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나무토막의 탑이 와르르 넘어졌다. 오예! 희열에 찬 환호 소리와 으아악, 절망적인 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오이카와 너 진짜 못한다. 몇 번째야?”
“내가 못하는 게 아니고 다이쨩이 잘하는 거겠지.”
볼멘소리로 말한 오이카와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무토막을 끌어 모은다. 투덜거리며 하나씩 나무토막을 원래 모양대로 쌓는 손을 사와무라가 막는다.
“벌칙, 해야지?”
“너무하네!”
“어디서 밑장 빼기셔?”
짓궂은 얼굴이 된 사와무라에게 울상을 지은 오이카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내기는 내기, 호락호락하게 봐줄 사와무라가 아니었다.
“아까 내가 졌을 때 안 봐준 건 어디 사는 누구시더라?”
“미야기 사는 오이카와씨지.”
체념한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사와무라가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시작은 단순히 오이카와의 방 한쪽에 놓여있던 보드게임을 집어 든 것이었다. 할 거도 없는데 시간이나 떼울까 싶어 시작한 게임은 벌칙으로 무엇을 걸 것이냐로 이야기가 커져 어느새 단순히 시간 떼우기가 아닌 승부가 되어있었다. 질 때 마다 옷 하나씩 벗기, 그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벌칙에 두 사람은 잠재된 승부욕을 죄다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래가지고야 자택데이트라고 할 수나 있겠는가.
“근데 나 이거 벗으면 남은 거 팬티 밖에 없는데?”
“야, 나도 다 벗었잖아. 빨리 벗어.”
사와무라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에 팔짱을 낀다. 바지만은 죽어도 벗을 수 없다며 아래를 사수한 사와무라의 상체는 맨 몸이었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바지 정도 뭐 어떻냐며 진작에 바지를 벗어 던진 오이카와는 도톰한 맨투맨티와 팬티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제 와서 쑥스러운 건지 조금 주저하는 오이카와의 행동을 보더니 사와무라가 샐쭉하게 눈을 흘긴다.
“으아아, 못해 진짜!”
오이카와가 풀썩 침대 위로 누워버린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으아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으, 얼굴 작은 거 봐. 손바닥에 얼굴이 다 가리네. 힐끔, 오이카와를 훔쳐 본 사와무라가 흠흠 목을 가다듬는다.
“약속 했잖아. 안 지킬 거야?”
“아 잠깐만, 마음의 준비 할 시간을 줘.”
으아아, 괴로워하던 오이카와가 팔뚝으로 눈을 가린다. 저런다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뭘 저러고 있는 건지. 오이카와의 옆에 걸터앉으며 드러누워있는 몸을 내려 보았다. 소라색의 맨투맨티는 오이카와에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 아래 속옷 하나만 입은 맨다리를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아까까진 저 팬티바람의 오이카와와 마주 앉아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좋아. 나 이제 한다?”
“아, 알았어.”
“진짜 한다??”
“알았다니까.”
티의 허리춤을 잡은 오이카와가 슬쩍 끌어올린다. 과하지 않게 잘 관리 한 복근이 슬그머니 드러난다. 멈칫하는 손길에 어림없다는 듯 사와무라가 슬쩍 눈짓하자 한쪽 팔로 눈을 가리고는 한쪽 팔로 슬금슬금 옷을 끌어올린다. 옷이 천천히 끌어 올려지는 동안 탄탄한 상체가 천천히 드러난다. 가슴까지 끌어올려 단단한 가슴근육이 드러나자 장난스럽게 웃던 사와무라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진다.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요란해 혹시 오이카와에게 들릴까 하는 걱정은 이미 날아간지 오래였다. 슬금슬금 끌어올리는 오이카와의 손길을 따라 시선이 천천히 올라간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 오이카와의 몸을 보고 야릇한 기분이 된다. 팔로 단단히 눈을 가린 오이카와 덕분에 어쩐지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천천히 끌어올려지는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문득 시선이 닿은 곳엔, 반쯤 드러난 오이카와의 입술이 보였다. 싱긋,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는 얼굴에 사와무라가 덜컥 굳는다. 천천히 눈을 가린 팔을 떼어낸 오이카와와 시선이 마주친다. 조금 전까지 부끄러워하던 기색이라곤 싹 지우고 오이카와의 눈은 사와무라를 부른다. 집중해 오이카와의 위로 쏟아질 듯 기울어진 사와무라의 몸으로 오이카와의 손이 뻗는다. 그 손에 붙들려 풀썩, 사와무라의 몸이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