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른 60분 전력 :: 기념일
우카이 케이신 X 사와무라 다이치
생일이라든지 사귄 기념일 이라든지 그런걸 하나하나 챙겨본게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까마득했다. 학생 때는 어떻게든 노는 날을 만들어서라도 놀고 싶어했고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왁자지껄 사람들과 만나면서 기념일을 핑계로 술자리를 많이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것도 점점 잦아들고 결국 남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본인의 생일도 까먹고 지나가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카이는 지금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송해요 정말..”
푹 수그러든 목소리, 축 늘어진 눈꼬리. 사와무라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우카이는 제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와무라에게 우선 메뉴판을 내밀었다.
“일단, 주문부터 할까?”
“네에..”
그렇게 메뉴판을 받아들곤 또 다시 머뭇거린다. 메뉴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인지 머뭇거리는 사와무라를 보며 우카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에 또 다시 어깨가 움찔했다. 우카이는 테이블 위에 있는 벨을 눌러 직원을 부른 뒤 평소에 즐겨 먹는 음료를 멋대로 주문해 버린다. 다른 것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친절한 목소리에 됐다는 듯 손을 든 우카이가 직원에게 메뉴판을 건네준다. 사와무라는 그런 우카이의 행동에 영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새였다.
“뭐가 그렇게 죄송한데?”
한숨 섞인 우카이의 말에 사와무라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어쭈? 이러다가 울겠다? 사와무라는 보기 드물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영문 모를 우카이의 말에 정말로 울것 같은 얼굴이 된 사와무라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말을 꺼낸다.
“기념일, 까먹어서 죄송해요.”
그러니까 무슨 기념일? 우카이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담았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지. 패밀리 레스토랑 한가운데 벽면에 붙은 전자시계를 보며 우카이가 곰곰히 생각했다. 꽃피는 봄기운이 만연한 이맘때 쯤 뭘 했더라. 가만히 고민하느라 미간이 저절로 좁혀지자 그런 우카이의 기분을 지레짐작하고 겁을 집어먹은 사와무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겨우 입 밖으로 끄집어 냈다.
“2주년은 꼭 제가 먼저 챙기려고 했는데요..”
아ㅡ 그러고 보니. 2년 전 이맘 때 연인이 된 두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연애에 긴장했던건지 설레는 열여섯 여고생마냥 우카이는 핸드폰 달력에 사귄 날을 기록하고 답지 않게 1주년 기념일도 챙겼었다. 완전 까먹고 있던 얼굴이었던 사와무라에게 괜찮아, 내가 챙기고 싶었으니까 라고 제법 쿨하게 얘기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야경이 예쁘기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즐거워하던 사와무라는 해사하게 웃으며 내년엔 제가 먼저 챙길게요, 라고 대답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진짜 기념일은 며칠 뒤긴 했지만 워낙 바빠 오늘의 데이트도 겨우 날짜를 잡은 두 사람이었다. 애초에 안챙겨도 별로 섭섭할 일이 없는 우카이는 사와무라의 풀죽은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괜찮은데.”
“제가 진짜 코치님, 아니 감독님한테 해드리고 싶은거 많아서 막 좋은 곳도 알아보고 그랬었는데에..”
그러니까 그 감독님 소리 이제 그만 하면 안될까. 우카이는 멋쩍게 뒷덜미를 매만졌다. 시간이 흘러 카라스노의 감독 자리에 앉은 우카이에게 사와무라는 예전 버릇 그대로 코치님, 하고 불렀다가 매번 감독님, 하고 고쳐 부르곤 했다. 애초에 사귀는 사이에 그런 딱딱한 호칭 좀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사와무라는 다른 건 다 되지만 호칭만은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사와무라의 말 끝이 점점 풀죽은 모양이 되었을 때 타이밍 좋게 주문한 음료가 두 사람 앞에 놓였다. 친절한 목소리로 즐거운 시간 되세요ㅡ하고 직원이 인사하곤 돌아섰다. 우카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 눈 앞의 사와무라를 보았다.
배구를 할 때 사와무라는 몇살이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듬직한 주장이었다. 고작 고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는 가끔 우카이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사와무라의 모습이 조금 색달랐다. 언제나 어린나이 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침착한 사와무라는 언제나 제 앞에서 조심스럽게 굴었다. 아쉬운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고 감독이 되어 바빠진 우카이를 배려하고 흥미롭게 카라스노 배구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보기드문 이런 풀죽은 모습이라니.
“뭘 해주려고 했는데?”
우카이의 말에 사와무라의 고개가 또 푹 숙여진다. 어, 화를 내려던 건 아닌데. 괜스레 겁을 집어먹은 사와무라가 조금 목이 메인 목소리로 그런다. 좋은 레스토랑 예약하구, 기념일 케잌이랑.. 오물오물 입술을 움직이며 말하는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점점 수그러 들었다. 언제나 어른스럽게 굴어봤자 사와무라는 고작 20대 초반의 어린 대학생이었다. 하나씩 늘어놓는 계획들이 귀여워 우카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런 우카이의 행동에 사와무라의 오해가 좀 더 커졌는지 사와무라가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그, 제가 기념일 날 학교에 갈게요!”
“아냐, 괜찮아. 그 날 바쁘잖아.”
“그래도..”
완곡하게 돌려 말한다는게 너무 돌려 말해버린건지 사와무라는 여전히 오해를 가득 끌어안은 얼굴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 장난이나 쳐볼까 하는 못된 마음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어차피 까먹었지?”
“아, 저 그게..”
“아아~ 괜찮아. 어차피 뭐 많이 기대도 안 했구 말이야.”
턱을 괴고 시선을 창 밖으로 둔 채 우카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제 맞은 편에 앉은 어린 연인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이런 사와무라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우카이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죄송해요 제가.”
“아냐 괜찮아. 얼음 다 녹겠다 어서 마셔.”
손을 가볍게 들어 사와무라의 앞에 놓인 오렌지 쥬스 잔을 가리키자 사와무라가 울상인 얼굴로 빨대를 물었다. 차마 삼키진 못하고 우물우물 빨대 끝을 씹던 사와무라가 힐끔 눈만 들어 우카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뚝뚝한 시선으로 입꼬리만 당겨 웃는 모양새를 만들어 보인 우카이는 쩔쩔매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과 낯부끄러운 듯 조금 달아오른 귓볼, 보기 드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코, 감독님이랑 같이 하려고, 선물도 봐뒀는데요.”
아마존에서 배송이 늦어진다지 뭐에요. 불평이 아닌 울먹임이었다. 그 목소리에 우카이는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입술을 꽉 물며 웃음을 참는데 사와무라가 그런다.
“그게 감독님 마음에 안드실지도 모르겠지만요..”
“사와무라.”
네, 네? 갑작스레 들리는 제 이름에 화들짝 놀란 사와무라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우카이는 애써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사와무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긴장해 꾹 한일자로 다문 입술, 살짝 젖은 눈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우카이는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하면 소원 하나 들어줄래?”
“네.”
“뭐든지?”
“네.”
화가 풀리신다면요. 사와무라의 덧붙인 말에 우카이는 작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화가 난게 아니래도. 우카이는 테이블 위로 몸을 숙여 사와무라에게 꽤 가깝게 다가갔다. 그런 우카이의 행동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사와무라였다. 뭐든지 라는 말에 그렇게 순순히 대답하면 큰일나는 걸 좀 알아야 할텐데. 이 어린 연인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키스해줄래?”
“네?”
“니가 먼저 하는 키스, 가만 생각해 보니까 받아본 적이 없는 거 같아서.”
“네?”
“여기서 지금 당장.”
우카이의 말에 사와무라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 저, 그게요, 더듬더듬 말의 행방을 찾는 사와무라는 조금 멍청해진 얼굴이었다. 우카이는 그런 사와무라를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올곧은 시선에 점점 사와무라의 얼굴이 달아올라 목덜미까지 붉어진다.
“감독님, 여기 어딘지 알고 계시죠?”
“응 알아.”
“무슨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좀 전까지 귀엽게 굴던 사와무라의 걱정은 너무나 어른스러운 것이어서 우카이는 결국 웃어버렸다. 부끄러움 너머로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와무라의 얼굴에 우카이는 웃는 얼굴로 눈을 감았다.
“무슨 소문이라도 내서 너 도망 못가게 침발라 놔야지.”
“제가 무슨 도망을 간다고 그러세요.”
“그래서, 안하려고?”
재촉하듯 내미는 입술에 사와무라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눈을 감아 보이지 않지만 사와무라는 울상인 얼굴로 머뭇거리고 있을게 뻔했다. 그 표정을 보지못하는 건 아깝지만 우카이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니가 해줄 때 까지 난 움직이지 않겠다는 얼굴로. 결국 천천히 사와무라의 기척이 가까워졌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꾹, 입술 도장을 찍고는 화다닥 도망간다. 힐끔, 눈을 뜨자 펑하고 터져버릴 듯 시뻘건 사와무라의 얼굴이 앞에 있었다.
“지금 뭐가 지나갔나?”
“아 진짜, 이걸로 좀 참아주세요.”
“사와무라, 내가 키스라고 했을텐데.”
“그건, 그러니까.”
“아아, 어떡하지. 기분이 영 언짢네.”
“감독님!”
그건 이따 해드릴테니까요, 그러니까 지금은 이걸로 좀 참아주세요. 울 것 같은 사와무라의 얼굴에 우카이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던 사와무라는 제 앞에 놓인 묽은 오렌지쥬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쪼로록ㅡ 요란스레 빨대 끝에서 빈소리가 나고서도 사와무라는 제 앞에 앉은 우카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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