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른 60분 전력 :: 꽃놀이
우시지마 와카토시 X 사와무라 다이치
제법 더워진 날씨에 목을 조인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당겼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추운 날들의 연속이더니 앗 하는 사이에 벌써 날씨는 봄이었다. 몇장인가 넘어간 달력과 느긋해진 기온이 명확하게 봄임을 알리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현재 딱딱하고 답답한 공기의 사무실 안이었다. 이번주 내내 너무 바빠서 드물게 야근의 연속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조금 돌려 풀던 사와무라가 작성하던 문서를 저장하고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아홉시, 오늘은 평소보다는 제법 이른 시간이었다.
자켓을 팔에 걸치고 서류 가방을 들고 일어선 사와무라가 회사를 나서자 한가득 봄공기가 달려들었다. 어쩐지 아침보다 조금 더 진해진 것 같은 봄기운에 사와무라는 기분 좋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철로 세 정거장, 시간으로는 10분도 채 안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걷기로 한다. 평소보다 좀 일찍 마친 것도 있고 계속 앉아 있으니 뭔가 몸도 찌뿌둥 하고. 제 멋대로 머릿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사와무라는 길거리에 그득 핀 벚꽃을 올려다 보았다. 아 예쁘다.
봄이 오면 꽃이라도 보러갈까?
낯간지러운 단어를 꺼내며 쑥스러워하던 얼굴에 돌아오는 대답은 다정했었다. 그러자, 무뚝뚝 한 말투긴 해도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잘 알고 있어 서운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하지만. 사와무라는 살짝 오르는 체온에 느슨하게 풀었던 넥타이를 마저 풀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간혹 부는 바람이 선선하게 기분 좋았다. 조금 공기가 텁텁했지만 봄기운이 포근해 나쁘지 않았다. 이르게 핀 꽃들은 벌써 하늘하늘 꽃잎을 떨구기도 했지만 아직도 풍성하게 핀 꽃들이 그야말로 봄이었다.
내일부터 비 소식이 있던데. 아까 핸드폰에서 본 신문기사 헤드라인이 문득 떠올라 사와무라는 조금 쓰게 웃었다. 만개한 꽃을 질투하듯 내릴 봄비가 조금은 야속했다. 뭔가 감성이 말랑해진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사와무라는 조금 가볍게 웃으며 마저 걸음을 옮겼다. 번화가, 대로, 지하철역, 대형 슈퍼, 큰 건물들을 몇개인가 지나고 한참 걸으면 익숙한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시간 가량을 걷자 이마에 송글하게 땀이 맺혔다. 목이 말라 집 근처 편의점에 들린 사와무라는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차를 집어 들다 말고 멈칫했다. 오늘은 좀, 그거네 그거.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사와무라는 허리를 펴고 일어서 조금 높은 진열대에 있는 맥주를 집어 들었다. 봄한정으로 벚꽃그림이 가득한 맥주캔을 몇갠가 집어 들고 품에 안았다. 대충 주전부리가 될만한 걸 몇개인가 집어 들고 카운터에 와르르 쏟아냈다. 삑- 삑-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며 지갑을 뒤적여 지폐를 몇장인가 꺼냈다. 계산이 다 된 봉지를 받아들고 사와무라는 집 쪽이 아닌 반대쪽 출구로 편의점을 나섰다.
한적한 골목을 몇갠가 지나면 낡은 공원이 나왔다. 공원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공터에 벤치가 몇개 놓여있고 낡은 놀이기구가 몇개 놓여진 소박한 곳이었지만 사와무라는 예전부터 이 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두어그루 심어져 있는 벚꽃나무는 꽤 풍성해 나름대로 꽃놀이 할 맛이 났다. 그러니까 꽃놀이, 결국 혼자 하는구나. 사와무라는 낮은 한숨을 쉬며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어.”
그리고 벚꽃나무 근처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있네, 하고 잠시 머릿속이 삐걱대면서 형태를 눈으로 파악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뒷모습 뿐이었지만 훤칠한 키와 체형.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는 익숙한 사람의 것이라 순간 심장이 튀어올랐다. 혹시나, 설마 하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조급해졌다. 타박타박, 사와무라의 발걸음 소리에 돌아보는 얼굴은 야근에 치여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냈던 우시지마였다.
“뭐, 뭐야 언제 왔어?”
“오늘.”
“오면 온다고 연락을 하지!”
“좀 놀래켜 줄까 싶었다.”
놀랐어, 놀라서 아주 심장 떨어지겠어.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사와무라는 입술을 뻐끔였다. 급하게 전지훈련이 잡혀 일주일간 훌쩍 일본을 떠난 우시지마였다. 그 일주일이 꼭 꽃이 피고 질 기간이라 사와무라는 조금 서운했지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조심해서 다녀오란 메세지로 우시지마를 배웅했다. 그런 우시지마가 지금 눈 앞에 있었다. 그것도 만개한 벚꽃 아래서.
“어떻게 알고 여기로 온거야?”
“집에 없길래 아마 여기 있지 않을까 했다.”
집에 없던건 야근 때문이긴 한데. 어쨌든 여기로 왔으니 우시지마의 추측이 아주 틀린것 만은 아니었으니 할말은 없었다.
“그래도 길 엇갈리면 어쩌려고 그랬어.”
“사와무라가 여길 좋아하니까, 여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허리를 숙여 사와무라의 손에 들린 편의점 봉지를 받아 든 우시지마가 느긋하게 웃었다. 따뜻한 봄기운에 휘감겨 부드러운 공기와 오래 되어 침침하게 낮은 가로등 빛이 뭉근하게 두 사람을 감쌌다. 사와무라는 잠시 어찌해야할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가 가만히 가슴을 간질이는 행복감에 미소지었다.
“우시지마.”
“응?”
“머리에.”
손을 뻗어 머리로 향하자 우시지마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주었다. 조급한 벚꽃잎이 내려앉은 머리에 뻗어 꽃잎을 떼어내고 떨어지는 손목을 가만히 우시지마의 손이 와서 잡아 쥔다.
“할말, 있지 않은가.”
아, 손목이 잡힌채로 얼떨떨하게 우시지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사와무라를 가만히 보던 우시지마의 입꼬리는 느긋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 우시지마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어쩐지 조금 쑥스러워 지는 것은 봄기운 탓일 것이다. 슬쩍,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가 사와무라는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어서와, 우시지마.”
“다녀왔어.”
잡힌 손목이 당겨지고 허리가 안겼다. 우시지마가 자주 입는 저지의 품 안에서 시원한 샤워코롱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에 피곤으로 뭉친 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사와무라는 양 팔을 들어 우시지마의 허리를 끌어 안고 좀 더 깊게 몸을 묻었다. 네가 돌아오면 하고 싶은게 많았어. 그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봄기운 가득한 꽃놀이.
하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끌어안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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