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다이 60분 전력
쿠로오 테츠로 X 사와무라 다이치
늘어져서 시원한 다다미 위에서 뒹굴, 몸을 뒤척였다.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회전 모드로 돌려 놓은 선풍기가 가끔 땀에 척척히 절은 몸을 훑고 지나갔다. 더워, 하고 불평처럼 내뱉었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
일어날 힘도 없어서 응, 하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타박타박 다다미위를 걸어 온 다이치가 웃으며 옆에 앉으며 부스럭, 비닐 봉지를 내려두었다. 가까이 다가온 다이치의 몸에서 뜨거운 여름의 냄새가 났다.
“아이스크림 사왔어 먹어.”
“다이치이~”
“넌 어째 나보다 더 더위를 더 많이 타는 거 같다?”
다이치는 웃으며 봉지를 뒤적여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내 뺨에 대어준다. 차가운 기운에 표정이 조금 바보같이 풀렸다. 부스럭부스럭 봉지를 뜯어 아이스바를 문 다이치의 얼굴이 조금 느긋하게 기분 좋게 풀린다. 아닌 것 처럼 굴면서 역시 도쿄의 여름은 견디기 힘든가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안, 흔히 말하는 부랄친구였다. 엄마끼리도 친하고 아빠들끼리도 친하고 뭐 그런거. 코찔찔이 어린애 때 부터 같이 싸돌아 다녔으니 그냥 알거 다 알고 그런 사이. 중간에 잠깐 다이치네 가족이 미야기로 이사가긴 했지만 대학교는 다시 도쿄에서 같이 다니게 됐다. 자연스레 같이 자취하게 되고 뭐 그렇게 된거다. 그러다 보니 뭐, 눈 맞고 입맞고 배맞고 했지.
“더워.”
“전기세 나와 테츠.”
“알아아.”
쭈쭈바를 입에 물고 늘어진 목소리를 하니 다이치가 웃으며 땀으로 얼룩덜룩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다. 시원한 손끝이 기분 좋아 눈을 감았다. 다이치랑은 그럭저럭 좋은 사이가 됐다. 어렸을 때 부터 알았으니 서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그러다 보니 사귀고 나서도 잘 지냈다. 다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우정이냐 사랑이냐 뭐 그런 거에서 조금 고민하긴 했었지만. 슬그머니 눈을 뜨니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내려다보는 다이치의 눈이 사랑스러웠다. 더위에 살짝 풀린 눈이 말갛게 웃으며 아이스바 막대기를 물고 있었다. 으, 지금 나 더운거 여름 때문에 그런거 아닌거 같은데.
“있잖아.”
손을 들어 입술에 물린 막대기를 빼내자 다이치가 아, 작게 웃는다. 아이스크림 때문에 차갑게 식은 입술이 가볍게 내려와 맞붙는다. 쪼옥, 당긴 입술이 달았다. 쪼옥쪼옥 가볍게 붙은 입술 장난스럽게 헤집다가 다이치를 당겨 눕히곤 올라탔다.
“테츠?”
“응.”
“너 덥다고 하지 않았어?”
어이 없는 듯 푸흐흐 웃는다. 어 그랬지.
“그래서 벗으려고.”
입고 있던 티를 단숨에 벗어던졌더니 다이치가 아 하지마~ 하고 장난스럽게 발을 구른다. 조금 끈적이는 살결이 열기를 머금고 달라붙었다. 웃으며 다이치는 내 뺨을 쥐고 입술을 맞춰 온다.
어렸을 때 부터 남자애 둘이 놀았으니 동네가 조용할 새가 없었다. 티비에 나오는 히어로물을 보고 따라한답시고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뛰어다니질 않나, 물총에 장난감 총에 장난을 꽤나 치고 놀았더랬다. 그렇게 놀 수 있던 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현직경찰이셨고 그에 대한 동경심이 컸기에 어렸을 때 부터 유난히 히어로물에 더 심취했을지도 모르겠다. 동네를 뒤집어 놓고 높은 곳을 뛰어다니고 활기차게 자랐고 항상 그 옆엔 다이치가 있었다. 언제였던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 아마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을려나? 당시 중학생으로 레벨업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던 때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다이치와 놀러가기로 약속을 하고 집에서 나오던 길, 신발장 위에 놓인 아버지의 수갑을 본 순간 호기심이 발동해 몰래 주머니에 쑤셔넣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다.
“다이치, 이거 진짜 수갑이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아빠꺼야 아빠꺼.”
다이치와의 아지트에서 숨어 자랑스럽게 빛나는 수갑을 내놓았을 때 다이치는 불안한 얼굴을 했다. 너 이거 가지고 와도 돼? 음 구경만 하고 다시 갖다두면 되지 뭐. 대수롭지 않은 내 말에도 다이치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저씨 화내실걸.”
“괜찮아, 아빠 지금 낮잠 주무시니까 꿈에도 모르실 걸?”
에휴,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다이치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몇번이고 일렀다. 혼난다고 몇번이나 거듭해서 말하면서도 다이치는 신기한긴 신기한지 슬쩍 내 어깨너머로 수갑을 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 더 기고만장해 진건지 나는 다이치의 손목을 잡아채 수갑을 들이밀었다.
“절도죄로 체포한다! 사와무라 다이치!”
“뭐야?”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하여튼 자세한건 서에서 얘기하지.”
“내가 뭘 훔쳤다고.”
“음.. 내 마음?”
허, 어이 없는 비웃음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아씨, 쪽팔려. 어제 엄마가 보던 드라마 대사가 여기서 튀어나올 건 뭐람. 민망하니 괜히 단단하게 다이치의 손목을 잡아채고는 수갑을 들이 밀었다. 너 체포할거야 너! 하고 수갑을 들이 밀었더니 의외로 가볍게 열린 수갑이 턱, 하고 다이치의 손목에 채워졌다.
“응?”
“어?”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어? 당황한 내 얼굴과 그에 못지 않게 어이 없는 얼굴이 된 다이치가 야! 하고 빽 소리를 지른다. 당황해서 덜컹덜컹 수갑을 흔들어 봤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열릴리가 없었다. 번쩍, 하고 광을 내는 은색 수갑이 그제야 진짜로 느껴졌다. 식은땀이 주르륵 솟았다. 난 이제 아빠한테 죽었다.
“야 이거 어떡할거야.”
“그, 그러게.”
“아저씨한테 가자.”
“안 돼! 나 죽어!”
우는 소리를 냈더니 다이치가 짜증스럽게 주저 앉았다.
“테츠 너 진짜, 나보고 뭐 어쩌라고. 경찰서 갈래?”
“야 안돼! 나 진짜 죽는다고!”
“그럼 나 계속 이러고 있어?”
다이치가 손목을 내밀자 덜렁, 은색 수갑이 쇳소리를 내며 찰랑거렸다. 으, 어쩌지.
“아씨, 너 이리와.”
난데 없이 손목이 잡아 채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내 손목에 차가운 금속이 와닿는 느낌이 들고 곧 달칵, 내 손목에도 수갑이 채워졌다.
“야!!”
“이제 내 마음 좀 알겠냐?”
승자의 얼굴을 한 다이치가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어이가 없어 멍청하게 올려다보는데 다이치가 수갑 밑으로 내 손을 끌어 쥔다.
“이러면 너 도망 못갈테니까.”
“원래 도망 안갈 거였거든.”
“내가 같이가줄테니까 걱정하지마.”
다이치가 싱긋 웃는다. 꿈뻑, 눈을 깜빡이는데 다이치는 든든한 얼굴로 그런다.
“아저씨 나 좋아하시잖아. 내가 대신 혼나 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야아~”
“내가 그랬다고 하면 덜 혼내실거야.”
“너 진짜.. 나보다 키도 작으면서 그렇게 형아같이 굴거야?”
“키 얘기 하지마라.”
씨근대며 다이치가 내 손을 잡아채고는 앞장선다. 손목에서 무겁게 덜렁대는 수갑의 감촉에 쭈뼛 소름이 끼치긴 했지만 그 아래서 맞잡은 손의 온기는 따뜻했다. 나를 그렇게 데리고 앞장서는 다이치의 등을 보면서 나는 그날 좀 두근거렸던 것 같다. 아마 그날이 우정에서 호감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지만.
“테츠.”
쪼옥, 입술이 가볍게 달라붙는다. 어느새 뜨거워진 손길이 내 뺨을 가만히 매만진다.
“무슨 생각해?”
“아, 그냥.”
옛날 생각. 하고 작게 덧붙이자 다이치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 된다. 들려 있던 다리를 내 허리에 얽으며 단단하게 당겨 몸을 밀착시킨다.
“이 더운 날 내가 이렇게 봉사해주고 있는데 딴 생각 할거야?”
“미안 미안.”
푸흐흐 웃으며 팔 안에 가둔 다이치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니 불퉁한 입술 모양과는 반대로 눈이 사르륵 감겨 기분 좋은 모양을 한다. 발갛게 열기가 몰린 뺨에 입을 맞춰주고 다이치를 고쳐안고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앓듯 기분 좋은 신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다이치, 역시 더운데 우리 에어컨 좀...”
“땀빼고 그냥 샤워하자. 지난 달에 엄청 요금 많이 나왔어.”
흐, 울상을 하자 다이치가 쪼듯 가볍게 입술을 부딪혀 온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이 짠돌이.
'쿠로다이 > 전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다이 전력60분 :: 장보기 (0) | 2016.03.05 |
---|---|
쿠로다이 전력60분 :: 코타츠 (0) | 2016.02.27 |
쿠로다이 전력60분 :: 발렌타인 데이 (0) | 2016.02.13 |
쿠로다이 전력60분 :: 매화 (0) | 2016.02.06 |
쿠로다이 전력 60분 :: 감사, 고마운 마음 (0) | 201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