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다이 60분 전력
쿠로오 테츠로 X 사와무라 다이치
아 망했다. 사와무라는 현관에서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멀쩡하던 신발끈이 난데 없이 왜 끊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새 신발끈을 끼우는 것보다 다른 신발을 꺼내 신는 것을 선택했다. 영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늦는 것 보다 나았다. 후다닥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달음박질 쳤다. 이미 시간이 없었다.
근데 이거 너무 한거 아니냐고. 사와무라는 급하게 패스를 개찰구에 찍으며 나섰다. 전철 사고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연착, 겨우 도착한 전철은 만원 그 자체. 겨우 몸을 구겨 넣었더니 치한으로 오해받질 않나 누가 불쾌하게 쓰다듬어 오질 않나. 아침부터 부산스레 꺼내입었던 옷은 엉망으로 구겨졌고 머리도 제법 흐트러졌다. 후, 한숨을 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니 결국 지각이었다. 부랴부랴 약속장소인 출구로 나갔더니 이미 입술이 이만큼 튀어나온 쿠로오가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였다.
“다-이-치이-”
“미안. 늦으려고 늦은 건 아닌데.”
“연락은 해줄 수 있는거 아냐?”
그래, 그러려고 했지. 근데 전철에서 손을 쓸 수가 없더라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여자가 엄청 불쾌하게 쳐다보질 않나...라는 변명을 하기에도 사와무라는 충분히 지쳤다. 결국 한숨과 함께 미안, 하고 짧게 덧붙이자 불퉁하게 입술을 내민 쿠로오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은 채 어깨로 사와무라를 툭툭 친다.
“밥 사.”
“안그래도 밥사러 온거잖아.”
얼마 전 있었던 교양 과제가 어려워 골머리를 썩을 때 쯤 쿠로오가 이쪽 전공이었던 걸 떠올렸다. 꽤나 거들먹 거리면서 이 정도 쯤이야 1학년 때 마스터 한거라며 콧대가 이만큼 올라간 쿠로오에게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기분이야 어쨌든 고마우니까 밥 한번 사마 얘기를 했고 그 약속이 바로 오늘이었다. 자기가 먼저 제안한 약속이니까 안 지킬 수도 없고, 다만 기분 좋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집을 나설 때 부터 영 일진이 꼬인다.
“비싼거 먹을래.”
“맘대로 하세요.”
어떻게든 되어버려라 생각했다. 쿠로오가 그 큰 덩치로 어울리지도 않게 나 겁나 삐졌음 흥흥 하는 포스를 풍기며 불퉁하게 걷는 걸 달래줄 기력도 없었다. 급작스러운 피로가 몰려와 어깨에 걸친 가방을 새삼 추스려 맸다. 디저트까지 다 얻어 먹어 버릴테닷, 쓸데 없는 의욕이 넘치는 쿠로오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래 비싸봤자 뭐 스테이크 정도겠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 사와무라는 안일했던 그런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다. 운동했던 과거를 너무나도 우습게 여겼다. 고급스러운 메뉴판을 짚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쿠로오의 주문을 들으며 사와무라는 지금 지갑에 든 돈이 얼마였더라,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미친, 나 그러고 보니 현금도 없어. 어제 집에 들어오는 길에 지갑에 든 현금으로 장을 봤던 걸 떠올렸다. 통장에 잔고가 얼마였지? 나 지난 달 아르바이트비 들어왔나? 오늘이 며칠이지? 눈동자가 떨렸다. 전채부터 메인요리까지 길고긴 주문을 마친 쿠로오가 메뉴판을 덮으며 묻는다.
“넌 뭐먹을래?”
미안 별로 입맛이 없다. 사와무라는 대충 메인 요리 파트에서 아무거나 짚었다. 상냥한 태도의 직원이 공손하게 사와무라가 짚은 메뉴를 확인하고 주문 확인을 한다. 듣도보도 못한 메뉴들의 향연이었다.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 사와무라에겐 죄다 생경한 이름의 메뉴였다. 하, 될대로 되버려라. 고급스러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요즘 뭐해? 방학하고.”
“아르바이트하고 그러지 뭐.”
“집엔 안가?”
“어차피 집세도 나가고,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서 도쿄에 있으려고.”
금세 세팅 된 세련된 샐러드 풀쪼가리를 포크로 쿡쿡 찍은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심드렁했다. 쿠로오는 능숙하게 나이프를 사용해 전채 빵에 버터를 바른다. 하는 행동은 아주 능구렁이 백만마리 잡아드신 아저씨 같은 쿠로오는 이런면에서 은근히 테이블 매너가 좋다. 다나카가 말하던 시티보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아, 나 다음주에 후배들 보러 갈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내가 왜.”
“같이 못 갈건 또 뭔데.”
그렇게 말하면 또 그건 그렇지. 흠, 딱히 할말을 찾지 못한 사와무라가 입술을 한일자로 무는데 깔끔하게 빵조각을 입안에 집어넣은 쿠로오가 경박스럽지 않게, 하지만 경쾌하게 빵을 씹는다. 깔끔하면서도 맛있게 먹어치우는 모습에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켄마도 너 보고 싶어해.”
“그거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잖아.”
“들켰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에 같이 웃어버렸다. 아침부터 끊어져 짜증나게 굴었던 신발끈도 불쾌한 만원 전철도 대학생의 얄팍한 지갑사정 따윈 상관 하지 않는 고급 레스토랑도 지금은 잠시 잊었다. 향 좋은 음식들이 줄지어 나오고 생각없던 위장이 요동쳤다. 쿠로오는 음식을 내어오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감사합니다, 하고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직원들이 음식을 놓기 편하게 테이블의 식기를 정리하며 맛있는 음식들을 사와무라가 먹기 편한 위치에 놓는다.
“여기 이거 맛있더라. 먹어봐.”
복잡하게 놓인 식기를 집어들며 쿠로오가 권한다. 확실히 사와무라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어차피 털릴 지갑, 맛있게 먹어버리자. 한결 기분이 가벼워진 사와무라가 포크를 집어들었다. 식사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능글맞은 쿠로오는 화술에 능했고 적당히 사람 속 긁어놓으면서도 얘기하고 나면 마음은 편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서비스도 좋았다. 깔끔한 후식까지 나오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장난스럽게 대화를 하고 나니 쿠로오가 일어서며 가방이며 겉옷을 집어들었다.
아 맞다 계산. 음식이고 분위기에 취해서 실컷 웃고 떠들었더니 갑자기 등골이 싸했다. 카드가 있던가 얼마나 나오려나 내 통장 코노마마 죽노까요. 사와무라가 경직된 움직임으로 옷을 집어들어 입고 가방을 집어들었다.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먼저 나서는 쿠로오의 뒤를 따랐다.
“두분 식사하셔서 합계 일만 오천 사백 팔십엔 입니다.”
나긋하게 웃으며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사와무라는 무거운 손놀림으로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지갑이 열리는 지퍼소리보다 이만엔 받았습니다, 하는 나긋한 목소리가 더 빨랐다.
“어? 야 내가.”
“됐어.”
거스름돈 천, 이천, 삼천, 사천엔 하고 오백 이십엔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거스름돈을 받아든 쿠로오가 가자, 하고 문을 열고 나선다. 얼떨떨한 얼굴로 허둥지둥 쿠로오를 따라나서는 사와무라의 뒤로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하고 하이톤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오늘 내가 사기로 했잖아.”
“응 그랬지.”
“근데 왜 니가 계산하냐.”
“그냥.”
아 잘먹었다, 하고 배를 통통 두드리는 쿠로오를 확 잡아 채며 사와무라가 똑바로 얼굴을 마주한다. 납득이 안된다는 사와무라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쿠로오가 슬쩍 미소짓는다.
“내가 밥 샀잖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사기로 했던 거였고.”
“그러니까 고맙잖아?”
“아니 그러니까.”
“고마우면 영화 보여줘.”
어? 얼떨떨한 사와무라의 얼굴에 쿠로오가 사와무라의 손을 덥썩 잡는다. 어어? 붙들린 손이 당겨져 쿠로오의 뒤를 따른다. 요즘 재밌는거 많더라, 아 팝콘도 니가 사라? 개구지게 웃은 쿠로오가 영문 파악을 못한 사와무라를 끌어당겨 옆에 세우고 걷는다. 손은 여전히 꼭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표도 팝콘도 결국 쿠로가 샀다는 이야기 ^.^)r
훗날 이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결국 그게 다 개수작 부렸던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 다이치.
예쁘게 연애하는 쿠로다이도 좋지만 사귀기 전의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즐거운 쿠로다이도 좋아요.
'쿠로다이 > 전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다이 전력60분 :: 코타츠 (0) | 2016.02.27 |
---|---|
쿠로다이 전력60분 :: 수갑 (0) | 2016.02.20 |
쿠로다이 전력60분 :: 발렌타인 데이 (0) | 2016.02.13 |
쿠로다이 전력60분 :: 매화 (0) | 2016.02.06 |
쿠로다이 전력60분 :: 알고있어 (0) | 2016.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