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진행한 RT 이벤트로 쓴 글입니다.
오이카와 토오루 X 사와무라 다이치
↑ 리퀘 내용 캡쳐
참여해주시고 리퀘해주신 오드포님 감사합니다!!^^
사와무라는 앞에 놓인 기획서를 보며 제 눈을 의심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이미지도 깔끔하게 좋고 마스크도 좋고. 사생활도 깨끗하고. 맞아 좀 아이돌 같은 느낌이 있는 사람이죠. 괜찮을거 같은데. 여기저기서 거드는 목소리들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하긴 마스크가 반반해 옛날부터 소녀팬들을 몰고 다녔던 그였다. 이렇다 할 개인적인 연은 없어 사생활에 대해선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코트 위에서의 그는 사생활도 배구에 바쳤을 것 같은 사람이었지. 사와무라는 기획서에 반듯하게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며 그 아래에 박혀 있는 이름을 차근히 읊조렸다. 오이카와 토오루. 항상 유지하고 있는 부드러운 갈색머리와 말끔한 이목구비, 하지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오이카와는 익숙한 듯 낯설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오이카와를 보는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주도하는 광고 기획서 위에 실린 오이카와는 사와무라에게 어색한 존재였다.
“이번 컨셉이랑 이미지도 잘 맞을 것 같구요.”
“우선 오이카와씨 에이전시랑 미팅 진행해봐요.”
“네 알겠습니다.”
사와무라의 말에 직원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특히 기획서를 사와무라의 책상에 내려놓는 순간부터 이것저것 말을 덧붙이던 여직원은 활짝 웃으며 조용히 손을 맞잡았다. 직원들이 나가고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사와무라는 제 앞에 놓인 기획서를 다시 들춰보았다. 진중해진 얼굴로 몇번 휙휙 기획서를 넘기다 프로필에서 손이 멈췄다. 일본 국가대표 배구 선수, 포지션 세터, 신장 186.1cm, 몸무게 73.5kg, 28세. 사와무라는 쥐고 있던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지면을 문질렀다. 종이를 사각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오이카와는 봄고 준결승전 코트 위에서였다. 졸업 후 사와무라는 대학을 진학했고 배구를 그만 두었다. 배구와 멀어진 삶에서 더이상 오이카와와의 접점은 없었고 사와무라는 그것을 조금은 당연하게 여겼다. 더이상 배구와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사와무라의 인생에 또 다시 오이카와를 만나게 된 건 정확히 설명하기에는 조금 모호한 10년 전의 향수 같은 것을 불러왔다. 그래봤자 실제로 계약할지 아닐지도 모르고 말이야. 사와무라는 쥐고 있던 기획서를 덮었다. 어차피 그 쪽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도 않을 테고. 서류철을 잘 꽂아둔 책꽃이에 꽂아두며 사와무라는 다른 기획서를 펼쳐들었다.
*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여유롭게 현장에 도착한 사와무라는 습관처럼 조금 급한 걸음을 걸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일찍 도착해서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려면 아직 30분 정도 남았나. 사와무라는 핸드폰으로 일정을 체크해둔 어플을 확인하며 복도를 걷다가 문득 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걸으면서 스마트폰 보는 걸 고쳐야지 하면서도 영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고개를 든 사와무라는 제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 앞의 선 것은 사진으로만 보던 오이카와였다.
“오랜만이네.”
그야말로 오랜만인 그 목소리에 사와무라는 새삼스럽게 어, 하고 작게 놀랐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소리의 조각에 오이카와는 작게 웃었다.
“뭔가 유니폼이 아닌 사와무라 어색하네.”
“나, 기억하고 있었어?”
대뜸 튀어나온 사와무라의 말에 오이카와는 조금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이래뵈도 기억력 좋거든.”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고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 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오이카와에게 ‘카라스노 주장’이 아닌 ‘사와무라’라고 불릴 줄은. 입술을 꾹 눌러무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보던 오이카와는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멋있네.”
“응?”
“정장 입고 일하는 거, 멋있다구.”
오이카와의 칭찬에 어쩐지 쑥스러워진 사와무라가 시선을 어색하게 굴렸다. 그런 사와무라의 시선을 따라 오이카와의 시선이 따라왔다. 몇년이고 입어 이제 익숙할 법한 정장이 갑자기 어색하게 서걱거려 사와무라는 제 팔을 잡아쥐고 가볍게 주물렀다. 입안이 찐득하게 달라붙어 흔한 립서비스로 하는 ‘응, 너도’라는 간단한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같이 일하게 되서 반가워. 광고 잘 안 찍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아, 미팅 때 니 이름이 나왔거든.”
응? 사와무라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황급하게 시선을 돌려야 했다, 라고 생각했지만 오이카와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시선이 붙들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사와무라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대해오며 익숙해진 접대용 미소를 어렵사리 되찾았다.
“처음에는 이름 듣고 너인가 긴가민가 했는데, 왠지 너인거 같더라고.”
“하하, 배구하길 잘 했네. 이럴 때 도움 되고.”
어색하게 옆머리를 긁적였다. 오이카와는 그런 사와무라의 대답에 낮게 웃었다. 그러네. 조근히 흐르는 대답에 사와무라는 어색하게 제 팔을 주물렀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미묘하게 두 사람의 공기를 비틀어 놓았다. 사와무라는 어색하게 제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이십여분간 남겨둔 시간, 아직 여유는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그럼, 하고 운을 뗐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해. 나 먼저 가볼게.”
“사와무라.”
말보다 더 빠르게 반쯤 몸을 돌렸지만 오이카와는 사와무라를 불러 세웠다. 이쯤하면 더이상 할 얘기도 없지 않을까. 할 얘긴 다 한거 같은데. 사와무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설프게 몸을 비틀어 오이카와를 향했다. 복도의 차분한 조명을 받으며 오이카와는 옅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눈빛은 또렷하게 사와무라를 향하고 있었다. 차라리 여성팬들이 환호하는 예의 그 다정하고 반짝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으면 사와무라도 업무용 미소를 지어 줬을 것이다. 곧게 향하는 오이카와의 눈빛은 10년 전 코트 위에서의 승리의 시간, 패배의 시간을 차례로 떠오르게 하고 거슬러 올라가 연습경기 때의 첫 만남까지도 떠올리게 했다.
“결국 이렇게 만난 것도 뭔가 운명 같지 않아?”
아, 결국 얼굴에 곤란한 기색을 흘려버렸다. 하지만 그런 사와무라의 얼굴을 본 오이카와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가볍게 사와무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미처 뒤로 물러서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다가와 사와무라의 앞에 가까이 섰다. 꼭 경기 시작 전에 악수를 했던, 그 정도의 거리였다. 조금 더 가까워진 오이카와는 어쩐지 조금 더 자란 느낌이었다. 하긴 10년의 세월이니 더 자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옅은 샤워코롱냄새, 한들거리는 가벼운 내음에 사와무라는 수십번이고 들여다 보았던 기획서를 떠올렸다.
ㅡM사 옴므라인 향수 광고 컨셉 :: 내 남자친구의 향기
어지러운 머리 속을 떨치려 애써 입술을 물었다. 어설프게 웃으며 사와무라는 입술을 달싹였다.
“운명이라니, 오이카와 은근히 로맨틱하네.”
“칭찬이지?”
“그럼.”
애써 사와무라는 업무용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어쨌든 귀중한 광고 모델인 오이카와의 신경을 거슬러서 좋을 것은 없었다. 능숙하게 웃음 짓는 사와무라를 지긋이 보던 오이카와가 손을 뻗어 사와무라의 뺨에 가만히 대어왔다. 사와무라는 한뼘은 더 차이나는 오이이카와의 눈을 올려다 본채였다. 무겁고 더욱 짙어진 오이카와의 눈은 뚜렷하게 사와무라를 향했다. 숨쉬듯 조용하게 오이카와는 옅은 미소를 짓고 사와무라의 뺨을 엄지로 훑었다.
“눈썹, 묻었어.”
“......어, 어. 고마워.”
“일하러 가야할텐데 괜히 시간 뺏은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따 봐.”
뺨에서 떼어낸 손을 내려 사와무라의 어깨를 짚은 오이카와가 가볍게 툭툭 두드리고는 사와무라를 스쳐지나갔다. 타박타박 바닥과 스치는 오이카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사와무라는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이렇다 할 인연도 없던 카라스노와 아오바죠사이의 끈질겼던 시합들, 그리고 배구를 그만 둔 사와무라와 배구로 일본의 정상에 우뚝 선 오이카와의 만남.
어차피 운명이란 없어. 운명적이라는 해석은 있지만.
사와무라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려 제 뺨을 만지작 거렸다. 입술을 꾹 깨물며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뺨을 다급히 손바닥으로 가렸다. 오이카와가 만진 곳에는 옅은 샤워코롱냄새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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