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다이 #테루다이 짧은 조각글입니다!
평소에 써본 적 없던 다이른 커플 단문 연성이 해보고 싶어서 간단한 리퀘 받아 짧게 써보았어요!
#이거다 싶은 히로다이
길을 걷다가 팔을 붙들렸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어정쩡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코에 반쯤 걸린 단단한 뿔테안경이 얼굴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타이에 셔츠 단추는 하나 풀어져 있어 윗가슴팍에 느슨하게 주름이 잡혔다. 제 머릿속을 뒤져보지만 역시 제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도시에서 사와무라를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누, 누구세요…….
“이거다.”
사와무라의 말이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상대방에게서 튀어나온 말에 달싹이던 입술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제 어깨를 쥔 손을 우선 떼어내려 했지만 제법 단단한 손이 사와무라의 팔을 고쳐 쥐었다.
“아, 아파요.”
기어들어가는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남자의 손에 조금 힘이 풀린다. 사와무라는 조금 움츠러든 몸으로 슬쩍 제 앞의 남자를 훑어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말랑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표정이 사와무라를 응시한다. 나, 어디 새우 잡이 배로 끌려가는 거 아니야? 야쿠자 조직에 끌려가서 얻어맞고 가진 거 다 털린 채 도쿄 앞바다에 토막 난 시체로 떠오른다던지?! 불길한 뉴스 헤드라인을 촤르륵 떠올리던 사와무라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진다. 험악한 얼굴의 남자를 계속 보고 있자니 안 좋은 생각을 도저히 거둘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어디 들어가 있는 데는 있어?”
“네?”
“어디 소속된 데는 있냐구요.”
소속? 조직?!
“저,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래요? 잘 됐네.”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자켓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그 행동에 지레 겁먹어 움찔 뒤로 물러서는 팔을 단단하게 고쳐 쥔 남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을 꺼낸다.
“저 그렇게 대단히 쓸모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남자가 종잇조각을 내미는 손길이 느릿하게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머니 역시 도쿄는 무서운 도시였어요. 그냥 아버지 말 듣고 미야기에서 농사나 지을 걸……!
“사와무라.”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고개를 들자 지친 얼굴의 쿠로카와가 사와무라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뭐하고 있었어?”
“아, 인터뷰지 쓰고 있었어요.”
반듯하게 세팅 된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꽂아둔 집게 핀을 빼며 사와무라가 싱긋 웃음 지었다. 빼곡하고 단정하게 답변이 가득한 인터뷰 용지에는 데뷔 계기를 묻는 칸에 쓰다만 글씨가 문장을 채 맺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길거리 캐스팅이라고는 예상도 못했었다. 도쿄에 온지 얼마 안 된지라 사기꾼인 줄 알았지 뭔가…… 아무리 그래도 사기꾼은 너무 하지 않아?”
“야쿠자라고 안 쓴 게 어디에요.”
사와무라가 쓰던 인터뷰 용지를 차근차근 읽어 내리던 쿠로카와가 미간을 좁히고 볼멘소리를 낸다. 사와무라는 그저 푸스스 미소 지을 뿐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신예배우 사와무라 다이치. 각종 언론에서 사와무라를 일컫는 수식어는 제 입으로 말하긴 어쩐지 쑥스러웠으나 부정하기엔 저를 부르는 매체와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때 쿠로카와씨 얼굴 무서웠다구요.”
“캐스팅 실패하면 곧 짤릴 마당이었으니까. 무섭다고 하지 말고 필사적이었다고 하자.”
“안한다고 하면 진짜 새우 잡이 배에 팔아버릴 거 같은 얼굴이었다니까요.”
내가 왜. 건조하지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짧게 답한 쿠로카와가 가방에서 스케줄을 정리한 수첩과 영양제가 들어 있는 작은 케이스를 꺼낸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대기실 테이블에 이것저것 올려 둔 쿠로카와는 이미 알고 있는 스케줄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다. 손에 쥔 펜을 고쳐 쥐곤 인터뷰지를 마저 채워나가던 사와무라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어쩔 수 없었어. 진짜 이거다 싶었거든. 놓치면 평생 후회할거 같았어."
“그러다가 제가 잘 안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뭐, 잘 안 돼서 짤렸어도, 연애는 성공했겠지?”
마주한 얼굴이 드물게 짓궂은 모양이었다. 쿠로카와의 말에 또르륵, 눈을 굴려 인터뷰지로 시선을 돌린 사와무라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놈의 촉이 맨날 게으름 부리는데 말이지, 한번 서면 정확하더라고."
"…저였다 싶었어요?"
"그랬지."
그 촉은 연예인으로서? 혹은 연인으로서?
푸슬푸슬하게 건조한 웃음이었으나 제법 부드러운 모양새였다. 평소엔 제 쪽에서 먼저 졸라도 비슷한 말도 안 해주더니 꼭 밖에서 이렇게 한방을 거하게 날리는 것이다.
“매니저가 그런 말 밖에서 해도 돼요?”
“인터뷰지 쓰던 거 마저 쓰고, 삼십분 있다가 기자님 오시기로 했으니까 그 안에 얼른 끝내.”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매니저 모드로 들어갈 필욘 없잖아요. 사와무라는 볼멘 표정을 숨기며 인터뷰지에 시선을 콕 박았다. 손에 꼭 쥔 연필 끝이 사각사각 간지러운 소릴 낸다.
- 하지만, 그 매니저님 덕분에 금세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푸슬푸슬, 사와무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이치가 힘들었던 날 먼저 꼬옥 끌어안아서 당황하는 테루시마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식탁이 그릇 하나 놓을 자리 없이 한가득 이었다. 모처럼 일찍 마친 날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배달 음식만 잔뜩 시켜먹은 터라 모처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빠진 건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던 테루시마가 제가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세팅에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단 처참하게 어질러진 개수대만큼은 제외였다. 거지같은 설거지 같으니라고. 의욕이 넘치다 보니 일어난 대참사에 테루시마는 이마를 짚었다. 다이치상 오기 전에 얼른 치워야지. 혼자 살았으면 설거지 따위야 얼마든지 미루면 되지만 두 사람의 러브하우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 테루시마는 비장한 얼굴로 고무장갑을 꼈다.
수북하게 쌓인 그릇과 집기를 닦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언젠가 쇼핑을 함께 나갔다가 사와무라가 지나가는 말로 좋다고 했던 노래였다. 달칵달칵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중간에 삐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헉, 왔어요? 빨리 왔네.”
“응.”
지친 얼굴로 구두를 벗은 사와무라가 테루시마의 인사에 짧게 대답했다. 습관처럼 사와무라에게로 달려가려던 테루시마는 제가 설거지 중인 것을 퍼뜩 깨달았다. 손끝을 쥐고 잡아 당겨 보지만 젖은 고무장갑은 쭈욱쭈욱 끈질기게 늘어나기만 할 뿐 손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바닥에 물 떨어지잖아. 나오지 마.”
피식, 가볍게 웃은 사와무라가 목을 죄는 넥타이를 가볍게 당겨 느슨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루 일과 중 제일 중요한 마중 인사를 못하다니! 억울함에 울상이 된 테루시마를 알면서도 사와무라는 대수롭잖게 안으로 들어와 식탁 의자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둔다.
“이거 다 혼자 준비한 거야?”
“오늘 일찍 끝나서 간만에 솜씨 좀 부려봤죠. 시간 모자랄 거 같아서 몇 개는 마트에서 사온 거지만.”
달그락, 거품 묻은 그릇을 한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아두며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른 끝내버리고 평소처럼 퇴근한 사와무라를 와락 끌어안고 오늘 하루는 어땠느냐고 나는 오늘 무얼 했다고 재잘거리고 싶었다. 부산스럽던 손길에 조금 속도가 붙고 식탁 의자 등받이에 팔을 기대고 몸을 반쯤 기대고 있던 사와무라가 물끄러미 테루시마의 등을 바라본다.
“…….”
오늘 하루 어땠어요? 저는요, 아까 학교에서요…… 하려고 했던 말은 한가득 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사르륵 녹아 흩어졌다. 말없이 가까이 다가온 사와무라가 테루시마의 등에 가볍게 이마를 기댔다. 쏴아아, 물소리만 두 사람 주변을 채웠다.
“무, 물 튀어요….”
“괜찮아.”
닿은 이마가 가볍게 부벼지고 사와무라의 손이 테루시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둥지둥 수도를 잠그자 칼로 베어낸 듯 삽시간에 물소리가 끊어진다. 등을 끌어안은 사와무라가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무겁지 않게 전해지는 무게가 어쩐지 낯설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이상한 박자로 심장이 쿵덕거린다.
“…좋은 냄새.”
“아까 향수 시향 했는데 그 때 묻었나 봐요. 마음에 들어요?”
“응.”
내일 당장 사야겠다 마음먹고 낮에 보았던 향수병 디자인을 가물가물 떠올려보았다. 사와무라는 이마를, 코끝을 차분히 부비며 깊게 몸을 묻어온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냥… 좀 피곤하네.”
한숨같이 내뱉은 숨결에 지친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드물게, 혹은 처음 듣는 듯한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테루시마의 시선이 어설프게 흔들렸다. 똑, 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고른 숨소리 사이사이에 섞였다. 어지간해선 힘든 내색이라곤 보이지 않는 사와무라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나 싶어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젖어서 찰싹 달라붙은 고무장갑을 서툴게 벗어낸 테루시마가 손을 씻고 몸을 비스듬하게 뒤로 돌렸다.
그러려고 했다. 사와무라가 얌전히 끌어안은 허리를 놓아주었다면. 테루시마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끌어안은 팔에 단단히 힘을 준 사와무라가 등에 얼굴을 꾹 묻는다.
“그냥, 이렇게 잠시 있자.”
“아니, 다이치상, 그….”
“…유우지.”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했다. 펑, 얼굴이 터져버린 채 뻣뻣하게 굳은 몸이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린다.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곤, 엄청난 폭탄을 던져놓곤 사와무라는 말없이 끌어안은 등을 고쳐 안는다.
“가끔은 내가 먼저 안아주고 싶어서.”
“그, 다이치상…….”
“다녀왔어.”
똑, 똑, 물방울이 느릿하게 떨어지고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지친 기색이었던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조금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제 착각인건지. 부끄러워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지만 꽉 끌어안긴 몸은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애꿎은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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