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다이 | A5 36p | R-19 | 3,500원
2017년 10월 28일 테루다이 교류회 발매 | 판매 종료
피크 시간이 조금 지났건만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즐거운 수다소리와 간혹 가볍게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심심찮게 들려왔다. 젓가락 끝이 달칵, 식기에 부딪혔다. 그 서툰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시끄러운 와중에도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에겐 충분히 들린 모양이었다. 제가 쥐고 있는 밥그릇에 온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테루시마가 슬금, 고개를 들었다.
“…여기 맛, 맛있네요.”
당연하겠지. 예약이 몇 달 전부터 차있는 인기 있는 식당의 예약을 겨우 해냈다고 의기양양하게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건 다름 아닌 테루시마 본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 사와무라가 수저를 들 때 마다 생색이란 생색은 다 냈을 텐데 시끌벅적한 공간과 이질적일 정도로 지금의 테루시마는 조용했다. 사와무라는 테루시마의 어색한 말에 응, 그렇네 하고 짧은 대답을 던졌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사람을 감싼 공기에서 진한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마치 다른 공간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처럼. 꿀꺽, 밥알을 삼키는 소리조차 오늘따라 유난히 요란해 상대방에게 곧장 들킬 것 같았다.
오늘의 식사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테루시마는 언제나처럼 밝고 조금은 높은, 잔뜩 즐거움이 묻어있는 목소리였고 사와무라 또한 간만의 데이트에 조금 들뜬 모습이었다. 메뉴를 고르고, 그 동안 별 일이 없었냐는 말을 시작으로 전화와 문자로 못 나눈 이야기를 할 때 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달칵, 또 서툴게 젓가락 끝이 그릇에 닿아 소리를 냈다.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 같아 사와무라는 저도 모르게 꼴깍 침을 삼켰다. 그릇에 고개를 콕 처박고 하얀 밥알덩이를 입안으로 왁왁 밀어 넣던 테루시마의 젓가락질이 잠깐 멈추었다가 느리게 다시 움직였다. 그릇으로 반쯤 가려진 입꼬리가 씰룩,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사와무라는 그런 테루시마의 얼굴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답에서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식당을 나서니 주변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해가 점점 짧아지고 옷은 점점 길어지고 두꺼워졌다. 한껏 멋을 부린 테루시마의 옷은 서늘해진 밤공기를 이기기엔 꽤 얇아 보였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하고 싶은 거야 많죠. 오랜만에 만났는데요.”
“그래?”
“왜요?”
“별일 없으면 집에 빨리 들어갈까 싶어서.”
“…….”
평소엔 올 일이 거의 없는 낯선 동네에서 집까지 가는 지하철 노선을 머릿속으로 빙그르르 그려보던 사와무라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테루시마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시뻘개진 테루시마가 눈을 꿈뻑이며 마주 본다. 아, 사와무라의 귀 끝이 붉게 물든다.
“너, 너 추워보여서……!”
“괜찮, 괜찮아요 저는!”
“그, 그래.”
뭐가 괜찮다는 건지,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긴 하는 걸까. 아니, 당장 저는 뭐가 알겠다는 걸까. 머리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도로에서 빠앙- 하고 울린 클락션 소리가 날카롭게 머릿속을 할퀴고 흩뜨린다. 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한 마냥 어지러운 기분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들어차 있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뒤이어 우르르 탄 양복무리에 묻어있는 진한 회식의 냄새가 함께 밀려들었다.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간간히 팔락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 따위의 잡음들이 전철의 소음에 손쉽게 묻혀버린다. 휭,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전철이 스쳐지나가며 내는 묵직한 바람소리에 사와무라는 꼴깍, 침 삼키는 소리를 묻어보았다. 침묵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꺼내는 이야기들은 딱딱했다.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려 맞장구를 치고 제 머릿속에서 들어있는 잡다한 이야기를 왁왁 끄집어내 보아도 대화가 끊기는 순간이 어색해 견딜 수가 없었다. 후, 사와무라는 테루시마가 잠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동안 보이지 않게 목구멍 안쪽에 뭉쳐있던 숨을 내쉬었다.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쌀쌀한 밤공기에 쫓겨 편의점으로 들어서자 맛있는 온기에 노곤하게 기분이 풀어졌다. 진열대에 펼쳐진 간식거리를 보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깐 통화 좀 할게, 너 먹고 싶은 걸로 골라.”
목구멍 안쪽이 꺼끌거릴 때 쯤 타이밍 좋게 걸려온 전화에 조금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자리를 옮겨 통화를 하면서도 시선은 내내 테루시마를 따라다녔다. 음료 냉장고 앞에서 고민하며 맥주를 두어 캔 고르고 지나가듯 사와무라가 좋아한다 말했던 과자를 바구니에 담는다. 새로 나온 한정판 맥주를 집어 들고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결국 바구니로 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진열대 너머로 그 모습이 감춰지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어 사와무라는 그제야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집중을 했다.
“통화 끝났어요?”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그 새 계산을 마쳤는지 테루시마의 손에는 묵직한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내가 사려고 했는데.”
“아뇨, 제가 사도 돼요!”
화들짝 놀란 테루시마의 반응에 외려 놀란 것은 사와무라였다. 당황한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저도 모르게 테루시마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로 향했다. 반쯤 비치는 비닐봉지 안에 든 작은 상자의 형태가 어스름 눈에 들어올 때 쯤 테루시마가 급히 등 뒤로 손을 감추었다. 어쩐지 훔쳐 본 기분이라 사와무라는 방어적으로 웃는 얼굴을 했다.
그저 친하기만 한 두 사람 사이에서 풍기던 분위기가 변하고 두 사람의 관계 또한 변했다. 테루시마는 관계의 변화를 원했고 사와무라는 그런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연인이라는 관계에 걸맞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감정을 공유했다. 데이트란 명목 하에 익숙한 경험을 나누어 주거나, 혹은 새로운 경험을 함께 했다. 이십대 초반 남자애 둘이서 하는 연애치고는 어쩐지 소꿉장난 같았으나 저도, 테루시마도 이런 연애가 퍽 마음에 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서벅서벅 발길에 모래알이 차인다. 대화는 드문드문 이어졌다. 차가워지는 공기에 닿은 뺨은 서늘했지만 보이지 않게 숨겨둔 손바닥은 이미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테루시마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싹싹하게 굴어 오히려 사와무라의 어머니가 먼저 테루시마의 안부를 물어 몇 번이고 초대하기도 했다. 게다가 저 또한 테루시마의 자취방에 놀러가 본 적도 있으니 갑작스러운 초대에 크게 신경 쓰일 것도 없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주머니에 잘 넣어둔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평소엔 야무지면서도 이상한데서 나사 빠진 마냥 구는 사와무라에게 테루시마가 선물한, 열쇠보다 훨씬 큰 키홀더가 찰랑찰랑 소리를 냈다.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여는 동안 긴장한 건지 뒤에서 바스락바스락, 봉투 손잡이를 만지는 소리만 잘게 들려온다.
“들어와.”
혹시 제 목소리가 긴장으로 떨리진 않았는지 애써 어색한 웃음으로 감췄다. 불 꺼진 집안은 훈기라곤 없이 서늘한 냄새가 났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 안 해도 돼. 노랗게 염색한 머리통이 빠른 속도로 꾸벅 숙여지는 걸 보고 사와무라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까 말했잖아, 오늘 부모님 여행 가셔서 안 오신다고.”
빈집을 향해 90도로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는 테루시마를 보며 웃다가 들어 올린 얼굴과 마주했다. 상기된 얼굴이 제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로 사와무라를 바라본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머릿속이 텅 비는 기분이었다.
이 뒤로 별 내용 없이 XX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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