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 테츠로 X 사와무라 다이치
할로윈이니까 급하게 써본 짧은 이야기!
“어 춥다.”
시뻘건 츄리닝 아래의 쓰레빠로 삐죽 나온 발가락이 아린 것이 곧 겨울이 오려나 싶었다.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로고가 박힌 봉지를 손목에 걸고 츄리닝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는 가요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노래 따위를 흥얼거리면서 어두워 진 골목길을 쫄래쫄래 걸었다. 가끔 가다 길고양이 기척이나 조금 들리는 조용한 골목길을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그닥 세련되지 못한 건물의 낡은 자취방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이래도 제법 실하게 설계 된 집이라 싼 집세를 포기하지 못하고 지낸지가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절겅거리던 열쇠 꾸러미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간 쿠로오가 차갑게 식은 발끝을 꼬물 거리며 종종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 쓰레빠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다. 아 이 집이 겉 보기엔 낡아보여도 안은 제법 괜찮...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제 뺨을 매섭게 갈기는 차가운 바람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가기 전에 분명 불을 다 끄고 나갔는데 방안은 한가득 쏟아지는 만월의 달빛이 가득해 충분히 환했다. 그 중심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형체에 쿠로오는 눈을 느리게 꿈뻑였다. 주변으로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그득했고 거의 박살이 나버린 유리창은 너덜너덜해져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쏟아지는 달빛이 유리조각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빛무리의 중심에 선 형체는 느릿하게 쿠로오의 인기척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묘하게 피어나는 이질적인 감각이 좁은 쿠로오의 방안을 삽시간에 그득 채웠다.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쿠로오는 꿀꺽, 마른 입안을 억지로 적신다. 서슬퍼런 달빛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형체가 발을 딛을 때 마다 유리조각들이 밟혀 잘강거렸다.
“잠깐 스톱!!!!!!”
냅다 꽥 소리를 지른 쿠로오의 행동에 움찔 놀라 걸음을 멈춘다. 쿠로오는 제 손목에서 달랑거리는 편의점 봉지를 벗기려다 여의치 않은 듯 잡아 당겨 북- 뜯어 아무곳이나 던져버린다.
“사와무라 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유리창을!!!”
“변상할게.”
“아니 변상이 문제가 아니고 너 다치면 어쩌려고!!!”
“알잖아.”
잘강잘강 딛는 걸음은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지만 고작 약간의 흙먼지가 묻어 있을 뿐이었다. 걸음을 옮기며 제 머리카락이며 어깨 따위에 묻은 유리 조각을 맨손으로 툭툭 털어낸 사와무라가 성큼성큼 쿠로오에게 다가온다. 좁은 공간이라 몇 걸음만에 가까이 다가온 사와무라는 저보다 한뼘쯤 더 큰 쿠로오의 어깨를 꽉 쥐고는 밀어 바닥에 앉힌다. 남자 둘이 앉기엔 조금 작은 소파에 등을 기대게 밀어 붙이고는 단숨에 올라타며 덥석 쿠로오의 목덜미를 끌어 안는다.
“안 다쳐.”
체중을 실으며 안기는 사와무라의 허리를 반사적으로 끌어 안으며 몸이 미끄러지지 않게 붙들었다. 사와무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꼴이 되었지만 찬공기가 묻은 코끝은 서늘했다. 쿠로오의 머리를 끌어안은 사와무라가 귓가에서 속살거릴 때 마다 입안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할퀴는 한기가 쏟아졌다. 귓바퀴를 엷은 입술로 살며시 물었다가 놓으며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입술에 느껴지는 체온에 사와무라의 눈썹이 움찔 떨린다.
“어이, 사와무라.”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사와무라의 상체를 밀어낸 쿠로오가 손바닥으로 세지 않게 사와무라의 입과 턱을 감싸며 밀어낸다. 불만스러운 쿠로오의 행동을 내려다보는 꼴이 된 사와무라는 반항 없이 조용하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쿠로오.”
입이 막혀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사와무라는 제 입을 막은 쿠로오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든다. 감탄스럽게 잘 뻗은 손가락에서 입술을 떼어내며 버릇처럼 이름을 읊조린 사와무라는 쿠로오의 손가락 사이를 혀를 내어 핥아올린다. 명백한 의도가 보이는 행동에 쿠로오의 미간이 조금 구겨진다.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쿠로오를 내려다보는 사와무라의 꺼끌한 혓바닥이 손가락 사이를 꼼꼼하게 핥아 올린다. 하아,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려는 듯 가볍게 쏟아내는 한숨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쏟아져 시렸다.
“미안.”
“....”
“이번엔 정말 급해서.”
느릿하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아래서부터 천천히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핏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색이 느릿하게 차오른다. 쿠로오는 그런 눈을 보고서야 별 다른 말 없이 제 위에 올라 탄 사와무라의 골반을 고쳐 쥐곤 고개를 옆으로 젖힌다. 훤하게 드러난 쿠로오의 목덜미에 옅게 지워져가는 멍자국에 사와무라의 눈에 차분하게 생기가 깃든다. 상체를 숙여 단단하게 쿠로오의 어깨를 붙들곤 어깨죽지에 입술을 묻는다. 본능이 이끄는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장소에 단단하게 일어난 송곳니를 망설임 없이 찔러 넣는다.
고통에 비틀리는 어깨를 꽉 쥐고는 단숨에 빨아 당긴다. 꿀럭거리며 제 목구멍을 적시는 뜨거운 혈액의 느낌에 사와무라의 호흡이 흥분으로 흐트러진다. 비닐 냄새 나는 수혈팩의 냄새가 아닌 날것의 혈액은 본능이 가장 반기는 것이었다. 귓전에서 들리는 쿠로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고막을 닫은 것 마냥 아득하게 멀었다. 인간이었다면 호르몬이라고 명명할 본능이 널뛰며 사와무라의 식은 몸을 달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긁던 쿠로오의 손이 사와무라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 손이 기폭제가 된 것 마냥 사와무라는 본능이 이끄는 힘껏 쿠로오의 목덜미를 빨아 당겼다. 날것의 혈액 몸 구석구석을 적실 때 마다 사와무라의 허리가 비틀렸다. 흥분해 들썩이는 허리가 쿠로오의 손바닥을 비벼댔다.
쩡-하고 머리가 얼어붙은 듯 사고가 정지했다가 삽시간에 녹아내리는 것 마냥 느릿하게 따라온 현실의 감각이 온 몸을 덮쳐왔다. 뜨끈한 목덜미에 닿은 싸늘한 감각에 쿠로오는 파르르 몸을 떤다. 귓가에서 맴도는 사와무라의 흐트러진 호흡과 코끝을 적시는 비린 쇠냄새 같은 것들이 달빛이 그득 쏟아지는 좁은 자취방 안을 가득 메웠다. 사와무라의 송곳니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쿠로오의 시뻘건 츄리닝 위로 떨어져 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까슬한 혀를 내어 싹싹 핥은 사와무라가 몽글거리며 피가 올라오는 상처자국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힘 없이 몸을 소파에 기댄 쿠로오가 테엽풀린 인형마냥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동안 사와무라는 익숙하게 작은 약상자를 끌어와 반창고를 꺼내 쿠로오의 상처부위에 붙인다. 점점 무뎌지는 송곳니 때문에 목덜미는 잇자국으로 너절하게 자국이 난 상태였다. 아마 시퍼렇게 멍이 들겠지. 어쩐지 안쓰러워 천천히 호흡을 정리하는 쿠로오를 조심스럽게 꼬옥 끌어 안자 윽,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무거워.”
기력없는 말투에 사와무라가 머쓱하게 상체를 일으킨다. 조금 찌푸려진 눈가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자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쿠로오가 피실피실 웃는다.
“너 밥굶고 다닐동안 스가와라는 뭐했냐.”
“해외 봉사 갔어. 아마 이번 달 안에는 못 올걸.”
“환장하겠네.”
장기간의 부재에 걱정이 된 스가와라가 냉장고에 채워두고 간 수혈팩은 다 먹기도 전에 썩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아무리 의대생이라고 해도 몰래 빼돌리는 수혈팩에는 한계가 있으니 몇개 안되는 것 중에서도 이미 혈액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는 상태였다. 순혈 따위가 아니라 수혈팩 하나로도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사와무라였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는데는 어쨌든 한계가 있었다. 마시는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180이 넘는 장정인 쿠로오도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이니 사와무라도 웬만하면 제가 배곪다 가수면 상태가 되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선연하게 떠오른 만월의 밤은 잠든 사와무라를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향하게 했다. 질 좋고, 보장된 '먹이'가 있는 곳으로.
“괜찮아?”
“괜찮겠냐?”
잘만 말하는데 괜찮은거 아니냐? 하고 덧붙이려다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본능이 널뛰는 상태에서 무작정 밀어붙인거나 다름 없으니 쿠로오에게 무어라 큰 소리를 칠 수 없었다. 파리한 쿠로오의 입술을 보니 그제야 걱정 되어 사와무라는 조심스럽게 엄지로 쿠로오의 입술을 쓸었다. 반쯤 뜬 눈커풀을 들어올려 제 위의 사와무라를 본 쿠로오가 선명하게 빛나는 시뻘건 눈동자에 힘 없이 미소지었다.
“넌 괜찮아 보이네.”
“응?”
“다행이네.”
“뭐래.”
쿠로오가 힘 없이 손을 들어 제 눈을 톡톡 가리킨다. 너 눈 좀 어떻게 해봐. 쿠로오의 말에 사와무라는 느슨하게 눈을 깜빡인다. 툭 치면 피가 뚝뚝 묻어나올 것 같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가 눈을 감았다 뜨면 인간의 것마냥 검고 동그랗게 변한다. 몇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에 쿠로오는 잠시 멍하니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사와무라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의 일이었다. 우연히 같이 듣게 된 교양수업에서 알게 된 사와무라는 같은 학년에 제법 죽이 잘 맞아 순식간에 친해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데는 워낙 쿠로오가 낯가림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쿠로오였지만 사와무라는 수더분하면서도 어딘지 이해 못할 구석이 많았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같이 밥 한번 먹은 적 없다던지, 건장한 체격인것 같은 녀석이 해가 강한 여름에는 잔병치레가 잦다든지 하는 것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물 한모금 제대로 마시는 걸 본적이 없는 걸 보고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할 수 있는건가? 더위에 약하다고 하면서 열대야에도 불꽃축제 땐 그렇게 신나 있고?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넘겼던 것들은 그 어느 날 쿠로오의 자취방에서 밤샘 시험공부를 하던 중 실체를 드러냈다. 사와무라의 은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건 아마 며칠간의 밤샘공부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때 패기롭게 ‘물리면 나도 그렇게 되는거냐?’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이던 쿠로오는 시험 일정이 바빠 며칠 굶어 파리한 안색의 사와무라에게 제 목덜미를 내밀었다. 아마 순종의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럴 일은 없다는 사와무라의 말이 제 호기심을 더 부추긴 건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사와무라에게 반 강제적으로 제 목덜미를 들이댄 쿠로오는 이성 잃은 서늘한 송곳니가 제 목덜미에 박히던 첫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 배고파.”
“뭐 사다줄까?”
“아니, 저기 편의점 봉지에 먹을 거 있으니까. 좀 갖다 줘.”
막무가내로 굴던 사와무라는 순한 양이 되어 쿠로오가 아무데나 던져놓은 편의점 봉지로 달려간다. 손잡이가 찢어발겨져 엉망이 된 안에는 컵라면이며 편의점 봉지빵이 들어 있었다. 대충 칼로리 높아보이는 소세지빵을 집어든 사와무라가 봉지를 뜯으며 종종걸음으로 쿠로오에게 다가온다. 불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채 바닥에 늘어진 쿠로오를 한팔로 가볍게 불쑥 안아든 사와무라가 쿠로오를 소파에 반듯하게 눕혀준다. 사와무라가 쥐여 준 봉지빵을 먹는 동안 사와무라는 소파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걱정스럽게 쿠로오를 바라본다. 아니 그러게 자기 배고프다고 목덜미에 이빨부터 갖다꽂는 주제에 왜 뻔뻔하질 못해서 이러고 있느냔 말이야. 입안에 가득 물고있던 소세지빵을 꿀꺽 삼킨 쿠로오가 저를 내려다보는 사와무라를 빤히 바라본다.
“해줘 사와무라.”
“응?”
“해줘.”
목적어 없는 해줘의 의미를 단숨에 깨달은 사와무라의 얼굴이 이상하게 구겨진다. 네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뺨을 붉히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잠시 가만히 쿠로오를 바라보던 사와무라는 허리를 숙여 소파 위에 반듯하게 누운 쿠로오에게 입을 맞춘다. 서툴게 입술을 빨아당기는 입맞춤을 기다리다가 입을 벌려 혀를 얽는다. 입안에서 쏟아지는 한기와 좀 전까지 뜨거웠을 피의 비릿한 냄새에 쿠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와무라와의 흡혈 후에는 통과의례 같이 입을 맞추고 있는지 제 자신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손을 들어 사와무라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천천히, 하지만 깊게 입을 맞췄다. 쿠로오의 입맞춤을 따라오지 못해 허둥거리는 사와무라의 목덜미를 끌어 당기며 집요하게 입을 맞추었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제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사와무라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이니 조금은 비이성적으로 굴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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