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 토비오 X 스가와라 코우시
두밤님의 리퀘를 받아 가볍게 쓴 조각글입니다.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티비에선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닌 듯 적당히 인기 있는 주말 낮시간의 킬링타임용으로 조금 재미 없거나 유치한 주제로 연예인들에게 이야기거리를 끌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채널 바꾸는 걸 까먹은 채 흘러나오는 티비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카게야마는 손톱을 다듬었다. 그 옆에서 함께 손톱을 다듬던 스가와라는 티비에서 나오는 쓸데 없고 유치한 주제에 홀린 듯 손동작을 멈추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유치하다 유치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주제인데 이상하게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티비에서는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 여자 탈의실을 가볼거에요. 이봐요 방송시간대 생각하고 말해요. 따위의 저질스러운 이야기부터 연예인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건설적인 이야기까지 게스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어느덧 손을 내려둔 채 티비에 집중한 스가와라를 눈치 챈 카게야마가 손에 든 버퍼를 내려놓으며 스가와라상? 하고 불러왔다.
“다시 태어난다면 카게야마의 후배로 태어나보고 싶네.”
뜬금 없는 스가와라의 말에 네? 하고 되물은 카게야마가 스가와라가 집중하고 있는 티비를 한번 쳐다봤다가 대화의 주제를 파악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엣. 그, 그렇습니까?”
“응. 선배인 카게야마 궁금하니까.”
연인이기 전에 후배였던 카게야마였다. 어렸을 때 부터 배구를 해온 카게야마는 선배인 스가와라에게 깍듯했고 스가와라는 그런 카게야마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 카게야마가 선배가 된다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카게야마가 누군가의 선배가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스가와라는 졸업을 했으니 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스가와라의 웃음섞인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다시 태어나도..”
“응?”
“다시 태어나도 저와 만나 주시는 겁니까?”
조금 불안정한 눈동자가 스가와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스가와라는 지금 자기가 들은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린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당연하잖아?”
결론을 내리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스가와라의 말에 카게야마는 조금 놀란 눈을 둥글게 떴다. 아, 조금 쑥스러워 하는 얼굴. 조금 발긋해진 귀끝과 꾹 다물어져서 삐죽거리는 입술이 귀여웠다. 카게야마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스가와라의 눈빛을 계속 마주하지 못하고 결국 살짝 피했다.
“..네.”
“에? 잠깐? 카게야마는아니야??”
“아니, 아닙, 그럴리가요!”
화들짝 놀란 카게야마가 후닥 고갤 돌려 다시 스가와라를 쳐다보았다. 부러 엄한 얼굴을 지어보이는 스가와라의 표정을 본 카게야마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진다. 부정의 제스춰로 손을 휘휘 저어보지만 스가와라는 이 장난을 멈춰줄 생각이 없었다.
“아니라고?!”
“아니요?”
“어느 쪽이냐고!”
카게야마의 멍청한 대답에 스가와라는 결국 으하하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스가와라의 웃음에 조금 멍한 얼굴이 되었다. 장난이 가득 섞인 스가와라의 웃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조금 낯간지러운 생각을 했다. 조금 열오른 얼굴이 된 카게야마가 아무렇게나 튀어나오는 말을 내뱉는다.
“어느 쪽이든요!”
“하?”
웃다가 눈꼬리가 살짝 촉촉해진 스가와라가 갑작스러운 카게야마의 말에 웃음을 잠시 멈추었다. 영문 모를 얼굴이 되었다가 살짝 숨을 고른 스가와라가 잘게 남은 웃음을 털어내듯 마저 웃어버린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카게야마.”
“아, 저 그게..”
“너 말이야, 항상 의미 모를 말만 하니까, 가끔씩은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구.”
하하, 젖은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짝 훔치며 스가와라가 옆에 앉은 카게야마의 팔을 툭 쳤다. 쿡쿡, 웃으며 가볍게 기대오는 스가와라의 무게에 카게야마가 흡, 작게 숨을 들이 쉰다. 같은 세제를 쓰는데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스가와라의 냄새. 어쩐지 조금 행복해져 심장이 간질간질 거렸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제가 스가와라상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에?”
“스가와라상이 좋아요.”
“카게야마 멋있잖아!!”
당찬 고백에 스가와라의 웃음 소리가 더 커진다. 그야말로 빵 터진 상태가 된 스가와라가 웃다가 꺽꺽 넘어가며 카게야마의 팔뚝을 퍽퍽 때린다. 진지하게 뱉은 고백에도 박장대소하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카게야마의 미간이 구겨진다. 내가 뭐 실수했나? 다시 생각해 봐도 실수한 것이 없었다. 어쩐지 조금 불쾌해지려고 하는데. 놀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카게야마가 입술을 삐죽이며 제 팔을 퍽퍽 두드리는 스가와라의 팔을 잡아 챘다.
“에?? 왜 웃으시는겁니까??”
“웃기잖아 카게야마.”
“도대체 뭐가요!”
카게야마에게 팔이 붙들린 채 키들키들 웃던 스가와라가 몸을 숙여 삐죽이는 카게야마의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촉, 가볍게 맞닿은 소리에 카게야마의 표정이 얼떨떨해진다. 뭔가 스가와라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었다. 대화의 템포가 맞지 않는 느낌에 카게야마가 얼떨떨한 얼굴이 되어도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입술 위에 촉, 촉 입맞춤을 퍼붓고 있었다. 아기새 같은 행동에 부끄러워진 카게야마가 그만하라는 듯 스가와라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카게야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품에 안긴 모양이 된 스가와라가 왁, 하고 영 귀엽지 않은 소릴 냈다. 희미한 듯 하면서도 품은 체온에 간지럽게 피어나는 스가와라의 향기. 괜스레 꾹 끌어안는 카게야마의 행동에 스가와라가 카게야마, 하고 이름을 부르며 카게야마의 등을 작게 두드렸다. 아, 조금 힘이 들어갔나. 후다닥, 팔을 풀어냈더니 꽉 묻혀있던 고개를 드는 스가와라의 목덜미는 조금 붉었다. 아, 숨이 막혔나보다. 조금 미안해진 카게야마가 스가와라상, 하고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너 말야, 어째서 제일 부끄러운 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건데.”
끝마디는 조금 우물거렸다. 카게야마는 어쩐지 제 품안의 애인이 낯설었다. 아, 그러니까 이거 부끄러워 하고 계신건가? 카게야마는 동그마니 말린 스가와라의 어깨를 붙들어 똑바로 세웠다. 조금 전 까지 폭소하던 얼굴은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엉망이 된 얼굴이었다. 아, 그제야 카게야마도 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뒤늦게 카게야마의 얼굴에 달라붙은 민망함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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