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다이 | B6 56p | 전연령 | 중철 | 6,000원
2018년 4월 14일 다이른 온리전 2회 발매 | 판매 중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 살기 시작한 역사에 대해서 얘기 하자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애초에 사람들은 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걸까. 함께 살기 시작한 동물들을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다가 반려동물로 부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정을 이루는 형태가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반려동물은 나의 개인적인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나아가 시간과 생활을 공유하지. 그건 달리 말해 인생을 함께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고양이 키우고 싶어.”
“너 고양이 알레르기 있잖아.”
“그러게.”
그러게라고 말하면 뭐 어쩌라는 거야. 키들키들 웃는 친구의 짓궂은 목소리를 들으며 짜증스럽게 입에 물린 빨대를 씹었다.
“신은 없는 게 분명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 있다면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면 안 되지.”
“교회에 헌금 한 번 안 내본 시끼가 어디서 신 타령 하고 있어.”
툭 튀어나온 친구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 입이 꾹 다물렸다. 하지만 사와무라는 정말이지 믿기는커녕 얼굴도 모르는 신일지라도 붙들고 원망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꿈이었던 반려동물과의 생활은 부모님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 되었다. 그러니까 대학생이 되어 독립한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알레르기라니. 신이라는 게 있다면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고양이 나오는 영화라도 보던가.”
“그런 건 애초에 다 봤다고. 영화, 만화, 책,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진작 다 마시고 얼음만 남은 유리잔을 신경질적으로 헤집었다. 그 동안 간접경험으로 기른 아가들만 해도 벌써 나라를 차렸어도 차렸을 거다. 아, 고양이만 가득한 나라라니 상상만 해도 입술 끝이 씰룩거렸다.
“그러고 보니 야마다 있잖아. 작년에 같이 교양수업 들었던 경영학과 걔.”
“응. 키 좀 작고 안경 쓴 애?”
“그런 애가 경영학과에 어디 한 둘이야?”
“걔 고양이 키우잖아.”
“그랬지.”
부러워라. 테이블 위에 심드렁하게 기대 있던 사와무라의 눈이 슬금슬금 웃음기로 가늘어졌다. 벌써 머릿속에서 꽃밭이 펼쳐진 얼굴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던 친구가 던진 다음 말은 사와무라를 벌떡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했다.
“일주일 정도랬나? 임보할 사람 구한다던데.”
*
기간은 7박 8일 정도, 마지막 날은 공항 도착하면 새벽이라서 바로 데리러 갈 순 없을 것 같아. 음식 가리는 것도 없고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아서 손은 많이 안 갈 거야. 그런 적은 거의 없긴 한데 어쩌다 임보 맡길 때도 말썽 부린 적 없었고.
워낙 자료정리를 꼼꼼하게 잘 해서 팀 과제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원래 성격이었을 줄이야. 야마다는 자칭타칭 고양이 덕후라고 불리는 사와무라의 의욕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의 고양이에 대해 빽빽이 정리한 자료를 내밀었다. 7년을 같이 지냈다고 했던가. 아이였으면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시간이겠구나. 야마다가 한참을 핸드폰을 뒤적여 내민 화면에는 새까만 덩어리가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검은 고양이네.”
“응, 그래서 맨날 사진 찍을 때마다 이래. 예뻐서 찍어봤자 이 모양이라니까.”
핸드폰 바꿔야 할까봐. 키들키들 웃는 야마다의 얼굴이 즐거워보였다. 화면을 옆으로 넘길 때 마다 검은 형체가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누워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검은 고양이구나. 화면 속 비스듬히 누운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빤히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가 샐쭉했다.
“빨리 만나고 싶다.”
“알레르기는 괜찮겠어?”
“일주일 정도면 약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약봉지가 두둑이 들어있는 가방을 가볍게 두들기며 웃었다. 갑작스러운 해외여행으로 일주일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는 야마다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와무라가 갑작스럽게 제 고양이를 맡게 해달라며 들이 닥쳤음에도 싫은 내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하긴 워낙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수업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애였다.
“근데 나한테 맡겨도 정말 괜찮겠어? 난 좋긴 하지만.”
한참 들떠 있다가 갑자기 불안한 목소리로 묻는 사와무라의 말에 야마다는 잠시 입을 다문다. 흠, 가볍게 목울대가 울리는 소리에 절로 목이 탔다. 호선을 그린 입술이 그런다. 괜찮지 않을까?
“너 고양이 좋아하는 거야 조금만 얘기해 보면 다 아는 사실이고. 어차피 알레르기 때문에 키울 수도 없으니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괜찮겠냐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할 게 아닌가 싶어. 지금은 심하지 않다고 해도 지내다 보면 알레르기가 생각보다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
“에이, 괜찮을 거야. 약도 있다니까?”
뭐, 지내보면 알겠지. 야마다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둥지둥 가방을 끌어안고 뒤를 따라 가게를 나서는 사와무라의 입술이 기대감으로 한껏 치켜 올라갔다.
*
그냥 한 말이 아닌지 야마다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코가 근질거렸다. 훌쩍,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코밑을 문질러 닦는 사와무라의 시선은 야마다의 손에 들린 이동식 케이지에 닿아 있었다. 그 사이 잠이라도 든 건지 케이지 안은 아주 조용했다. 이따금 가만히 들썩이는 등줄기가 조명을 받아 반드르 윤기가 났다.
“데려 온다고 나름대로 청소는 한다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봤자 니가 생각지도 못한데서 먼지 끌고 나올걸?”
한 아름 들고 온 용품들을 여기저기 내려 둔 야마다는 조심스럽게 내려 둔 케이지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껏 자세를 낮춘 검은 몸이 케이지 안으로 한껏 웅크린다. 뭐지, 놀랐나? 사와무라가 슬그머니 몸을 낮춰 케이지 안을 기웃거렸다,
“지금은 낯선 곳이라서 그렇지 좀 있으면 슬슬 나올 거야.”
“그래?”
“응. 낯선 곳을 무서워하는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아예 처음 가는 곳은 좀 그러더라고. 하긴 사람도 낯선 곳 가면 겁먹는데, 그렇지 않냐?”
하긴, 고개를 끄덕이는데 문을 열어 둔 케이지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워낙 순식간이라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야마다가 쿠로, 하고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창틀에 사뿐히 앉은 등이 매끈했다. 챠르르, 털에 흐르는 윤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매끈하게 뻗은 꼬리가 휙, 흔들렸다. 쿠로, 하고 다시 한 번 부르는 목소리에 작은 머리가 휙 돌려 사와무라를 바라본다.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진짜 예쁘다!”
“그치? 사진보다 더 예쁘지?”
“핸드폰 바꿔야겠네!”
으하하 웃은 야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틀에 앉은 고양이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늘씬한 몸이 사뿐하게 들린 채 냥, 하고 가볍게 운다.
“싫은가봐.”
“그건 아닐걸? 오히려 기분 좋은 거 같은데.”
사와무라의 옆까지 온 야마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야마다의 양반다리 위에 안착한 고양이는 몸을 가볍게 부비며 고르륵 거린다. 발라당 드러누워 턱을 들어 올린 고양이의 입모양이 바짝 선 ‘시옷’자를 그리고 있어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름이 쿠로?”
“응. 쿠로오(黒尾). 새까만 꼬리가 너무 예뻐서 데려왔거든.”
그 말이 단숨에 이해 될 만큼 새까만 꼬리가 정말 예뻤다. 쿠로오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제 이름이 불리자 무심한 얼굴로 그 예쁜 꼬리를 휙, 흔든다. 으, 참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간질간질 거린다.
“행복해서 죽는 거 아닐까.”
“그래서 일주일 버티겠어?”
“그러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윤기가 흐르는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니 고르릉, 작은 진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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