 뒤엉킨 호흡을 하는 쿠로오를 보며 사와무라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까 도로 한복판에서 깽판치던 그 병신이랑 얘랑 동일 인물이라고? 할 수만 있다면 고소라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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